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안 하는 복지, 지자체까지 못하게 |
[뉴스분석]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복지 구조조정’ 명분으로 교부세 삭감… 취약계층 복지에 직격탄 박근혜 정부가 정부와 협의‧조정을 거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사업을 제재하는 내용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이 시행령을 무기로 ‘복지 구조조정’에 들어서면서 노인‧아동‧장애인 등 복지 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지방에게 지급하는 지방교부세 감액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지방정부가 사회보장기본법상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시 협의·조정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거나 협의·조정 결과를 따르지 않는 법령 위반으로 지나치게 많은 경비를 지출한 경우’에 지방교부세를 감액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청년수당’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9~29세 저소득층 취업준비생 3000명을 선정해 최장 6개월간 매달 50만원씩을 주는 청년수당을, 이재명 성남시장은 성남에 3년 이상 거주한 19~24세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을 수당으로 주는 청년수당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1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사회보장위원회 회의에서 몇몇 위원들은 이러한 청년수당 정책에 대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가 시행령을 이용해 야당 지자체장들이 내놓은 복지정책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번 시행령이 상위법인 법률과 헌법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헌법 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한다”고 규정한다. 지방자치법 제9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범위로 ‘주민복지에 관한 사업’ ‘사회복지시설의 설치‧운영 및 관리’ ‘생활이 곤궁(困窮)한 자의 보호 및 지원’ ‘노인·아동·심신장애인·청소년 및 여성의 보호와 복지증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근혜정부복지후퇴저지특별위원회’는 1일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은 지방자치를 보장하고 지방자치법은 자치단체의 주민복지 사무를 명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명백한 위헌이자 법률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정부가 교부세 삭감을 무기로 사실상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사업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시행령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구조조정’ 움직임 속에서 이를 읽어야한다는 뜻이다. 지난 8월 11일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을 의결했다. 지자체가 시행 중인 자체 사회보장사업 5891개 사업 중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중복성이 있는 사업을 정비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가 주장하는 유사중복사업의 폐지가 지역에서 복지축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지자체들이 그간 중앙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자체 복지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이런 사업들이 ‘유사중복’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사람 죽어가는데 뭐가 중복이고 뭐가 효율인가>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24시간 제공’이 대표 사례다.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이후 집에 화재가 나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정부는 여전히 ‘활동보조 24시간 제공’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고 이 때문에 몇몇 지자체들은 최중증장애인들에 대한 추가 지원을 통해 활동보조 24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유사중복사업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지자체의 ‘추가 지원’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교부세 삭감은 이런 유사중복사업 재정비의 무기로 쓰일 수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10월 정부가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이후 제출한 의견서에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최근 정부가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유사, 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추진방안’과 관련하여 지자체에 강제력을 행사하기 위한 법적근거로 약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자체별로 노인복지 차원에서 노인들에게 매달 2만~3만원씩 장수수당을 지급하거나 80세 되면 일시불로 50만~100만원을 지급하는 장수수당이 있다. 건강보험료 1만5천원 미만의 어렵게 사시는 분들에게 보험료를 지원해주는 지자체도 있다”며 “장기요양보험은 등급을 받아야 지원 받을 수 있는데, 등급을 받지 못했어도 몸이 불편하거나 정신에 이상이 있는 분들에게 보험료를 지원해주는 지자체도 있다. 시행령 개정안으로 중복복지사업이 없어지면 이런 지원들이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제도들은 대부분 기초연금만큼 수급비가 깎이는 기초생활수급노인 및 저소득층 등 정부의 복지 제도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제도다. 고 사무처장은 “기초연금이 도입되고 노인 일자리 사업도 하는데 해가 갈수록 노인빈곤율은 올라간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장수수당이나 등급 외 환자에 대한 지원, 보험료 지원 등을 해준다”며 “정부는 이런 걸 중복사업이라며 없애라고 했고, 지자체가 말을 듣지 않자 통제하려고 시행령 개정안을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유사중복복지라며 없애라고 하지만 사실상 중앙정부의 복지 부족분에 대한 보충 정도 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며 “중앙정부가 보장하지 않는 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 보육교사 등 사회서비스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보조를 지자체에서 하고 있다. 현 정부는 이런 복지제도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복지 구조조정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재정 감축이다. 행정자치부는 1일 보도자료에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5월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집중 논의된 핵심개혁과제인 지방교부세 제도 개선 등 지방재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밝혔다.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경기회복세가 공고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재정개혁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제고해나가기로 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즉 경제가 안 좋으니 재정 지출을 줄이고, 이 방책의 하나로 지자체의 복지사업을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재정 건전성 확충’으로 인한 복지 구조조정의 여파는 취약계층에게 돌아가게 됐다. 정성철 활동가는 “정부는 복지예산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지만 이는 자연 증감분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다. 게다가 복지예산 120조 중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이 제공받는 복지는 극히 일부인데 이것부터 축소하겠다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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