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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은 왜 ‘대선불복이냐’는 호통에 당했을까

국정원 대선개입은 왜 ‘대선불복이냐’는 호통에 당했을까

[뉴스파파라치⑫] 6하 원칙이 말하지 못하는 진실, 컨텍스트를 보라…맥락을 봐야 의미가 보인다

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4회로 구성됩니다. 4부 `How to read 뉴스 중급편`에서 소개할 3개의 글에서는 컨텍스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방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와 결합, 의미의 탄생

“밥이나 한 번 먹자” 연말이나 연초,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지인들 사이에서 많이 주고받는 말 중 하나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언제? 내일 점심 어때?”라고 답해야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래”라고 답하고 그만이다. 누군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지 않는 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내년에도 반복될 공허한 인사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밥이나 먹자”는 말을 있는 그대로, 즉 텍스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언어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context)가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밥이나 먹자”는 말은 맥락에 따라 ‘잘 지내니?’라는 인사가 될 수도 있고 ‘우연히 마주쳤는데 딱히 할 말이 없다’라는 뜻의 표현도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이 ‘밥이나 먹자’라는 말을 통해 관심이나 호기심을 드러낼 수도 있다.

“밥 먹었어?”라는 간단한 인사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같이 먹자”는 제안이 될 수도 있고 “여태까지 밥도 안 먹고 다니고 뭐했냐”는 핀잔이 될 수도 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선샤인 논술사전’에서 텍스트와 컨텍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해라’고 하는 이 말은 텍스트다. ‘이 말을 어떤 상황에서 했는가’는 이 말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낮에 했다면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밤 12시에 했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지독한 부모’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밤 12시라고 하는 상황이 바로 컨텍스트다”

우리가 TV나 신문 지면을 통해 보는 뉴스도 텍스트와 컨텍스트로 구성돼 있다. 영어교육가 김성우는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텍스트의 의미는 늘 가능성으로 존재하는데, 이것이 특정한 컨텍스트와 결합할 때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기사 역시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읽히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2013년 9월 12일 미디어오늘은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 혼외자식만 4남 2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텍스트만 보자면 이 기사는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 사주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기사다. 하지만 이 기사는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다는 맥락 속에서 읽혔다. 많은 독자들에게 이 기사가 ‘조선일보 너희는 얼마나 깨끗하냐’는 의미로 전달됐다는 뜻이다.

따라서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눈앞에 놓인 기사라는 텍스트가 특정한 컨텍스트와 결합하면서 뉴스 소비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또 이런 의미를 통해 미디어가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읽어야한다.

‘일 안 하는 국회’에 숨겨진 행간

지난해 7월 26일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발표한 혁신안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혁신안에 “의원 정수 증대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촉구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회의원 정수를 390명으로 늘리면서 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언론이 의원 정수 증대를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정치 철밥통’ ‘밥그릇 늘리기’라는 비판이었다. 언론이 내세운 근거는 ‘국민정서’였다. 동아일보는 7월 27일 사설에서 “유권자 사이에는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으니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라고 밝혔고 같은 날 문화일보도 사설에서 “국회의원 정수 줄이라는 게 국민의 뜻”이라고 말했다.

   
▲ 2015년 7월27일자 조선일보 35면
 

관련 기사 : <쌈질만 하는 국회의원들 왜 늘리냐고?>

국민정서를 이유로 국회의원 정수 증대에 반대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싸움만 하는 놈들’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이런 정서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의원 수 증대가 성공할 리도 없다.

문제는 이런 주장의 컨텍스트다. 몇몇 언론은 의원 정수 증대에 반대하며 의회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7월 27일 사설에서 “국회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맹탕으로 만든 데 이어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노동 개혁마저 흐지부지하려는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런 국회가 아무런 변화나 반성 없이 의원 숫자만 늘리겠다고 나선다면 국민이 용납하겠나”라고 밝혔다.

문화일보 역시 27일 사설에서 “(국회의원들이) 이 같은 특혜를 받으면서도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에 기대어 무소불위의 ‘제왕적 야당’ 권한을 향유하고 있다”며 “상임위를 5개월 간 공전시키는가 하면 정부가 요청한 경제활성화 법안도 3년째 뭉개고 있으면서 국정을 건건히 발목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언론은 국회가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고 법도 통과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의원 정수 확대가 무의미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도 안 하면서 사람만 늘려서 뭐하냐’는 식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주장은 의회의 기능을 행정부를 돕는 것 정도로 제한하는 사고방식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르면 의회는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 경제활성화 법안, 공무원연금개혁, 노동 관련 법안에 문제 있는지 검증하고 통제해야 한다. 정부가 만든 법안을 거수기처럼 통과시키는 것이 의회의 기능이라면 굳이 의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끊임없이 수석비서관회의, 대국민연설 등을 통해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켜야한다고 강조하던 상황이었다. ‘일도 안 하면서 무슨 사람만 늘리냐’는 몇몇 언론의 보도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입장을 강화해주는 효과를 지닌다.

‘국회의원 숫자 늘리지 말자’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보이고 합리적인 주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는 맥락 속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고 의회의 기능을 깎아내리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대선개입은 왜 대선불복에 먹혔을까

2012년 대선 때 시작돼 2013년 한 해를 뒤흔든 사건이 국정원 대선개입이다. 한 친구가 사석에서 나한테 이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거 엄청난 사건 아니야?” “맞아.”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정황과 사실이 전부 드러났는데도 비판 목소리는 야권 지지층에 한정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법적인 공방과 정치적 공방 정도에서 일단락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이 제시한 프레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관련 기사 : <“여직원 인권”→“지켜봐야”→“못믿겠다”→“대선불복”>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대선불복’ 프레임을 짰다.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야당과 시민사회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그럼 당신들은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냐”고 몰아붙인 것이다. 2013년 7월 15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더 이상 국가정보원 사건을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시켜 국기를 흔드는 일을 멈춰주기를 바란다. 민주당이 대선 무효 협박을 하지 말고 불복이라면 불복이라고 분명하게 대선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말했다.

   
▲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3년 10월 8일 ‘부정선거 대선 결과 불복’을 선언하면서 박 대통령의 사퇴 및 보궐선거를 주장했다. 당시 야당 의원 누구도 대선불복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 수석의 발언 다음날인 7월 16일 조선일보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선거 불복’ 현상이 2002·2007년 대선에 이어 다시 표출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 등이 "대선 불복하자는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불복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대선에서 패배한 진영이 결과에 심리적으로 승복 못하는 경향을 보이는 ‘대선불복증’은 한국정치 후진성의 한 단면”이라고 밝혔다.

이 상황에서 야당은 ‘우리는 불복하는 게 아니다’고 항변해야 하는 위치에 처했다. 김관영 민주당 대변인은 7월 16일에서 “민주당은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망가뜨리고 있는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에 불복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김한길 대표도 “민주당은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선거개입에 대해 정부를 공격해야하는 위치의 야당이 오히려 ‘불복이 아니다’고 해명해야 하는 수비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프레임의 힘이다. 그리고 이 대선불복 프레임이 먹힌 이유는 야당이 금기를 건드리고 있다고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그럼 지난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거야? 그럼 대통령을 다시 뽑자는 거야?”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민주화 이후 대다수 시민들은 적어도 선거 부정은 없다는 믿음에 기초해 투표를 하고 있다. 이를 믿지 못한다면 내가 선거를 하는 근거 자체가 흔들리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민주화됐다는 가치관이 흔들린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국정원 대선개입을 비판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하자”거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므로 대통령이 아니다”는 류의 주장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순간 다수 시민들의 금기를 건드리는 것이고, 금기를 건드리는 주장은 넓은 공감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10여년 전 금기를 건드린 경험이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였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지만 그래도 선거를 통해 뽑힌 대통령을 의회가 끌어내리려는 시도에는 공감하지 않았다.

‘선거에 불복하는거냐’ ‘불복인지 아닌지 입장을 밝혀라’는 텍스트는 그 자체만으로 보면 언론의 정당한 질문이다. 정치인에게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는 것만큼 정당한 질문도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시민들의 정서라는 맥락과 이 질문이 결합하면 이 질문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여야 간의 공수가 전환됐고 결과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해버렸다.

텍스트 뒤 권력의 컨텍스트

지난해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주총회가 열렸다. 합병을 앞두고 언론은 ‘국익 프레임’을 짰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 합병에 반대 의사를 밝히자 이 사안을 ‘투기자본의 국내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으로 규정하고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삼성 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7월 7일 중앙일보 이철호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엘리엇 같은 악질 투기꾼들에게 꼼짝 없이 당하는 걸 보면 솔직히 겁도 난다”는 자산 3조원대 한 오너의 말을 전하며 “엘리엇은 지금 삼성을 넘어 한국 전체를 물어뜯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 원장은 같은 날 한겨레 칼럼에서 “엘리엇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경우 앞으로 한국 대표 기업에 대한 헤지펀드의 공격이 더 빈번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도 언론은 “먹튀 투기자본에 국내 기업 희생양 안 된다”(7월 1일 아시아투데이) “한국 대기업, 헤지펀드 막을 막강 방패 없다”(8일 중앙일보) “삼성-엘리엇 전면전 속 금감원 ‘강건너 불구경’”(매일경제 9일자) 등의 기사를 내보내며 삼성과 엘리엇의 대결을 ‘국익’ 프레임으로 치환시켰다. 조선일보는 7월 9일부터 ‘투기자본에 흔들리는 한국’ 기획 시리즈를 내보냈다.

물론 엘리엇은 투기자본이 맞다. 하지만 합병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주주로서의 문제제기를 투기자본의 침략으로만 규정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두 회사의 합병은 삼성 이재용 체제로의 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디딤돌이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 대신 ‘합병=국익’이라는 단순한 도식이 미디어를 뒤덮었다.

관련 기사 : <합병이 국익? 언론의 억지 이면, 최대 광고주 삼성의 영향력>

‘엘리엇은 투기자본이다’라는 말은 맞다.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기업을 지키자’는 주장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엇의 상대가 삼성이라는, 두 회사의 합병이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맥락을 이해한다면 ‘엘리엇은 투기자본’이라는 텍스트는 국익을 위해 삼성을 지키자는 의미를 만들어냈다. 결국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되고 다음날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총동원돼 삼성의 후계 체제 안정을 도와준 셈”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가 컨텍스트를 읽어야하는 이유는 이처럼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는 텍스트가 컨텍스트와 결합되면서 지니는 효과 때문이다. ‘합병=국익’이라는 프레임은 삼성의 승계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도움을 줬다. 보수언론이 제기한 ‘대선불복’ 프레임은 대선개입 의혹을 차단함으로써 정부여당에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소설가 김훈은 기자시절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6하원칙(5W 1H)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팩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진실까지 6하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제 기사의 구성 요소에는 6하 원칙 외에 ‘맥락’이라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추가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권력의 컨텍스트’다.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

2. 뉴스란 무엇인가

(5) 뉴스가치의 판단 기준 : 대중은 어떤 사건에 분노하나

(6) 실전예제, 안철수와 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은 뉴스가치가 있을까

(7) 뉴스가치도 조작된다 : 신참 여경들이 병아리가 된 이유

(8) 같은 뉴스 다른 판단 : SBS는 왜 문창극 친일발언을 보도하지 못했나

3, How to read 뉴스, 초급편 : 텍스트 읽기

(9) 뉴스를 읽는 두 가지 키워드 : 의제설정과 프레임

(10) 뉴스 읽기의 기본 : 원인과 결과 그리고 전제조건을 보라

(11) 언론의 권력, 보도하지 않는 힘 : 언론이 숨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