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기사

청년실업 걱정하는 척, 야당은 시늉이라도 하나

청년실업 걱정하는 척, 야당은 시늉이라도 하나

보수의 페이스오프, ‘노동개혁’을 청년 일자리 정책으로 포장… 실업안전망에 1인 가구 정책까지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청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장년층과 노년층에서 강한 충성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으나 2030 청년세대는 야당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정부여당이 이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청년’을 외치고 있다. 전국 각지에는 추석을 앞두고 ‘취업 결혼 걱정 없는 한가위, 노동개혁으로’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 등의 새누리당 플랜카드들이 걸려 있다. 미디어오늘은 앞서 다문화, 통일 담론까지 빨아들이는 보수의 페이스오프에 대해 분석했다. 이 ‘페이스오프’에 청년 의제도 추가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여당, 임금피크제를 ‘청년 일자리’ 정책으로 만들다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을 매개로 청년 의제를 선점해가고 있다. 정부여당은 어느 순간부터 노동개혁을 청년 의제로 만들어버렸다. 노동개혁의 명칭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었다. 즉 청‧장년 간, 비정규직‧정규직 간 격차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는 것이 노동개혁의 목표였다.

하지만 어느새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라는 노동개혁의 목표는 ‘청년 일자리’로 바뀐다. 그리고 임금피크제가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2014년 12월 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의 골자는 비정규직 계약 연장, 파견직 전면허용, 저성과자 해고 등이다. 임금피크제 확대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같은 날 민주노총이 발표한 이슈페이퍼에도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비판은 없다.

   
▲ 조선일보 3월 20일자 1면 광고
 

하지만 2015년 초부터 ‘노동개혁은 청년일자리’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다. 3월 19일자 20일자 주요 신문 지면에는 고용노동부 광고에 실렸는데, 이 광고에는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역을 맡았던 임시완씨가 등장해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장그래를 활용한 이 광고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노동개혁에 반발해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출범을 한 18일 바로 다음 날에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노동개혁에 찬성하는 정부, 반대하는 노동계 모두 청년 비정규직의 상징인 장그래를 이용한 묘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광고가 실린 19일 고용노동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 및 효과 분석’ 결과에 대한 보도자료를 발표한다. 고용노동부는 “신규채용 중 30세 미만인 청년층 비율 역시 임금피크제 도입사업장(50.6%)이 미도입 사업장(43.9%) 보다 높게 나타났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사업장의 고용창출 여력이 미도입 사업장 보다 크며, 청년 채용 효과도 높은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6월 17일 정부가 발표한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 보도 자료에는 “노동시장이 개혁되어야 미래세대의 청년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갖게 된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임금피크제를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가 ‘청년들이여 눈높이를 낮추라’며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깎아 고용을 늘리자고 주장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중장년층의 연봉을 깎아 청년 고용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셈이다. 청년들이 쉽게 신입사원조차 될 수 없는, 악화된 상황의 반영이다.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청년일자리’라는 등식을 세우고 임금피크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원래 임금피크제의 목표는 청년일자리가 아니었다. 2008년 고용노동부가 만든 임금피크제 관련 광고에는 한 남성이 부인에게 “으응, 여보, 나 계속 일하게 됐어!”라며 “임금은 좀 줄더라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있나봐”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고용안정’이었던 임금피크제의 목표를 정부여당이 ‘청년 일자리’로 치환시켜버린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추진해왔는데, 근거는 3차례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고령자들이 생산성을 상회하는 과도한 임금을 받으므로 고령자들의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2013년 4월 ‘60세 이상 정년’을 법제화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이 통과되자 정년연장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경감하려면 고령자들의 임금을 삭감해야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그러다 2015년 ‘절감된 고령자 인건비로 청년고용을 늘리겠다’며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대책으로 격상됐다.

청년일자리에서 실업안전망으로 의제 확장하는 새누리당

노동개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보수진영의 청년 의제는 ‘청년실업이 심하니 일자리를 늘려주자’는 단순한 도식에 기초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도식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 9월 18일 ‘청년 니트 실태’를 주제로 미래인재포럼을 개최했다. 니트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로 교육을 받지도 취업을 하지도 않는 청년층을 뜻한다. 

이날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채창균 선임연구위원은 “청년 니트를 위한 교육-고용-복지 안전망 구축과 맞춤형 지원 등 종합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에 대한 취업활동수당, 민관전담기구 설치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하준태 한국청년연합 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청년프레임을 진보진영이 가져오기 정말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청년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이슈도 기득권 보수정당이 먼저 제기하고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의 다문화 의제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시혜로 시작해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이처럼 보수진영의 청년 의제도 일자리로 시작해 사회안전망까지 확장될 수 있다. 

‘1인 가구’, 새누리당 총선 의제로?

새누리당이 밀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의제는 ‘1인 가구’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지난 4월 1일 ‘1인 가구 급증, 국민 25%’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여의도연구원은 “총선을 약 1년 앞둔 현 시점에서 각 선거지역구 내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의 정책 수요(도농별, 세대별)를 파악하여 맞춤형 정책공약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與 싱크탱크, “내년 총선에서 1인 가구 필히 공략해야”>

‘나 혼자 사는’ 1인 가구 규모가 2000년 222만 가구에서 2010년 414만 가구로 늘어났고, 총가구 중 1인 가구 비중 역시 2000년 15.5%에서 2010년 23.9%로 증가했고, 2015년 25%를 상회할 것으로 보이기에 부부+자녀 가족을 전제로 구축된 현행 대한민국의 경제, 주택, 복지, 치안 등 각종 제도와 정부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내용이다.

   
▲ 연령군별 가구주 대비 1인 가구비율(1980~2010년) . 여의도연구원 보고서에서 발췌.
 

‘1인 가구’는 새누리당이 지지층을 청년층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여의도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0년을 통틀어 1인 가구 비율은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층과 65세 이상인 층에서 높게 나타난다.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가구 중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은 1980년 5.7%에서 2010년 34.0%로 급격히 성장했다. 즉 ‘1인 가구’ 정책은 새누리당 고정 지지층인 60대 노인층의 지지를 확고히 하면서도 2030 청년세대로까지 표를 확장할 수 있는 ‘일거양득’ 정책이다. 

젊은 세대는 야당을 찍는다? 이제 아닐걸

이처럼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청년 의제를 선점해나가며 총선과 대선에서의 표 확장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야당과 노동계는 임금피크제와 노동개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단기적인 일자리는 늘어날 수 있고 이런 일자리 상승 지표가 선거 국면에서 새누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수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은 23일 토론회에서 “(노동개혁으로) 단기적인 고용지표 개선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도입해서 일자리가 안 늘어난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하는 말이고,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일자리를 늘리자는 메시지를 던지면 실제 백명이라도 열명이라도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그런 것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선거국면이 다가올수록 노동개혁으로 청년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홍보할 것이고, 여기에 실업안전망이나 1인 가구 등 또 다른 청년 의제들을 끌어들여 정책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진보진영과 야당이 ‘젊은 세대는 야당을 찍는다’는 명제를 버려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