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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우리 ‘함께’ A학점 받자!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저자
버텔 올먼 지음
출판사
모멘토 | 2012-09-1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인들의 충고는 거의가 일면적이고 일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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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책을 의심했다. “날 낚으려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의심은 책 서문을 읽으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자 버텔 올먼은 ‘거래’를 제안한다. 1.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30년 동안 교수로 재직한 나(버텔 올먼)는 어떻게 하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2.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3. 나의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라, 그럼 그 대가로 학점 잘 받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겠다!

얼핏 보면 이 책이 다루는 두 가지 주제, ‘마르크스’와 ‘학점’은 그냥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저자가 이런 식으로 두 가지 주제를 마구잡이로 섞어놓은 이유는 심술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많은 학생들이 기회만 있으면 속이려 든다는 걸 아는 만큼, 두 주제를 장별로 나누어 다루는 어리석은 방법은 피하겠다. 여러분이 못내 듣고 싶어 하는 것과 내가 절실히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마구 뒤섞어 놓겠다. 시험 보는 요령은 정치적 폭로의 앞쪽, 중간, 뒤쪽에 불쑥 불쑥 나올 것이다. 글자체나 글자 크기로 양자를 구별토록 해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과일너트 케이크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과일을 맛보려면 반드시 너트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학점’은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주제가 아니다. 두 가지 주제에는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버텔 올먼은 마르크스와 학점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현실이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의 대작인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공산주의자라고 평가한다. 물론 사실이다. 실천적으로 그는 공산주의자였고, <자본론>에서도 공산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자본주의의 운동 방식과 원리에 대해 연구한 학자였다.

흔히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는 ‘비판’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시도했다. 그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기존의 주류 정치경제학이었다. 마르크스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했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파헤친다. 고전파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연구를 이어받은 경제학자, 정치인, 지식인들은(통칭해서 ‘우파’라고 하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긍정한다. 그들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을 결정하고, 자원을 배분한다. 이러한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며 공정하다.

마르크스는 우파들의 자본주의 예찬에 반기를 들었다. 물론 그도 자본주의가 이전의 어떤 체제보다 인류에 풍요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한다.

이제 시험에 대해 생각해보자. 학점은 시험의 결과다. 이 학점에 따라 학생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취업을 하거나 유학을 가려면 학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험은 공정해야 하며, 그 시험의 결과인 학점 역시 학생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학점 때문에 좌절해 본 적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학점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을! 더 나아가 시험 역시 공정하지 않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 시험을 출제하는 교수 역시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버텔 올먼이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버텔 올먼의 학점론(?)이 특별한 이유는 교수가 시험을 출제하고 이 시험에 따라 학점을 부여받는 이 시스템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학점 잘 받는 방법에 대한 책은 널렸다. 어떻게 해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책들도 널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수가 시험을 어떻게 내는지, 교수는 과연 공정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버텔 올먼이 알려주는 ‘학점 잘 받는 방법’은 죄다 꼼수다. 구술시험을 볼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논술 시험을 볼 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수가 너를 좋아하게 될 거다, 이렇게 하면 똑똑한 척을 할 수 있다 등등. 엄밀히 말하면 그의 방법들은 대부분 교수를 속이고, 교수의 취향과 특성에 따라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왜 이런 방식들이 먹혀들고, 이런 방식들을 통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을까? 교수도, 시험도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이라는 과정의 기본 성격, 출제하고 채점하는 사람들의 태도, 시험을 보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편향이 모두 제거됐다고-나아가, 편향의 제거가 가능하다고-가정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시험과 그에 대한 결과로 학생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학점, 그 뒤에는 공정하지 않은 교수가 있다. 자본주의 질서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경쟁과 기회의 평등, 그리고 공정한 결과.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이 질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본가’의 존재를 은폐한다. 자본가는 없고, 자유롭게 경쟁하는 ‘개인’들만 있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와 학점은 또 한 번 만난다. 공정하지 않은 자가 성적을 배분하는 이런 시스템을 왜 유지하는 걸까? 간단히 말하면 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경쟁의 질서를 사람들로 하여금 수용하게 만들고, 결과에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한 연습인 것이다. 학교와 교육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육을 받고 서로 경쟁한다. 이 말이 비약처럼 들리는가? 만약 진보적인 시민단체나 교육단체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없애고 경쟁을 줄이자는 말을 하면 우파들이 무슨 말을 할까?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들이 보기에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 아이를 경쟁력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경쟁력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시험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인가? 대개 그렇다. 시험은 많이 겪어봐서 편하게 임하는 사람들에게 불공평한 이익을 주는가? 틀림없이 그렇다. 시험의 채점은 통상적 수준의 편견(즉 많은 편견)을 비롯하여 여러분의 점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온갖 별난 습성을 지닌 사람들이 하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왜 시험이, 더군다나 그토록 많은 시험이, 존재할까? 진실은 이렇다. 시험은 지식의 습득을 돕는 역할보다는 학생들을 학교의 관료주의적 필요에 맞추고, 미래의 고용주들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행동양식과 이데올로기에 맞추기 위해 사회화하고 분류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한다. 시험은 본질적으로 통제의 수단이자 어떻게 통제받을지를 배우는 수단이다. 그 때문에 시험은 학생들의 지식을 문제 삼는 만큼 시험을 받아들이고 지시에 따르는 그들의 능력을 문제 삼는다. 이 책에서 줄곧 주장했듯이, 교육의 역할을 최소한에 그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시험을 다 없애자는 건가? 버텔 올먼은 경쟁적인 시험의 대안을 제시한다. “각 개인을 죽음의 경쟁 속에 몰아넣는 전형적인 시험의 대안으로, 학생들이 힘을 합쳐 공동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협동시험’을 생각해볼 수 있다.”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하고, 한 학생의 연구에 나머지 학생들이 개입하여 결과를 수정하면서 학습하고 토론한다. 이 전체 과정을 평가하여 점수를 매기고 이 과정에 기여한 모든 이들에게 같은 점수를 준다. 물론 성적 따위 안 매겨도 그만이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와 학점은 다시 한 번 만난다.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사회주의 사회란 경쟁의 원리에 따라 개인들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대하여 만든 공동체이다. 버텔 올먼은 자신이 제시한 ‘협동시험’은 현재의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능력을 초과하여 일하고 성과에 따라 분배받지 못하는 사회인 자본주의를 넘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성과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주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협동시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이다. 버텔 올만이 말하고 싶었던 건 ‘마르크스’와 ‘A학점’이라는 두 단어를 이어주는 ‘함께’라는 단어가 아닐까. 우리는 이 책을 읽고 A학점을 받을 수 있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과 ‘함께’ 해야 우리 모두 ‘함께’ A학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