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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노동계 입장은 쏙 빼먹은 보수언론

‘정년연장’, 노동계 입장은 쏙 빼먹은 보수언론
[이슈분석] 언론, “정년연장 대신 임금깍자” “취지는 좋지만 추가대책을”
2016년 1월부터 300명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연장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여야 의원들은 60세 정년보장을 골자로 하는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하지만 정년보장을 늘리는 대신 임금 피크제를 도입할 것이냐는 쟁점에 대해서는 여야가 미묘한 입장차를 보였다. 재계와 노동계 역시 이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정년연장 취지는 좋다, 임금피크제는?

언론은 정년 연장을 주요 소식으로 전했다. 몇몇 언론은 정년연장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정년연장의 취지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일보는 16면 기사 제목을 <“고령화 가속화에 정년 연장은 세계적 흐름”>으로 뽑았다. 이 기사에서 한국일보는 “평균수명이 더 길어진 만큼 직장에 더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정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20-30년을 소득 없이 빈곤하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정년연장은 ‘세계적 추세’이며 국민연금을 60세부터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50대에 퇴임할 경우 소득 없는 기간이 길다”며 정년연장의 당위를 강조했다.
 
  
한국일보 16면
 
 
서울신문은 6면 기사 제목을 <고령화 시대 고용 안정 시급 판단>으로 뽑았다. 서울신문은 “수명이 연장된 만큼 정년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며, 정년연장이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 사태”에 대처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년연장이 조기 퇴직자 일자리 문제 및 고용불안정, 연금재정과 의료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부담 등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정년연장에 ‘합의’한 것은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임금 피크제’이다.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나이가 들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만큼 임금을 줄이자는 것이다. 재계는 정년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려면 임금 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임금 피크제가 악용될 수 있으며,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하는 정년 연장은 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후 빈곤대책으로서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은 보장하는 제도이다. ©노동부 홈페이지
 
 
여야 정치권 역시 정년연장에는 합의했지만 임금 피크제에 대해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새누리당은 ‘임금 조정’이라는 명시적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포괄적 표현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여야가 공방 끝에 사실상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표현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전했다. 임금피크제는 도입하되 이를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차이는 여전했다. 노조가 임금 피크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새누리당은 이에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제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경향은 새누리당이 임금 조정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분쟁기구를 신설하자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기존의 노동위원회를 이용하자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1면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놓고 싸운다?
 
재계 일각은 임금 피크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정년연장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취했다.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고령근로자의 생산성은 젊은 근로자의 60% 밖에 되지 않는데 임금은 몇 배나 높기 때문에 인건비는 늘고 생산성은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재계의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재계가 단순히 ‘돈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정년연장이 청년실업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논리도 나왔다. 세계일보는 재계가 “청년실업에 따른 세대간 일자리 갈등 소지가 있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며 시기 상조론을 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역시 “청년 일자리를 뺏는다. 전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재계의 입장을 전했다. 
 
  
세계일보 1면
 
 
과연 그럴까. 재계의 논리에 반대하는 분석도 나왔다. 한겨레는 6면 기사에서 “재계의 이런 논리는 세대갈등을 부추길 뿐 현실을 왜곡하는 논리”라는 반박을 제기했다. 이어 청년유니온의 말을 빌려 “청년고용할당제와 정년 연장이 양립할 수 없다는 재계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정년보장은 ‘일자리 보장’ 측면에서 동의한다. 재계가 새로운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기존 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리면서 청년층에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 역시 재계 논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경향은 3면 기사에서 “1990년대 청년 고용을 위해 정년 연장을 금지했던 유럽 국가들 경우를 보면, 정년 연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청년 고용은 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정년 연장과 청년 실업이 연동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기업들이 전체 고용을 줄이는 기회로만 삼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기업들이 정년 연장을 핑계 삼아 신규채용을 늘리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노동계 입장이 없는 보수언론
 
몇몇 언론은 정년연장에 대한 논란을 소개하며 정년연장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을 쏙 빼먹었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 <60세 연장 동시에 임금피크제>를 통해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의 연계를 두고 여야가 갈등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고, “정년 연장을 하더라도 임금피크제가 확실하게 실시될 수 있도록 해야 정년 연장으로 인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최소화될 수 있다”는 재계의 입장도 전했다. 하지만 임금 피크제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목소리,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노동계의 목소리는 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였다. 동아일보는 “기업의 고용부담이 커진다”, “기업의 신입사원 고용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고용 유연화 방안을 도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의 경영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재계의 입장을 충실히 전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정년연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중앙일보는 노동계의 목소리를 한 줄 넣어줬다. 중앙일보는 먼저 정년연장으로 인해 “청년층 취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한국 경영자 총협회의 주장과 “기업 내부의 인력 순환 단절을 불러올 것”이라는 대기업 임원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 다음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는 법으로 정하기보다 개별 사업장에 맡겨야 한다”는 한국노총 대변인의 말을 전했다. 한국노총 대변인의 한마디가 노동계의 목소리 전부다. 이 말만 보면 마치 노동계가 임금피크제 도입은 찬성하지만 이를 개별 사업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인 것처럼 보인다.
 
  
중앙일보 1면
 
 
정년연장은 경제민주화의 일환?
 
노동계의 입장에 관심이 없는 보수언론과 달리 한겨레는 경제민주화라는 의제를 통해 정년연장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한겨레는 정년 60살 보장법을 소개하는 1면 기사에서 ‘정무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4개 법안,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와 이용법 개정안’이 정무위에서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같이 보도했다.  
 
이어 정년 보장법을 소개하는 6면 기사 밑에는 <불공정거래 고발권 사실상 4곳으로 확대 “기업 활동 위축 우려”…재계 발등에 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경제민주화 법안과 정년연장을 엮어서 소개함으로써 정년연장이 서민과 노동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경제민주화가 될 수 있다고 부각시킨 것이다. 
 
  
한겨레 6면
 
 
대책이 필요하다
 
정년연장을 둘러싼 찬반을 넘어 대부분의 언론이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한겨레는 6면 기사 제목을 <고령화 사회 ‘고용안정’ 길 텄지만…임금 맞물려 ‘양날의 칼’>로 뽑았다. 한겨레는 정년연장이 “양날의 칼이다”이라며 “기업은 임금 총액의 상승을 우려하고 노동계는 정년보장은 안 되는데 임금만 줄어드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찜찜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는 “법제화 되도 지켜지기 힘든 상황에서 전체 임금을 깍는 형태의 임금피크제가 남용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하고, 재계도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했다. “사측은 임금피크제 악용하고 노조는 정년연장은 받아들이면서 임금피크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노사의 편법 운용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고 말했다. 
 
경향은 3면 기사 <고령화 사회 ‘고용안전’ 큰 진전…임금체계 조정이 최대 관건>정년연장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은 한정된 대기업 노동자들만 혜택을 볼 뿐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경향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