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전형'이라는 말이 떠돌길래 난 그런 전형이 새로 만들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기회균등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여러 사람들 중에 민주화운동 유공자의 자녀가 있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거였다. 자격 요건이 민주화운동 관련자 외에도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5·18 민주유공자, 고엽제 후유증 유공자, 특수 임무 유공자, 기초생활수급자, 다문화가정 자녀 등 10여 가지에 달하고, 뽑는 인원이 학과당 많아 봤자 1~3명이다. 어떤 경우는 일반전형보다 더 경쟁률이 높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기회균등전형은 정원 외.) 이게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누리는 특혜란다.
이런 기회균등전형을 '민주화운동 전형'이라 부르는 이유는 명백하다. 청년세대보고 민주화 세대랑 싸우라고 부추기는 거다. ‘니들이 힘든 건 니들 부모 세대 때문이야. 그러니 재들을 원망해.’ 왜 부추기는 걸까? 그래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까.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특권층의 비아냥에, 부모를 원망하는 대신 부모와 손잡고 거리에 나왔던 촛불혁명의 위력을 보았으니까. 보수파들의 정치는 늘 이런 식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든다. 성별로 갈라치고 세대로 갈라치고 (미국에서는) 인종으로 갈라치고.
개탄스러운 건 이런 갈라치기 정치에 보수파도 아니고 진보파 일부도 동참하고 있다는 거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진짜 특권층을 겨냥하는 제대로 된 싸움 하나 못 하면서 윗세대 욕하는 데 동참하고 성별로 싸움 붙이는데 합류하고 있다. 이재명이 왜 지지율이 계속 올라가겠나? 쓸데없는 싸움 안 하고 국민 다수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세력들만 골라서 때리니까 그런거 아닌가.
최근 들어 공정성 논란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명백하다. 살기 너무 힘들어서다. 경쟁이 너무 심하기에 조그마한 룰의 변경만 생겨도 나의 노력은 무산되버린다. 여기에 더해, 과거에는 불공정해도 '세상이 원래 그렇지 뭐'라고 그냥 넘어갔을 사안에 대해 바로바로 문제제기하는 풍토(혹은 그런 세대)가 등장했다. 팬들이 모여서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검찰 고발까지 하는 시대다. (그리고 그 의혹제기가 사실로 드러나는 나라다)
이들의 분노, 그리고 불만을 바로바로 드러내는 기질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시스템으로 향할까봐, 특권층에게 향할까봐, 대신 특정 세대에 돌리기 위한 저질스러운 싸움 붙이기가 반복되고 있다. 윗세대 중에 기득권 누린 사람들 있겠지, 왜 없겠나.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당시에도 노동자, 힘없는 서민으로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20대 금수저와 비정규직 간의 격차 못지 않게 50대 금수저와 일용직 노동자의 격차는 크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빌런 타노스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처음에 어벤져스는 누굴 희생시킬 것인가, 그게 정당한가 아닌가를 두고 다퉜다. 그러다가 싸움에서 졌다. 타노스의 질문 안에서 타노스와 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끝나지 않는 전쟁, ‘인피니티워’다. 그 싸움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엔드게임) 타노스가 던진 질문을 거부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모두를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쓸데없는 싸움은 거부해야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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