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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해군 기지= 해적 기지'? "해적을 모욕하지 마!"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저자
박노자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2-02-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국가의 실체를 직시하다!폭력으로 유지되는 국가와 결별하기『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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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기지= 해적 기지'? "해적을 모욕하지 마!"

[대한민국을 묻는다] 박노자의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조윤호 대학생

박노자는 우리를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지식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출판 펴냄)을 통해 박노자는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모순과 문제점,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의 논리를 안고 있는 집단인지를 신랄하게 파헤친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한겨레출판 펴냄)에서 박노자는 우리가 흔히 지상 천국으로 생각하는 복지 국가 노르웨이가 지닌 한계와 모순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나를 배반한 역사>(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는 우리가 존경하는 독립투사들이 사실은 제국주의와 사회 진화론을 숭배한 이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가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 책을 하나 들고 왔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한겨레출판 펴냄)

자, 여기 우리에게 익숙한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아래 세 가지 장면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는 '국가'다. 우리에게 국가를 의심하라고,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고 말하는 좌파 지식인 박노자는 이 장면이 던지는 물음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까?

#1. 촛불 집회

2008년 100일 넘게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무장 경찰과 '명박산성' 앞에 멈춰 섰다. 어떤 시민들은 저 명박산성을 넘고, 경찰들을 넘어 청와대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떤 시민들은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비폭력, 평화 시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이다. 박노자라면 2008년의 촛불 집회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촛불을 든 국민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고, 평화롭게 시위하는 국민들을 강경 진압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본질이 아닌가? 촛불은 '재협상.' '고시 철회.' '민영화 철회 및 공공성 강화' 등의 의제를 통해 국가에게 제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국가의 본질이다. 따라서 촛불이 진짜 승리하기 위해선 국가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실제로 박노자는 "타자 중의 타자인 비정규직 문제와 촛불이 결합하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박노자에 따르면, 국가가 구성원 모두를 위한 기구가 아니라 지배 계급의 사무국에 불과하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열등한 타자'에 대한 폭력이다. 국가는 주류의 재산권에 도전하거나 도전할 확률이 높은 반항자, 주류 사회 바깥에 있거나 주류 사회 안에서 '내부 식민지'로 전락해 있는 각종 열등한 타자에게 서슴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국가에 대한 요구로 시작한 촛불이 국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 내의 타자들에 대한 연대를 표명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타자는 비정규직이다.

#2. '해적 기지'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 대표 후보 중 한 명이었던 김지윤이 제주 해군 기지를 '해적 기지'로 표현해 논란이 일었다. 해군은 김지윤을 모욕죄로 고소하겠다고 밝혔으며, 보수 언론은 천안함 장병들도 해적이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박노자라면 '해적 기지' 논란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군대가 하는 짓이 원래 해적질 아니냐고 반문하지 않았을까? 군대는 '방어', 혹은 '예방' 등 각종 '정의'와 명분을 내세우며, 국민을 보호한답시고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지만, 이는 다 빌미일 뿐이다. 지배 계급의 사무국인 국가는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한다. 이를 방해한다면 자국민이라 해도 소탕하고 진압하는 것이 국가다.

해군 기지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해군 기지를 건설하면서 반대하는 강정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을 무자비하게 연행한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해군 기지 건설은 국가 안보 사업이 아니라 지역 개발을 통한 토건 사업이 아닌가? 아니다, 박노자라면 해군 기지가 해적 기지라는 말이 해적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해적이라는 집단이 "붕괴된 국가가 더 이상 외국 어선으로부터 지키지 못하게 된 어장들을 빼앗겨 생계 곤란에 빠진 해안 지구의 어민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제 역할을 다 했다면 해적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인근에서 공사 반대를 기원하는 삼보일배 장면. ⓒ조성봉(독립영화감독)

#3. 복지 국가

총선, 대선을 앞두고 너도 나도 복지 국가를 내세우고 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박근혜는 "아버지(박정희)의 꿈이 복지 국가"라고 말했다. 민주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도 복지 국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노자라면 지금의 복지 국가 열풍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복지 국가는 우리가 국가 폭력을 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정말로 국가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방증이 아닐까? 복지 국가를 통해 정치인들이, 지식인들이 하고 싶은 말은 국가가 사회, 경제의 '합리적 조절자'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강력하게 요구만 하면 국가가 비정규직 양산도 정지시키고, 반값 등록금도 실천하고, 기초적인 복지 망을 구축,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야권 연대를 통해서 정권 교체를 하면 국민을 위한 국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박노자는 수많은 국가 폭력과 국가 실패의 사례를 들며 국가는 합리적 조절자가 아니라 지배 계급의 사무국이라고 주장한다.

박노자의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촛불을 들어 국가를 압박하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는 다수의 선량한 촛불 시민에게, 국가 안보를 위해 해군 기지가 필요하고 나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애국 시민들에게, 복지 국가를 주장하는 정치인-지식인-시민들에게 박노자의 이런 이야기는 매우 불편하다. 그럼 우리의 모든 노력은 사회 변화를 위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인가?

박노자가 불편한 이유는 그가 래디컬하기 때문이다. 래디컬하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고, 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상과 태도를 일컫는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국가에' 요구하지 말고, '국가를' 넘어서야 한다. 국가를 지배 계급의 사무국으로 만드는 계급 사회를 철폐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계급 사회를 철폐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혁명에 동참해야 하는가? 박노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이에 비하면 '소박'하다. 국가에 저항하는 것이다. 국가에 저항하는 이들을 '또라이'가 아니라 '동지'로 바라보는 것이다. 수많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지금도 '양심의 자유'를 위해 '인신의 자유'를 구속당하며 감옥에 갇혀 있다. 국가의 폭력에 동조하기 싫다는 이유로, 평화에 동조하겠다는 이유로 국가와 군대를 거부한 이들을 인정하는 것, '혁명'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자본주의 계급 사회에 맞서기 위해, 차르의 러시아를 해체하기 위해 총칼을 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에는 전쟁으로!' 박노자는 말한다. '전쟁에는 평화로!' 평화의 힘으로 지배 계급의 사무국인 국가의 정당성을 허물자! 래디컬하게, 더 래디컬하게.

 

<프레시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