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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미화 안 한다더니 친일인명사전은 왜 막나

친일미화 안 한다더니 친일인명사전은 왜 막나

서울시교육청, 중고교에 친일인명사전 배포… 새누리 시의원도 찬성한 사안, 반대논리 궁색해

정부여당은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를 계기로 국정화 국면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할 계획을 밝히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서울시교육청이 다음달부터 서울 551개 중‧고등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12월 ‘2015년도 서울시 교육특별회계 예산’에 친일인명사전 배포 비용을 증액, 편성해놓았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서울시의회에 ‘12월 중에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곽노현 교육감 때부터 이뤄졌고, 이번에는 배포가 되지 않은 333개 중학교와 218개 고등학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맞물리면서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진보진영의 반격으로 해석되고 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돼 있다. 보수진영이 기존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며 제기한 이념공세에 진보진영이 ‘국정교과서로 친일독재미화가 할 생각 없다니 친일인명사전 배포도 동의하라’며 맞불을 놓은 셈이다.

당장 새누리당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응책은 ‘이념공세’다.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친일인명사전은 좌파성향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것”이라며 “보급에 국민 혈세 1억7000여만원이 드는데,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 안 된 친일인명사전이 역사관과 국가관을 오도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서울시교육청은 반대한민국적, 반교육적인 이런 결정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 친일인명사전과 앱. 사진출처=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블로그(ibuild.tistory.com)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9일 새누리당 초‧재선 모임인 아침소리 회의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창립선언문을 보면 해산된 통진당과 아주 흡사한 패러다임을 가진 단체다. 대한민국을 반민족, 반민중적 체제로 보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반대한민국적인 친일인명사전 배포계획을 철회하고 국민들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전 사주가 포함돼 있는(방응모 조선일보 전 사장) 조선일보는 9일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민족문제연구소는 3년 전 '백년 전쟁'이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단체”라며 “이런 단체가 자의적(恣意的) 잣대로 만든 '친일 사전'을 교육 현장에 뿌리겠다는 것은 교육의 중립성 위반 차원을 넘어 젊은이들을 반(反)대한민국 세력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이미 작년에 예고된 일이었으나 배포 시점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쟁점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진영은 친일인명사전에 오류가 많다고 반박한다. 황진하 사무총장은 “을사조약을 통렬히 비판하며 ‘시일야방성대곡’을 집필해 옥고까지 치른 장지연 선생을 친일파로 규정한 반면 일제 침략의 선봉자를 자처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의 이름은 정작 사전에 빠졌다”며 “객관성이 떨어지며 많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심용환 깊은계단 대표는 “장지연의 인생 전체를 다 친일로 규정한 게 아니라 일제 말 언론인으로 부일협력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들어간 것”이라며 “그리고 누락된 사람, 여전히 탐구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들이 많다. 여러 명이 빠졌다면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부터 시작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연구할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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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을 두고 공방이 벌어질 경우 ‘친일 논쟁’이 본격화된다. 당장 야권은 ‘역사교과서로 친일 미화 안 하겠다더니 왜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막냐’고 공세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은 10일 TBS 교통방송 ‘열린방송 김만흠입니다’ 인터뷰에서 “학생들에게 애국을 가르치려면 거꾸로 일제시대 때 친일·반민족행위를 구체적으로 기술해놓은 친일인명사전 같은 교육보충자료가 필요하다”며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기 당 소속 의원들의 선조가 많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반대논리도 궁색하다. 친일인명사전 배포 계획은 새누리당 시의원들도 동참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사안이다. 정부가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 됐다고 주장하자 당장 “교육부가 검정 통과시켜준 것 아니냐”는 반론이 일었던 상황과 유사하다.

보수단체들이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교육과학교를위한학부모연합’ 등 보수 학부모단체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황교안 국무총리 등은 전교조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는데,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보수 학부모단체이 개입할 경우 ‘교학사 교과서 외압’설을 주장하기가 난감해진다.

결국 국정화 찬성 진영이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이기 위해 내세웠던 논리들로 인해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반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했다.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 이후 여야의 싸움을 넘어 교사, 교육감 등의 저항, 대안교과서 개발 등을 둘러싼 교육현장에서의 싸움으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 첫 번째 싸움은 친일인명사전 배포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교육청이 정상적인 업무의 일환으로 학교에 공문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기에 학교에서 특별한 사유없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며 “만약 어떤 단체가 학교장을 고발할 경우를 대비해 학교에서 감내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려고 한다. 학교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그 책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상급기관인 교육청의 지시, 안내에 의해 하는 것이기에 학교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