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을 멈추고 싶은가?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다
[서평] 소문의 시대... 유언비어 엄정 대처"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뉴스를 만들어내는 것
기자들은 속칭 ‘찌라시’라 불리는 사설정보지를 하루에도 여러 개 전해 받는다. 그 중 눈길을 끄는 정보는 직접 확인해보기도
한다. 찌라시의 종류는 다양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찌라시도 있고, 이에 대한 반박성 찌라시도 있다. 정보제공 차원의
찌라시도 있고 어떤 사건의 알려지지 않은 원인을 설명해주는 찌라시도 있다.
미디어의 발달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찌라시가 등장하기 전부터, 공식 기구나 제도를 통해 알려지지 않는 정보는 늘 존재했다. 가장 오래된 미디어,
‘소문’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마츠다 미사의 책 ‘소문의 시대’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온 소문에 대해 집중 분석한다.
마
츠다 미사는 소문을 ‘사람에서 사람으로 사적인 관계성을 통해 확산되는 정보’라 규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소문에 가담하는
중요한 동기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은 욕구’다. “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인데” “이건 처음 말하는 건데”
“오프더레코드로 말하면”으로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들이 바로 소문의 출처다.
남이 모르는 이야기를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호혜성의 법칙’에 따라 상대방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을 경우 나도 뭔가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제공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난다.
이
러한 유대감을 통해 재난상황에서 소문이 많이 퍼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지진으로 인한 재해상황에서 ‘여진이 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에 휩싸인 한 사람, 그는 혼자 끙끙 앓기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들은 곧 “곧 구조대가 구하러 온다고 들었어요” “여진은 이미 지나갔다는데요” 등의 ‘들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잘못된 소문이나 유언비어의 확산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바로잡히지 않는 이유다. 소문은 어떤 단계를
거치면 특정 공동체가 공유하는 신화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베에서 공유하는 ‘5.18 북한 침투설’ 등의 유언비어는
단순한 헛소문이 아니라 일베 유저들이 유대감을 갖게 만드는 기제다.
일베가 진실이라고 믿는 소문을 오유(오늘의유머)
유저들은 믿지 않는다. 소문이 관계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과거 소문은 ‘아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인터넷은 익명성의 공간이다. A라는 사람이 한 말을 신뢰해 이 소문의 전파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A를 원래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A와 관계맺음을 해야하는데,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런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
따
라서 인터넷상의 소문은 늘 그 소문을 공유할 만한 유대감을 지닌 공동체 안에서 퍼져 나간다. 더불어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38석을 얻었음에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총선 개표방송을 보며 웃지 않았던 이유가 자신의 예상과 달리
더민주가 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공유한다. 반면 안철수 대표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 소문은 유언비어 취급을 받을 것이다.
▲ 소문의 시대 / 마츠다 미사 지음 / 추수밭 펴냄 |
목격된 정보는 전달되는 과정에서 평균화, 강조, 동화라는 세 가지 경향을 띤다. 복잡한 이야기는 간단해지고 남은 부분은 강조되며 경우에 따라 극단적인 이야기로 흐른다. 마츠다 미사는 “소문을 왜 믿느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소문을 듣고 전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방향과 내용으로 아예 소문을 바꿔 나가기 때문이다.
이를 정보의 왜곡이라 볼 수도 있지만 바꿔 말하면 이는 ‘소문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다. 소문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그럴싸한 근거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때 ‘코스모 석유 화재로 유해물질이 포함된 비가 내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이 트위터에서 퍼져나간 과정을 추적 조사한 결과, 지진 발생 1시간 반 뒤에 ‘석유 정제소에 불이 났다는데 유해물질이 엄청 날 것 같다’는 메시지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석유 화재 영향 때문에 유해물질이 발생했으니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어 ‘우비나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정보가 추가됐고 ‘의사협회가 하달한 팩스’ ‘공장 근무자에게 들은 정보’ 같은 출처가 더해졌다.
이 소문은 확산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막연한 공포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비나 우비를 착용해야 한다’는 구체적이고 실행가능한 대응책이 소문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만 있으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이기에 사람들이 친구들에게 알린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왜곡, 혹은 소문의 완성 현상은 헛소문에 ‘진실’로 맞서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실을 들어야할 사람들이 사실은 소문을 과장시켜 헛소문으로 만드는 게 가담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소문이 헛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알고 있는 게 나쁠 게 없는 정보’이기에 확산시켰다.
마츠다 미사는 이처럼 소문에는 사실을 뛰어넘는 신화성과 이야기성이 있기에 소문을 깨뜨리기 위해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화성이나 이야기성 자체를 약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980 년대 프랑스 오를레앙에서는 유대인 가게의 탈의실에서 여성이 사라진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이에 반인종차별조직들은 ‘반유대주의’라는 비판을 가했다. 일종의 대항 캠페인이었다. 소문을 믿던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침묵하거나 ‘나는 그 소문을 안 믿었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반유대주의라는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내서 소문을 사라지게 만든 셈이다.
헛
소문을 사라지게 만드는 정공법도 있다. 마츠다 미사는 “‘나는 A를 원한다’는 표현을 할 수 없는 경우 그것이 유언비어로서 ‘B가
있었다’는 식으로 확산된다”고 지적한다. 유언비어가 통제로 억눌린 상황에서 발생하는 여론이라는 것이다.
따라 서 헛소문을 없애는 정공법은 “사람들이 정부의 공식 발표나 미디어의 보도에 대해 신뢰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마츠다 미사는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메르스 사태 때도, 위안부 합의 때도, 철도민영화 논란 때도 ‘유언비어 엄정대처’를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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