‘마약 사위’, 김무성 이름 박지 못한 언론 속사정은…
[기자수첩] ‘유력 정치인 인척’이 ‘김무성 사위’가 되기까지… “특혜 확실치 않아 실명 거론 부담”
‘유력정치인의 인척’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둘째사위’로 바뀌는 데는 한나절이 필요했다.
지난 10일 오전 동아일보는 마약을 상습투약한 거액 자산가의 아들이자 유력 정치인의 인척인 A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으나 법원이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검찰은 항소도 하지 않았다고 단독보도했다.
“유력 정치인의 인척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동아일보의 표현은 곧 다른 언론의 후속보도에 의해 “유력 정치인 인척”이라고 확실시됐다. 10일 오전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면서 언론의 기사가 쏟아졌다. 연합뉴스 등은 “여권 유력 정치인의 사위”라며 범위를 좁혀나갔지만, 어떤 언론에서도 유력정치인의 실명은 등장하지 않았다.
유력정치인의 실명은 미디어오늘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미디어오늘은 10일 “마약을 상습 투약했는데도 양형기준 하한선을 밑도는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사람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에야 다른 언론은 김무성 대표의 이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 동아일보 10일자 12면 기사 | ||
하지만 미디어오늘이 보도하기 이전에도 많은 기자들이 A씨가 김무성 대표의 사위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경찰 및 법조출입기자들에 따르면 동아일보 보도 이후 기자들은 여러 방면으로 추가 취재를 했고, 10일 오전 8시 경 A씨가 김무성 대표의 사위라는 정보 가 대다수 기자들에게 전해졌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10일 오후 법사위 국감에서 “대단한 유력정치인의 사위다. 같이 (마약을) 한 사람들의 내용도 어마어마하다”며 “지금 여기서 실명을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인들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기자들이 알고도 안 쓴 이유는 ‘신중함’ 때문이다. 경찰 출입기자 A씨는 “김무성 대표의 사위인 것이 확실했고 알고 있었지만 그 특혜가 김무성 대표 때문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김무성의 사위라고 적는 것이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초로 단독 보도를 한 동아일보 김차수 편집국장 역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 서 “유력 정치인의 실명을 밝히려면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확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 내부 논의의 결과”라며 “(정치인이) 누구한테 언제 몇 월 며칠에 전화를 하고 지시를 했는지, 그게 재판장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 등”이라고 설명했다.
데스크 차원에서 신중함을 요구했다는 증언들도 있었다. 어쨌든 유죄판결이 났고, (특혜가 확인되지 않는 한) 개인 범죄인데다, 공인도 아닌 이를 특정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데스크가 판단했다는 것.
법조 출입기자 B씨는 “유력정치인 본인이 그런 일을 일으켰으면 당연히 까는 것인데 당사자가 공인의 사위일 뿐 공인이 아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있었던 것 같다”며 “범죄를 저지른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공인도 아닌데 특정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기자들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 출입기자 C씨는 “동아일보 기사가 나가기 전에는 몰라서 안 쓴 거고, 알고 나서는 이름을 깔지 말지 각사의 데스크들이 각각의 이유에 따라 판단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기자들이 알고도 안 쓴 이유는 ‘부담감’이다. 특혜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이름을 ‘마약’과 연결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뜻이다.
B기자는 “기자들이 하나같이 안 쓴 건 문제라고 본다. 확정판결도 났고 항소도 안 했으면 충분히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상대가 김무성이라는 점도 적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차기 대선주자이고 하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C기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내일 가면 어차피 공개될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여당 의원 아들이 취업특혜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고, ‘여권의 한 의원’이라는 이름의 기사가 쏟아졌으나 기사에 실명은 등장하지 않았다. 결국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이 직접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특혜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고, 그제서야 언론은 기사에 김태원 의원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기자들은 A씨가 ‘김무성 사위’라는 소문이 국회와 정가에 무성하게 돌면서 김 대표가 직접 해명하길 기다렸던 게 아닐까. 유력정치인의 이름을 공개하는 부담도 덜 수 있고, 다 같이 물먹지 않을 수 있다. 김 대표가 이름을 밝힌 이후에는 이름을 써도 된다.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 이뤄진 김 대표의 해명으로 도배되는 언론을 보며 이 같은 심증이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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