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폴리스라인 넘기만 해봐’ 폭력진압 거세진다
“자의적 폴리스라인 설치, 폭력진압할 근거 만들겠다는 것”‥‘노동개악 밀어붙이기’ 꼼수
경찰이 집회시위 때 폴리스라인을 넘기만 해도 검거하는 강경대응책을 내놨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와중에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경찰이 강경책을 내놨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은 추석연휴인 지난 29일 출입기자들에게 ‘생활 속 법치질서 확립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대책은 ▷기본질서 ▷교통질서 ▷국민생활 침해범죄 등 3개 분야에 대한 로드맵을 세우고 시기별로 핵심 과제에 경찰력을 집중한다는 내용이다.
기본질서 부문에 정복경찰관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할 시 경찰서 강력팀이 현장에서 피의자를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내용이 있다.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폴리스라인을 법질서 확립의 기준으로 삼고 폴리스라인을 넘기만 해도 현장에서 검거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경찰에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폴리스라인을 넘어온다 해도 채증과 사후 사법처리에 그쳤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넘어올 경우 가해질 처벌을 ‘현행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 벌금’에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하는 방안의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자정 이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는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야간 옥외시위 금지에 대해서는 한정위헌 결정을 했다. 이에 경찰은 옥외집회에 대해 시간제한 없이 허용했고 옥외시위는 자정을 마지노선으로 뒀다. 옥외집회까지 자정으로 제한할 계획이라는 것이 경찰청 입장이다.
경찰의 이러한 대책이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찰은 원래 집시법상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처벌 대상이기에, 현행범 체포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폴리스라인이 어떻게 설치되느냐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폴리스라인을 위반했다고 처벌하는 건 법적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폴리스라인 설치에 대해 경찰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다”라며 “예컨대 십만 군중이 모이는데 차선 두 개만 허용해주겠다는 것은 폴리스라인을 넘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시위와 집회의 성격에 따라 폴리스라인이 달라져야 하는데, 경찰이 자의적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위반하면 체포하겠다는 말은 폴리스라인을 핑계로 폭력 진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역시 “경찰이 친 폴리스라인이 적법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범법행위를 처벌한다는 주장이 성립한다. 그러나 대한문에서도 집회 신고를 한 지역에 폴리스라인을 치는 등 경찰이 집회시위를 제약하기 위해 폴리스라인을 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경찰은 차벽이나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이를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5월 “(차벽은) 당연히 질서유지선이다. 차량이 운송수단으로만 사용되나? 경찰관이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면 무엇이든 사용 못하겠나”라고 말했다. 강신명 경찰청장 역시 지난해 9월 “차벽은 폴리스라인”이라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입장을 철회했다.
관련 기사 : <차벽에 캡사이신 난사, 불법·폭력은 경찰이 저질러>
하지만 집시법에서 질서유지선이란 집회를 제한하는 취지의 가벼운 표지판 정도를 일컫는다. 차벽은 통행권까지 제한하기에 질서유지선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게다가 차벽은 시위대와 일반 군중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집회시위의 본질적인 목적을 차단시키는 셈이다.
▲ 2013년 7월 25일 경찰이 민변이 신고한 집회 장소 내인 화단 앞에 이중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치한 모습. 사진=민변 | ||
이처럼 차벽까지 폴리스라인으로 취급하는 마당에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자의적으로 설치하고 이를 통해 집회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상희 교수는 “집회 전에 혹은 시위가 진행되는 중에 시위 주체들하고 협의를 하고 이에 따라 폴리스라인을 설치해야한다. 그게 안 되면 계속 지금처럼 두드려 잡는 모습만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이러한 대책을 두고 노동계와 시민사회계의 노동개악 반대집회를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주노총만 해도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10월 12일~17일을 노동개악 분쇄 총파업-총력투쟁 주간으로 설정했다. 가맹조직별 릴레이 집중투쟁과 전국 동시다발 도심 야간 촛불대회를 계획하고 있으며, 10월 중 민중총궐기 지역별 대회와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와 11-12월 총파업 및 각종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은 이번 대책 관련 보고서에서 “대내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하반기 4대 구조개혁의 속도감 있는 추진에 따른 다양한 갈등 양상이 표출될 전망이다. 구조개혁 완수와 경제 재도약을 위해 법질서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노동개악을 합의가 아닌 밀어붙이기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주민 변호사는 “노동개혁을 하반기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기조 아래, 그러면 당연히 대규모집회는 예정돼 있고 저항이 극심할 테니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역시 1일 오전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29일 경찰이 발표한 생활 속의 법치 질서 확립 대책은 노동개혁 등 4대 개악에 맞서는 노동자와 서민에 대한 사전 탄압대책”이라며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노동개악을 경찰력으로 돌파하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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