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증거없는 해고”로 본 저성과자 해고의 진실
해고 ‘증거’ 만들어줄 저성과자 해고 지침… “대다수 성실한 근로자는 해당 안 된다”고?
“증거 없이 해고했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겨레, 뉴스타파 등이 지난 25일 공개한 녹취록에
서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하는 말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백 본부장은 2014년 4월 1일 MBC 관계자들과 극우매체
폴리뷰 박한명 편집국장과 회동 자리에서 2012년 6월 해고당한 최승호 전 MBC PD와 박성제 전 기자에 대해 언급한다.
백
본부장은 “걔네(최승호·박성제)들이 노동조합 파업의 후견인인데 이놈들 후견인은 증거가 남지를 않아 뭘 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그런데 이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해고를 시킨 것”이라고 실토했다. 백 본부장은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해고당시 인사위원회 위원이었다.
백 본부장의 발언은 정부가 추진하는 ‘저성과자 해고’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2일 공정인사‧취업규칙 지침을 발표했다. 공정인사 지침에는 소위 말하는 일반해고(통상해고) 관련 지침이 담겨 있다.
고
용노동부는 지침에서 통상해고를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계약 상의 근로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함’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구체적인 경우로 “업무능력 결여, 근무 성적 부진”을 들고 있다. 저성과자 해고다.
정부는 이 저성과자 해고가 쉬운 해고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정 인사지침(저성과 해고 지침)에 쉬운 해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30일 간담회 자리에서 “진영논리나 정치논리로 마치 (정부 지침이) 임금을 깎기 위한 것이랄지 쉬운 해고를 하는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수많은 판례와 법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 1월 24일자 뉴스타파 갈무리. |
하
지만 이번에 폭로된 MBC 임원들의 녹취록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저성과자 해고가 도입되지 않았음에도 해고는 너무나 쉽다. 최
PD와 박 기자는 노동조합 간부도 아니었고 따라서 파업을 주도하지도 않았는데도 해고됐다. 파업에 참여한 수많은 노조 조합원들 중
유독 둘만 골라서 해고했다. 백 본부장이 밝힌 이유대로라면 두 사람이 해고당한 이유는 회사에 찍혔기 때문이다.
정
부는 저성과자 해고가 쉬운 해고가 아니라는 근거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과정’과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기회 제공’,
‘적합한 업무로의 배치전환’ 등의 ‘절차’를 거치고도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통상해고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들었다.
그러나 회사가 특정 노동자를 찍어내려고 마음먹은 이상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절차는 요식 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30일 발행한 이슈페이퍼에서 “정부가 말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란 어불성설”이라며 “현재 현장에서 사용되는 인사평가기준들을 보면 ‘리더십이 있는가, 책임감이 있는가, 부서원과의 소통은 원만한가,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가, 업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가’등과 같은 극히 주관적인 평가지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고
용노동부 역량평가기준 매뉴얼을 보더라도 ‘기획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추진할 능력이 있는가’,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계발하려는 자세와 의지가 있는가’는 식으로, 업무성과 평가 항목이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노총은 “사용자가
의도적으로 근로자들에게 하위의 인사고과를 부여하여 저성과자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 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이런 지침들은 특정 노동자를 찍어내려는 회사에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이제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이 특정 노동자를 저성과자로 만들 각종 수치들을 개발해 해고할 ‘증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지침에는 “근로자의 근무태도, 역량, 근무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 이후 비로소 해고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쉬운 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
지만 해고에 앞선 배치전환, 교육훈련도 사실상 해고의 연기에 그칠 수 있다. KT가 대표 사례다. KT는 인력퇴출 프로그램을
동원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업무재배치와 교육훈련이 있었다. 사무직 텔레마케터를 울릉도로 보내 전봇대를 타게
하거나 업무특성상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부서로 보내는 방식이다.
MBC는 여러 차례 파업에 참여한 기자나 PD들을 비제작부서나 기존 직무와 무관한 부서에 보내 ‘보복인사’ 논란을 낳았다. 2012년 파업 이후 최일구 앵커 등은 '브런치 만들기', '요가 배우기' 등 업무와 동떨어진 교육을 받았다. 황우석 보도로 잘 알려진 한학수 PD는 수원 왕갈비 축제를 기획하고 MBC아카데미에 가서 대학 초년생들이 듣는 교양과목을 수강하기도 했다. 스케이트장 관리를 맡기려 하기도 했다.
▲ 1월 22일자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
이전까지는 이런 인사는 퇴직을 압박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하지만 저성과자 해고지침으로 이제 이런 전환배치나 교육을 거치면 해고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사측은 전환배치나 교육기회 제공을 해고의 ‘증거’로 내세우면 된다.
고
용노동부는 이번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발표하며 “대다수 성실한 근로자는 통상해고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해고 대상자는 “극히 예외적으로 업무능력이 현저히 낮거나 근무성적이 부진하여 주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 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고무효소송 패소를 예상하면서도 “소송비용이 얼마든, 변호사가 몇 명이, 수십
명이 들어가든 그거는 내 알바가 아니다”(백종문 본부장)고 말하는 사측 앞에서 ‘성실한 근로자’란 ‘회사 눈 밖에 나지 않는
근로자’를 뜻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백종문 본부장은 “파업을 할 때만 하더라도 1600명 사원 중에서
회사가 쓸 수 있는 사람들은 200~300명밖에 안 됐다. 어느 순간 상황이 나빠지게 될 경우 이 사람들이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저성과자의 칼날은 ‘극히 예외’가 아니라 ‘대다수’를 향할 지도 모른다.
녹취록을 폭로한 최민희 의원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우리 당은 노동법 개악에 반대한다. 누구든지, 여러분도 저성과자라고 회사가 낙인찍으면 해고될 수 있다”며 “이미 공영방송 MBC에서 이러한 일 벌어졌다는 것을 이 녹취록 폭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의 글 >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열은 이제 끝” 더민주, 김종인 체제로 전환 (0) | 2016.02.08 |
---|---|
더민주 “MBC ‘묻지마 해고’ 사태 특위 만들어야” (0) | 2016.02.08 |
“최민희 선거법 위반? MBC 보복성 보도인가” (0) | 2016.02.08 |
말 잘 듣는 지자체, 돈 먼저준다? 박근혜의 남탓 정치 (0) | 2016.02.08 |
정의화의 패기 “새누리당 개정안, 과격하고 위험” (0) | 2016.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