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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나치의 여론조작과 다를 바 없어”

“국정원 대선개입, 나치의 여론조작과 다를 바 없어”
SNS 영향력 예측불가능…“국가가 여론형성 시도한 것 자체가 파시즘적”

최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두고 보수진영에서 ‘몇 개밖에 안 되는 글이 대선에 영향을 미쳤을 리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에 대해 “댓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가 나서 여론을 형성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이 나왔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30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주주의 정치의 위기와 국정원 사태’ 토론회에서 “국정원이 SNS에 글 몇 개를 올렸느냐 몇 억 개를 올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위자체의 불법성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국가가 나서서 여론을 형성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이고 파시즘적인 사고”라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이전에는 SNS를 정치참여를 증진시키고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실현시킬 새로운 기술로 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주류였다”며 “한국의 국가기관도 이런 면에서 정책홍보나 대국민소통의 장으로 SNS를 긍정적인 방향에서 활용했고, 정치세력도 정치캠페인의 일환으로 SNS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그런데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SNS는 여론조작의 도구로 의심받고 있다”며 “SNS가 그동안 정치적인 소통의 채널로서 유권자와 후보 또는 정당 간의 창구역할을 했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악용한 정치적 행위도 가능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지게 했다”고 말했다.

   
▲ 30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민주주의 정치의 위기와 국정원 사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송 교수는 나아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치관련 글이 몇 개 되지 않는데 고작 그걸로 100-200만 표 격차를 좁힐 수 있었겠느냐는 논리에 빠져선 안 된다”며 “대선개입 행위 그 자체를 엄단해야 한다. 이 사건은 과거 나치가 라디오를 통해 여론조작을 했듯 SNS를 통해 여론조작을 시도한 것이며,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인터넷과 SNS의 파급력이 예측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경의 나비 짓이 뉴욕에서 태풍이 될 수 있다. SNS에서 게시 글 하나의 효과는 예측불가능”이라며 “2002년 효순 미선이 장갑차사건 때 누군가 시청광장에서 모이자는 글 하나를 올렸고 이로 인해 일주일 만에 3만 명이 모였다. 인터넷 상에서의 정보의 영향력은 1~2건을 올렸느냐 1000건을 올렸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여론장악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토론회에 참여한 이용마 전 MBC 노조 홍보국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국민들을 주권자가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 여긴다”며 “그러다보니 민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어나가려 하고, 이 과정에서 SNS 여론을 조작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국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언론장악도 같은 맥락”이라며 “대통령은 공영방송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사권을 통해 언론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에는 인사권이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고급인력을 동원해 여론을 장악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역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핵심은 국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할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려 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방법은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뿐이라는 지적이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국정원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이 대통령을 위한 일을 하면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라며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권력집단의 불법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적어도 수사기관 한두 곳은 국민이 직접 통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광선 한국PD연합회 정책국장도 “정권의 여론장악을 막기 위해서는 방송사 지배구조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날의 토론회는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신경민 민주당 의원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