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영철 국회인턴유니온 위원장… “청년들 기대감 악용해 10년 전 월급 그대로”
지난 3일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총선용 지역구 챙기기 예산으로 가득했다. 지역구 챙기기 속에 여러 예산들이 삭감됐고 그 중에는 국회 인턴 처우 개선비 26억 원도 있었다. 세비를 삭감해 인턴 처우 개선에 쓰겠다는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예산 삭감으로 국회 인턴의 1인당 기본급은 10년째 120만원으로 동결됐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지난 10월 국회인턴들이 모여 노조를 만들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7일 국회사무처와 교섭을 마친 이영철 국회인턴유니온 위원장을 만났다. 이 위원장은 정의당 김제남 의원실에서 인턴비서로 일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국회 사무처와의 교섭이 영 시원찮았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근로계약을 사무처에서 체결하므로 법률상 사측은 사무처가 맞는데, 사무처에서는 의원이 고용하고 사무처는 도장만 찍는 거라 책임을 다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교섭을 회피하다시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앞 다투어 “청년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지만 정작 등잔 밑이 어두운지 국회에서 일하는 청년들에 대한 처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본급은 10년 째 120만원이고 시간외수당을 다 합쳐도 134만원이다. 국회 운영위는 기본급을 10만원 올리기로 했으나 예결위는 이를 삭감했다. 다른 공공기관 인턴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이영철 위원장은 “2014년 운영위가 150만원을 제시했으나 타 기관 비정규직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예결위가 삭감했다. 이번 10만원 인상도 마찬가지였다”며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임금 상승분을 생각하면 4만 원밖에 인상되지 않는데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공공기관 인턴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데, 근무하는 조건이 다르다. 공공기관 인턴들은 일종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이지만 국회 인턴은 질의서나 보도자료 작성, 국감 업무 등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며 ”의원이랑 임기를 4년 동안 함께하는 인턴도 있고 10년이나 일한 인턴도 있다. 일방적으로 다른 공공기관 인턴과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노동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공무원의 시간외수당이 33시간까지 인정되는 반면 국회인턴은 16시간 밖에 인정되지 않는다. 인턴유니온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회인턴들은 주당 평균 58.8시간 일한다. 국정감사나 선거 때는 노동시간이 확 늘어난다. 주당 7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사람도 13%였다. 이 위원장은 “임시국회가 열리거나 국정감사 때라면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일주일에 3일 집에 들어가거나 일주일 내내 못 들어가는 때도 있다. 시간대비 근로시간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다”며 “시간외수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16시간으로 묶어놓으니 일을 많이 할수록 시간당 급여가 줄어든다”고 토로했다. 이 위원장은 또한 “의원실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선거 때 파견근무를 나가면 자비로 집을 구해서 사는 인턴들도 있다. 노동에 대한 의식이 좀 있는 의원들만 자비로 방세를 지원하는 정도”라며 “120만원 받아서 여의도로 출근하려고 서울에 자취방 구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적자가 나는 경우도 많고 저축할 수 있는 돈도 없다”고 말했다. 업무도 사실상 보좌관이나 비서관 업무와 큰 차이가 없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홍보업무를 맡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전체의 86%, 정책업무 경험은 91%, 공보업무 경험이 86%, 수행업무 경험 75%에 달했다. 이 위원장은 “잡무가 40%, 전문적 업무가 60% 정도다. 잡일에 전문적인 일까지 겹치면 6시에는 퇴근할 수 없고 8시-9시 퇴근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인턴들은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미생’이다. 의원실별로 인턴을 두 명씩 고용할 수 있는데, 두 명에게 주어진 고용기간은 22개월이다. 두 명이 11개월씩 근무하거나 한 명은 10개월, 한 명은 12개월 근무한다. 일을 잘한다 싶으면 11개월 근무한 뒤 나머지 1달은 의원이 세비나 정치자금으로 급여를 충당했다가(이 기간은 법적으로 실직 상태) 다음 해 11월 다시 재계약을 맺는다. 11개월이나 10개월씩 근무할 경우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1년 이상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12개월 근무해 퇴직금을 받는 인턴은 전체 600명 중 30명에 불과하다. 이 위원장은 “22개월로 제한된 고용기간도 24개월 이상으로 늘어나야 한다. 국회 사무처에 왜 22개월이냐고 물어봤는데. 24개월이 되면 사실상 상시근로자로 전환되는 것이고 인턴의 취지와 어긋난다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 | | ▲ 2015년 국회인턴 시행안내. 국회사무처 공문 갈무리. | |
이영철 위원장 자신도 10개월 비정규직 신세다. 이 위원장은 “나도 인턴 계약이 종료된 상황이라 법률상 교섭에 나설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 동료 인턴이 갖고 있던 1개월을 가져와 위원장직을 유지했다”며 “동료는 원래 근무기간이 12개월이었다가 11개월이 되어 퇴직금을 못 받는 처지다. 현재 조합원 중에도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인턴유니온은 ‘인턴의 인턴’이라 불리는 입법보조원의 처우 개선도 주장하고 있다. 주로 대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명예 보좌관’으로 임금을 아예 주지 않거나 한 달에 20만원~30만원씩 주고 세 달 가량 부려먹는다. 그러다 세 달이 지나면 의원 명의의 수료증 하나 주고 끝이다. 이 위원장은 “국회에 대해 가르쳐준다는 명목인데 교육훈련이 전혀 보장돼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잡무만 하고 택배 받다 나갔다는 입법보조원들도 있다. 입법보조원 경력이 많을수록 인턴으로 채용하는데 유리하다보니 인턴이 되려고 입법보조원들 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말했다. 2015년 10월 기준으로 국회 내 입법보조원은 336명이다. 저임금 비정규직에 노조 활동조차 쉽지 않다. 고용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류상 근로계약서 체결의 당사자는 국회 사무총장이다. 국회 사무처는 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각 의원실에게로 보낸다. 노동조건 개선을 이야기하려해도 의원들은 법적인 사측 사무처랑 이야기하라고 하고 사무처는 고용이나 해고는 의원실에서 한다고 책임을 미룬다. 게다가 하루살이 목숨에 노조 활동까지 하다간 밉보이기 십상이다. 이영철씨가 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노조활동하려면 의원과 보좌관의 양해를 받아야하는데 다른 인턴들은 눈치 보이고 허락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며 “그래서 내가 김제남 의원과 보좌관들에게 가서 양해를 구했고 흔쾌히 허락해줬다.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나서는 것보다 인턴이 직접 나서서 초당적 협력을 해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국회 인턴의 직업적 속성도 노조활동을 어렵게 한다. 국회 인턴은 ‘징검다리 직업’이다. 인턴을 거쳐 더 높은 자리로 건너뛰려는 욕망이 있다 보니 노동환경 개선에 큰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 위원장은 “그런 기대감을 악용해 국회 인턴들의 임금을 10년 째 동결시켰다. ‘내가 잘하면 7급 비서관 될 수 있다’, 여기서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낮은 처우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미 인턴제도는 교육훈련이 아닌 한국형 ‘착취’제도로 변질됐다. 국회에서부터 이 인턴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인턴의 특수성으로 인한 장점도 있다. 이 위원장은 이 장점을 이용할 생각이다. 이 위원장은 “고용과 해고는 의원실에서 하기 때문에 국회 사무처가 교섭하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우리를 자를 수 없다. 노조활동을 하기에는 큰 강점”이라며 “의원들에게 인턴처우개선 관련 연서명을 받고 국회 결의안을 만들어내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압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성과라도 일궈내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지금 조직률은 5%에 불과하다. 정의당 의원실 소속이다보니 가입하기 부담스러워하는 타 정당 소속 인턴들도 있다”며 “교섭을 통해 작은 결과라도 얻어내는 걸 보고 노동조합에 합류하겠다는 의견들을 조합원 아닌 인턴들이 많이 전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조건 개선이나 임금 인상 등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기에 노사가 참여하는 인턴제도개선위원회 설치를 목표로 삼고 있다”며 “조합원이 아닌 인턴들까지 참여해 사무처랑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일단 교섭을 통해 이런 작은 성과라도 끌어내고 이를 인턴들에게 전하면서 조합원을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