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다고 바뀔까, '그것이 알고싶다'가 던지는 질문
[리뷰] "모두가 공모자,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다"… 냉소와 침묵이 부정부패 재생산
23년 간 매주 토요일 저녁, 시사·고발을 해왔던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1000회 특집 주제는 ‘정의’였다. ‘정의’ 특집 3부작은 사법 정의와 경제 정의에 이어 정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검은 돈과 관련된 여러 제보자들을 만났다. 국회의원 전직 보좌관과 수행비서, 그리고 기업 관계자들까지. 그들이 증언하는 비리의 행태는 충격적이다.
명망 높은 다선 의원이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가방과 그 안에 있던 3천만 원이 사라졌다. 의원의 수행비서 한씨는 그 가방을 들고 검찰에 나타난다. 한씨는 검찰에 그 가방 안의 3천만 원이 불법정치자금이라고 진술한다. 그 가방의 주인공은 새누리당의 박상은 의원이다.
한씨는 검찰에 가방 외에 여러 자료를 제출했다. 자료 중에는 여러 명의 이름이 적힌 메모도 있다. 그 명단에는 지난해 6월 당선된 초선 구의원의 이름도 있었다. 그는 박상은 의원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메모에 적힌 이름들은 지방선거에서 공천받기 위해 경쟁한 예비후보들이었다. ‘공천헌금’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 ‘그것이 알고싶다’ 1000회 특집 예고편 갈무리리 | ||
박상은 의원의 전직 보좌관과 수행비서들은 박 의원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챙겼다고 증언했다. 한 보좌관은 월급 300만원 중 150만원을 박 의원에게 상납해야 했다. 박 의원은 “네가 여기 정치하러 왔으니 수업료를 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보좌관은 박 의원 밑에서 일하면서 월급은 아무 관계없는 건설회사로부터 받았다. “이익을 받기 위한 투자”라고 한다.
돈 가방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박기춘 의원은 분양업체 대표 김모씨로부터 3억 5천만 원 어치 명품시계와 가방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박 의원은 2013년부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최근까지 국토교통위 위원장을 맡았다. 분양업체 사업과 밀접한 내용이 다뤄지는 상임위원회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전문가들을 통해 분석한 결과 박 의원이 낸 법안은 개발이나 그린벨트 해지와 관련이 깊고, 따라서 이권이나 청탁이 오갈 개연성이 높은 영역이다.
돈 가방은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다. 2010년 충남 당진군수는 위조여권을 만들어 내연녀와 해외에 도피하려다 붙잡혔다. 그는 건설업체로부터 별장과 아파트를 뇌물로 받은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아파트를 받은 대가로 한 건설업체에게 개발 인허가를 조속히 내줬다. 그는 해당 건설업체에게 또 다른 건설업체에 하청을 주라고 요구했는데, 이 업체는 그의 별장을 지어준 업체였다. 군수에게 별장을 뇌물로 준 건설업체 대표는 “군의원이라도 알아야 어디 공장이라도 하나 들어가 삽질 한 번이라도 하지. 모르면 누가 그냥 주냐. 전국이 다 이런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찾은 제보자들은 검은 돈이 오가는 과정을 상세히 증언한다.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놀러온다. 돈 받으러. ‘아이고 놀러왔습니다’면 돈 받으러 온 거다”(기업체 사장의 전 수행비서) “사무실 현관 앞에 큰 자루가 놓여있고 돈이 가득했는데 혼자 들지 못할 정도였다. 트렁크에 넣었는데 차가 쑥 가라앉더라”(B의원 전 비서) “기초의원과 구의원은 명절, 추석 때 국회의원 부엌에 가서 일한다. 종이다”(구의원 수행비서) “(돈을 주고 받을 때는) 블랙박스도 꺼버리고 핸드폰도 꺼야한다. 큰 아파트나 건물 있는데는 일절 안 간다. CCTV 있는데도 안 간다”(A지역 시장 전 수행비서)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의’에 대해 물으며 결국 마지막으로 정치를 소환했다. 결국 정답은 정치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 아닐까. 사법 권력도 경제 권력도 통제받지 않는다.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력만은 통제 가능한 권력이다. 민주주의가 정치권력을 선출하는 이유는 통제받지 않는 경제 권력과 사법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라는 의미다. 정치권력에게 사법 권력과 경제 권력을 통제할 ‘입법’이라는 힘이 주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이들을 감시하기는커녕 이들의 비리와 공생하고 있다. 징역 8년을 선고받은 당진군수의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군수가 파렴치범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돈 앞에서는 권력이 무릎을 꿇는다. 권력을 지배하는 게 돈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없다. 모두가 다 공모자다”
불평등과 비리를 조장하는 경제권력, 그리고 이를 비호하는 사법권력과 정치권력. 제보자들은 절망적 현실에 하나같이 의구심을 드러낸다. “큰 방송국이고 유명한 프로그램인 거 안다. 근데 이런다고 바뀔까” “취재가 된다고 해도 이게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까. 파헤쳐도 크게 변화가 없을 것이다. 옛날엔 이보다 취재 안 했겠나” “이런 내용이 방송되면 변화가 있을까?”
▲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 ||
‘그것이 알고싶다’는 답 없는 현실을 전하며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졌다. 우리 사회가 ‘그래서 무엇이 바뀌겠느냐’는 의구심,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를 던지며 침묵을 권하는 사회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 김상중은 1000회 특집을 소개하며 기억에 남는 시청자 의견을 소개했다. “정의라는 단어에 그동안 헛웃음 지었던 자신이 미안하다”는 것. 우리는 그간 ‘어쩔 수 없다’는 헛웃음을 지으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알고싶다’가 던진 정의라는 질문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답을 찾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질문하지 않는 침묵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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