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기사

조선일보, 김종인 투사로 만들기 스텝이 꼬였다

조선일보, 김종인 투사로 만들기 스텝이 꼬였다

[비평] 친노를 쳤는데 친노가 반발? 문재인과 갈등? 친문세력 구축? 오락가락 논조


모든 언론은 뉴스를 재구성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뉴스를 이해하도록 하는 틀, 프레임을 갖고 있다. 이 프레임은 팩트를 정해진 틀에 따라 받아들이게 만들고 특정 대상을 평가하는 기준과 시각을 바꾸어버린다.

조 선일보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바로 ‘더민주=친노 운동권 정당’이라는 도식이다. 이 프레임은 1월 15일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한 김종인 대표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김 대표가 당에 온 이후 끊임없이 조선일보가 ‘친노 운동권’이라 부르던 당내 세력과 마찰을 일으키고 이들을 ‘컷오프’시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상황의 변화에도 같은 프레임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러 차례 조선일보의 스텝이 꼬였다.

조선일보, 김종인을 ‘친노 운동권’에 맞선 투사로 만들다

조선일보는 김종인 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취임하기 전부터 김 대표의 존재를 ‘더민주=친노운동권 정당’ 프레임에 끼워 맞췄다. 김 대표 영입 소식이 알려진 1월 15일 조선일보는 사설에 서 “지금 더민주는 호남 비주류의 잇단 탈당으로 친노 운동권 정당의 색채가 더 강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새 인물 영입으로 친노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고 당의 이념과 색깔도 바꾸는 모습을 보여야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친노 주류와 정책‧노선‧공천을 놓고 대립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만일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인적‧정책적 쇄신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김종인 선대위는 실패작이 되고 김 위원장도 친노의 일회용 얼굴마담이나 총선용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밝혔다.

1월 16일 6면에는 박영선 의원 인터뷰를 실었다. “친노 패권 바꿀 의지 있는지 본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박 의원의 말이 제목으로 뽑혔다. 1월 18일 6면에는 “당내 친노 패권주의를 수습하겠다”는 김종인 대표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가 실렸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김 대표가 1월 27일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김 대표의 등장을 ‘김종인 vs 친노’의 대립구도로 설명했다.

조 선일보는 김 대표 취임 이후에도 내부 갈등을 모두 ‘친노 vs 김종인’ 구도로 설명했다. 지난 2월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한국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를 두고 김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등 더민주 몇몇 정치인들의 입장이 엇갈렸다. 문 전 대표가 정부의 대응을 비판한 반면 김 대표는 ‘북한 궤멸’을 이야기하며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대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2월 20일 사설에 서 “최근 문 전 대표와 친노 인사들이 쏟아내는 강성 발언을 보면 과거 좌파 운동권식 대북 안보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며 “‘(개성공단 중단에)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다’라는 김종인 대표의 말은 빛을 잃고 있다. 결국 김 대표는 총선용 얼굴마담일 뿐이고 당의 근본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라고 비판했다.

더민주 공천에서 벌어진 내부 갈등도 김종인 vs 친노운동권으로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친노 주류 의원들이 강기정 의원을 비롯한 현역 의원 물갈이에 나선 김종인 비대위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2월 27일 기사)

▲ 2월 27일자 조선일보 1면

이 후 김종인 대표가 몇몇 의원들을 상대로 한 구제를 언급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더민주가 10명이나 되는 현역 의원에 대해 공천 심사 배제라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자 뭔가 달라지려고 몸부림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틀도 지나지 않아 친노 의원들의 집단 반발과 당 대표의 동조로 번복하려 하고 있다”며 “실제 번복하면 더민주는 체질 자체가 결코 달라질 수 없는 당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2월 27일 사설)라고 강조했다.

조 선일보에게는 필리버스터 중단을 둘러싼 김 대표와 의원들 간의 갈등도,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내부 갈등도 친노 운동권 vs 김종인 대표의 대립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둘러싼 당내 갈등 과정을 통해 친노 운동권 색깔이 다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전 대표가 당의 변화를 명분으로 김 대표에게 총선 지휘봉을 맡겼지만, 결과적으로 김 대표는 ‘분장사’ 역할에 그쳤다는 것이다”(3월 23일 기사)

친노운동권, 도대체 누구냐

조 선일보는 이처럼 김 대표가 더민주에 영입된 이후의 40일을 ‘친노 vs 김종인’ 구도로 설명했다. 문제는 이 구도가 ‘더민주=친노 운동권 정당’이라는 대전제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김종인 대표가 진짜 조선일보가 ‘친노 운동권’이라 부르는 의원들을 쳐낸다면? 조선일보는 ‘친노 vs 김종인’, 그리고 ‘더민주=친노 운동권 정당’이라는 두 가지 어긋나는 명제를 공존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일보는 더민주의 1차 컷오프 명단이 공개된 직후인 2월 25일 사설에 서 노골적으로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 시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동료 최고위원을 향해 ‘공갈이나 친다’며 당을 헤집어놓고 여당을 향해서도 틈만 나면 막말을 퍼부어 국회와 국회의원의 격(格)을 떨어뜨린 정청래 의원 같은 사람은 왜 남겨두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정청래 의원은 컷오프 대상이 됐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3월 11일 기사에서 “막말, 갑질 등 도덕성 문제로 논란이 된 현역 의원들은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친노나 운동권, 486 의원 대부분이 구제됐다”고 말한다. 마치 정청래 의원은 친노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식의 설명이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다른 기사에서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에 “친노 주류 의원들도 반발했다”고 전했다.

▲ 3월 11일자 조선일보 2면

조 선일보 설명대로라면 정 의원은 친노 운동권이 아니라 막말 등 도덕성 문제로 탈락했는데 정작 그의 탈락에 친노가 반발했다는 것이다. ‘김종인 vs 친노’(김종인의 컷오프에 반발하는 친노)와 ‘더민주는 친노운동권’(친노운동권은 아직 남아 있다) 두 가지 명제를 공존시키려는 노력이다.

급기야 김종인 대표는 그간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친노의 좌장으로 묘사한 이해찬 의원마저 컷오프 시킨다. 조선일보는 3월 15일 사설에 서 “더민주가 운동권당이었던 탓은 밖에서 민노총, 전교조, 민변과 같은 세력들이 당을 에워싸고 꼼짝달싹 못 하게 해온 탓도 있다. 이들 외곽 세력의 생각과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며 ‘더민주는 친노운동권 정당’이라는 명제의 근거를 더민주 밖에서 찾는다.

허상의 강경파 만들기

‘김 종인 vs 친노’ ‘더민주=친노운동권’ 이 두 가지 명제가 공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순간은 김종인 대표가 ‘강경파’에 속할 때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친노=운동권=강경파라는 도식을 내세우면서 더민주의 주류를 차지하는 친노운동권들이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고 틈만 나면 국회를 나가 장외투쟁을 하는 강경파들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지난 1월 29일 김종인 대표와 박영선 비대위원이 이끄는 야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본회의에서 원샷법과 북한인권법을 처리하겠다는 여야 합의를 깨버렸다.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이는 ‘친노 운동권 강경파’스러운 행동이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허상의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합의 파기 소식을 전하는 1월 29일 기사 제목은 ‘더민주 새 지도부도 강경파에 끌려가나’다. 새 지도부인 김 대표와 박 의원이 합의를 깼는데도 ‘강경파에 끌려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1월 30일 기사 제목도 ‘강경파에 끌려다닌 더민주…5시간 의총 내내 “협상 너무 무르다”’이다.

오락가락 보도, 김종인과 문재인의 관계는?

조선일보가 ‘김종인 vs 친노’ ‘더민주는 친노운동권’ 이 두 가지 명제를 공존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의 관계를 오락가락 해석하는 것이다.

조 선일보는 김 대표가 취임한 이래 계속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간의 갈등설을 보도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조선일보가 보기에 친노 운동권의 좌장이고, ‘김종인 vs 친노’ 대립 구도를 부각시키기에는 문 전 대표와 김 대표의 갈등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2월 29일 기사 ‘서울 당대표와 양산 당대표, 더민주의 불안한 동거’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가 컷오프, 현역 물갈이, 필리버스터, 대북정책 등 현안에서 계속 충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2월 29일자 조선일보 4면

조 선일보는 이러한 ‘갈등설’과 함께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가 사실은 한 몸이라는 식의 기사를 여러 차례 내보냈다. 김 대표가 친노를 숙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숙청은 더민주를 새로운 친노(친문)들의 정당으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시각이다. 이런 기사는 ‘더민주=친노운동권 정당’이라는 명제를 뒷받침한다.

조선일보는 2월 26일 기사 ‘더민주 현역 날아간 지역구…新문재인 세력 투입?’에서 현역 의원이 물갈이 된 자리에 문재인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은 이해찬 의원이 컷오프된 소식을 전하는 3월 15일 기사에서도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깝게 지냈던 친노 핵심 중 단수 공천을 받은 의원도 적지 않다. 문 전 대표의 대선 준비에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는 젊은 초‧재선들”이라고 밝혔다.

조 선일보는 대체 김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사이가 좋다는 걸까 안 좋다는 걸까? 둘 사이 갈등이 있는데 왜 김 대표는 문 전 대표를 위해 친노를 컷오프 시킨 걸까? 이러한 보도 행태는 ‘김종인 vs 친노’와 ‘더민주=친노운동권’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공존시키려는 고육지책이다.

조선일보 덕분에 친노가 거둔 ‘의문의 1승’

두 가지 명제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조선일보는 친노 운동권을 '친노 vs 김종인‘ 대립의 승리자로 표현한다. 김종인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 파동에서 대표직 사퇴를 걸고 비대위원 전원의 항복을 받아냈다. 김 대표가 당무 거부와 사퇴카드로 더민주를 ’조련‘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분석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김종인 대표와 비대위가 만든 비례대표 순번과 중앙위원회에서 투표를 거친 순번이 다르다는 이유로 “김종인 대표가 주도했던 비례대표 명단은 22일 새벽 중앙위를 거치며 친문재인 및 운동권 중심 명단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한다. (3월 23일 기사) 조선일보는 “친노 패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매커니즘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친노 운동권 그룹은 어딘가에 지휘부가 있는 것처럼 이틀동안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 3월 23일자 조선일보 3면

조 선일보는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다수파의 위력과 일사분란함을 보여줬다”며 주류인 친노가 김 대표를 찍어 누른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정작 김종인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중앙위원회에서) 상당수 발언자들이 당의 정체성 운운하는 이야기 많이 했는데 표결결과로 나타난 것을 볼 것 같으면 말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당의 주류가 아닌, 몇몇 ‘정체성’ 이야기하는 이들이 당을 흔들고 있다는 인식이다.  

김 대표는 또한 비례대표 공천 파동에서 문 전 대표가 자택을 찾아와 만류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이후 김 대표에 대한 당내 반발은 일정부분 사그라 들었다. 김 대표가 문 전 대표를 통해 더민주를 제압했다고 보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만류한 행동마저 “비례 파동으로 김 대표는 역시 ‘바지사장’이고 당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일보 덕분에 ‘친노 운동권’이 ‘의문의 1승’을 달성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