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새누리당 텃밭? 세곡동 임대주택이 변수다
[르포] 선거구 조정, 대치동 빠지면서 세곡동이 중심…“여긴 여당 텃밭” vs “야당, 가능성 있다”
부동산은 정치다. 집값의 상승과 하락은 주민의 유입과 탈출을 불러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계급 이익을 공고히 하려는 ‘계급
투표’ 양상이 벌어진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집값 상승과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도입을 거치며 보수여당의 성지로 거듭난 강남이
대표 사례다.
강남의 ‘계급투표’에 균열이 생기려면 부동산에 변화가 생겨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변화는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보수정권,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강남 보금자리 주택으로 인해 세곡동을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촌’이 형성됐다. 2011년 4000여 명이던 강남 세곡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5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또 다른 변화는 선거구 조정이다. 강남구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강남을에 속해 있던 대치
1,2,4동과 강남갑에 속하던 삼성1,2동과 도곡1,2동이 떨어져 나가 강남병 지역구가 신설됐다. 강남을에는 대치동을 제외한
개포1,2,4동, 세곡동, 일원1,2동, 수서동이 남았다.
대치동은 야당 후보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강남
오브(of) 강남이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2만 899표를 몰아줬다. 서울 전체에서
15% 차이로 압승한 박원순 시장도 대치동에서는 1만 4974표를 얻는 데 그쳤다. 그런 대치동이 강남을에서 빠졌다.
기자가 지난 3월 14일 강남을을 방문해 지역 민심을 들어본 결과 미묘한 균열이 느껴졌다. 많은 강남주민들이 ‘여당 텃밭’을
자신하면서도 ‘세곡동’을 변수로 꼽았다. 강남을 지역에서 25년 간 살았다는 택시기사 김익수씨는 “여긴 여당 텃밭이다. 구청장이든
뭐든 다 여당이 한다. 구의원이라면 몰라도 (야당은) 국회의원 되기 힘들다”면서도 “근데 세곡동 세입자들이 많아져서 모르겠다. 그
사람들이 야당에 몰아준다면 결과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곡동 강남아이파크에 사는 주민 이 아무개씨는 “내가
편향되게 들었는지는 몰라도 야당 후보가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세곡동 투표율”이라며 “개포하고 수서, 일원에서 여야 비슷하게
나오면 야당이 이기는 거다. 개포에서 진다고 해도 세곡동 투표율이 높으면, 이무래도 이쪽은 야당 쪽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강
남주민들마저 ‘세곡동’을 변수로 꼽는 데는 근거가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세곡동은 박원순 시장에게 5515표를 던졌다.
정몽준 후보는 4339표에 그쳤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치동을 제외한 강남을 지역구(일원, 수서, 개포)는 박 시장이
앞서거나 근소한 차이로 정 후보가 앞섰다.(수서동: 정몽준 3952 대 박원순 3907)
인구가 4천여 명이었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세곡동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게 1363표를, 한명숙 후보에게는 791표를 던졌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야권 성향이 강해진 셈이다. 2012년 총선에서 세곡동은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에게 2904표를, 정동영 후보에게는 2136표를
던졌다. 강남을 전체에서 김 후보가 7만 표를 넘게 받고 정동영 후보는 4만 8천표에 그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곡동에서는 여야 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야당 후보도 만만치 않다. 재선에 도전하는 김종훈 의원에 맞서 전현희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더민주가 수도권에서 제일 먼저 전 후보를 전략공천 할 정도로 당도 경쟁력을 인정했다.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라는 성공 스토리는 야당 후보임에도 강남에서 먹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현희 후보는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경력이 특이하다보니까 교육열이 높은 대치동에서도 우호적이다. 새누리당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훈
후보 측 관계자도 “강남을이 강남이긴 하지만 갑이나 병에 비해 어려운 지역인 건 사실이다. 서울시장 선거 때도 야권이 선전한
지역으로, 이번엔 후보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이런 전 후보가 집중공략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세곡동이다.
보금자리
주택 도입 이후 5년 째 세곡동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는 정영태 세곡사거리연합회 회장은 세곡동이 야권 강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주민들 구성 자체가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다. 기초생활대상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빈곤 계층이라고 꼭 야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박탈감’이다. 정영태 회장은 “기반 시설도 너무 없고 주민들이 생각하기에 강남 끝자락에
붙어서 홀대받는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임대주택을 짓는다고 사람은 많이 받아들였는데 그에 맞는 도시 설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 강남을 지역 지도를 보면, 세곡동 북쪽 방향에는 도곡역, 대치역, 학여울역, 개포동역, 구룡역, 대청역, 일원역 등
지하철 역 여러 개가 붙어 있다. 반면 수서역 남쪽 세곡동 일대에는 지하철역이 하나도 없다.
일대에 중학교도
세곡중학교 하나뿐이다. 게다가 세곡동 임대주택 지구는 다자녀가구를 우선적으로 분양받아 강남에서 어린 아이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려면 수서동까지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곡동사거리와 수서역사거리를 연결하는 밤고개로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판교, 분당, 강남을 연결하는 요충지인지라 출퇴근시간이 되면 3.3km 밖에 되지 않은 밤고개로를 지나는데 40분 가까이
걸린다. 오는 8월 KTX수서역이 개통되고 내년까지 성남 위례신도시에 11만 명이 입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통난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 3월 14일 TBS 뉴스 갈무리. |
주 민들은 이런 이유로 학교 및 각종 편의시설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계획돼 있던 학교부지, 도서관 부지 등이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용도로 민간에 매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세곡사거리에 지하철역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강남아이파크에 거주하는 이 아무개씨는 “안 그래도 이 동네에 기반시설이라곤 세곡동 주민센터 하나뿐인데, 학교부지나 도서관 부지 등 여러 계획된 기반시설마저 주택을 짓는다는 등의 이유로 용도가 바뀌어 매각되고 있다”며 “임대주택 세우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다. 기반시설이 하나도 없는 데 뭘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데려 와야 할 거 아닌가”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 아무개씨는 또한 “평당 가격이 비싼 지역들에는 이미 역이 두 개 세 개씩 있고 600m마다 역이 하나씩 있다. 그런 곳에는 역을 또 만들려고 하는데 세곡동에는 역이 하나도 없다”며 “세곡동을 개무시하고 부자들을 위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박탈감은 정치권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세곡동 주민 A씨는 “구청이 이렇게 대책 없이 하는데 여당 의원이란 사람이 막아낸 게 하나도 없지 않나. 이렇게 여당 의원이면서 힘도 안 쓰고 무대책으로 일관한 사람들에 대해 주민들이 당연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전세주택에 살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 지역 주민 B씨는 “후보자들과 주민들이 함께 지하철역 개설 관련한 간담회를 진행했는데, 오히려 더민주의 전현희 후보가 지역현안을 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김종훈 의원은 현역 의원인데도, 이해하고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지만 확답을 안 주더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후보들도 이러한 세곡동의 민심을 알고 있다. 새누리당 후보들은 당초 사무실을 대치동에 잡았다. 현역 김종훈 의원은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 앞에, 원희목 후보는 은마아파트 상가에 사무실을 잡았으나 대치동이 빠지면서 사무실을 수서동으로 옮겼다. 세곡동으로 향하는 요지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사무실 맞은편이다. 심동섭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세곡 지하철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종훈 의원 측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세곡동은 광역 차원의 개발이 되었어야 하는 지역인데 계획을 잘못 짜서 문제가 많다”며 “김종훈 의원이 부족한 교통 및 기반시설을 확충하는데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의원 본인도 세곡동에 살고 있어서 내용은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김종훈 의원이 당선됐을 때 1만 5천 명이던 인구가 계속 늘어나서 생긴 문제이지, 여당 텃밭이라고 신경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해 무시한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종훈 의원 측은 오히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김 후보가 재선의원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지하철 문제도 국토부나 국가에서 해결해야할 부분이 많다. 야당보다는 여당이 낫다”며 “힘 있는 재선 의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에게 ‘그래도 여당이 낫지 않나’는 김 의원 측 입장을 전했다. 세곡동 주민 A씨는 “여당이 힘이 센 건 맞다”면서도 “근데 이 문제는 서울시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A씨는 “주민들은 강남구청장하고 서울시장이 사이가 안 좋아서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갖고 있다”며 “오히려 야당 후보가 되면 야당 서울시장과 호흡이 잘 맞아서 잘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택시기사 김익수씨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면서도 “여당이 오래했지만 지역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힘없는 야당을 뽑기는 그렇고…”라며 말을 흐렸다. 한 달이 채 안 남은 기간 동안 야권은 보수의 성지 강남에서 벌어진 조그만 균열을 승리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강남에서 다시 ‘부동산 정치’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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