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수사 명목, 기자들 통화 내역까지 뒤지는데…
테러방지법 통과, 기자들도 안전하지 않다… 국정원에 과도한 권한, 규정과 범위도 모호
지난 2일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고 국정원의 권한이 비대해진다는 점 등 법을 둘러싼 우려는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 PD 등 언론인도 이런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다.
테
러방지법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조항은 ‘테러위험인물’과 관련된 조항이다. 테러방지법은 제2조 3항에서 ‘테러위험인물’을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테러예비 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고 규정한다.
또한 테러방지법 9조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장은 테러 위험인물의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개인정보 처리자와 위치정보 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조항으로 꼽히는 조항은 9조 4항이다. 국가정보원장은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테러 조사 및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다. ‘추적’이라는 광범위한 단어를 사용해 국정원의 ‘테러위험’ 의심자에 대한 감시 가능성을 광범위하게 열어뒀다.
만약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한 사람이 ‘테러위험인물’로 찍히고 그를 추적하기 위해 그와 인터뷰하거나 접촉한 주변인들의 기록까지 뒤진다면 어떻게 될까. 기자도 테러방지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아마 정부여당은 ‘음모론’이라 반박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2일 배포한 자료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나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테러방지법에서‘테러’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음 모론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전례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미 여러 차례 기자들의 개인정보와 통신이용정보를 뒤지다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지난 2004년 2월 국정원이 조수진 국민일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통신회사에 통화내역 조회를 의뢰한 곳이 국정원 ‘대테러국’이었다.
관련기사 : 기자통화 국정원 대테러국이 조회
▲ 2004년 2월 18일자 국민일보 기사 갈무리. |
국 정원이 문화일보 기자들의 휴대전화와 유선전화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4년 9월부터 수개월 간 문화일보 기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법인 명의의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나아가 통화한 상대방의 휴대전화의 통화내역을 조회했다. 문화일보가 2004년 9월 9일 ‘국정원 경제단 비리 속출’이라는 기사를 통해 “국정원 경제단의 주요 간부 등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거나 향응을 받아왔다”고 보도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관련기사 : "국정원, 문화 기자 통화내역 대규모 조회"
국
정원은 당시 문화일보에 “당시 보도에 대해 국정원의 내부 기밀정보가 언론에 유출된 것으로 보고,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를 실시하게 된 것으로 국정원은 당시 원장의 승인만으로 합법적으로 통화내역 조회를 벌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논란이 커지면서 2005년 5월 수사기관이 피의자나 피내사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하기에 앞서 반드시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으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이 개정됐다.
지난해 6월 국정원이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해 천안함 사건 관련 연구자의 컴퓨터에 스파이웨어를 심으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대북첩보활동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관련 기사 : 국정원 “미디어오늘 사칭 이메일 보냈다” 시인)
이
처럼 국정원은 여러 차례 기자의 통화내역을 ‘테러’ ‘수사’라는 이름으로 조회했고 기자 이름을 사칭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국정원에 통신정보를 포함한 각종 개인정보, 위치정보에 대한 방대한 수집권을 부여하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이후 기자들의 개인정보는
‘테러방지’라는 목적으로 더 방대하게 수집될 지도 모른다.
▲ 국정원이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해서 보낸 메일. |
테 러방지법은 흔히 미국의 애국법과 비교된다. 테러방지법의 그 모호한 조항이 우려를 낳듯, 애국법의 모호한 조항도 큰 문제가 됐다. 이 문제는 2013년 미국 NSA(국가안보국)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가 수천 만 명에 달하는 미국 국내인과 외국인에 대해 감청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글렌 그린월드 전 ‘가디언’ 기자가 확보한 증거 중 하나는 해외정보감시법원의 비밀 명령이었다. 비밀 명령의 내용은 미국 최대 이통사인 버라이즌에 미국과 해외, 지방 전화를 포함한 미국 내 전체 통신에 대한 전화기록 전부를 NSA에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이 명령의 근거는 애국법 215조였다. 미국 애국법은 정부가 개인정보 등 기업이 가진 기록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기준을 ‘관련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수사기관이 전화기록, 금융거래 등 민감한 정보도 진행 중인 조사에 대한 ‘관련성’만 입증하면 수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글 렌 그린월드는 저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에서 스노든을 만나기 몇 주 전, “미국 법무부는 기사의 소식통을 찾기 위해 AP통신 기자와 편집자의 이메일과 통화기록을 볼 수 있는 법원 명령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그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 법무부는 법원에 영장청구용 진술서를 보내 폭스뉴스의 워싱턴 지국장 제임스 로즌을 범죄혐의가 있는 소식통의 ‘공모자’로 고발했다. 스노든 폭로 이후에는 통화기록을 수집하는 프로그램이 버라이즌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 통신사 모두를 상대로 가동됐다는 AP통신의 보도도 나왔다.
정부여당은 테러방지법에 대한 우려를 ‘음모론’ 취급한다. 몇몇 언론은 정부여당의 해명을 열심히 받아쓰기에 바쁘다. 글렌 그린월드는 “(법원의) 판결 자체보다 애국법의 극단적 해석이 특히나 충격적이었다”며 “누구도, 심지어 2001년 애국법을 승인한 매파 공화당 하원 의원들조차 애국법이 미국 정부에 모든 국민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도감청할 권한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은 정부여당과 그 주장을 받아쓰는 언론의 예상을 뛰어넘는 범위에서 터져 나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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