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인문, 사회과학

일베,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내가 <일베의 사상> 서평을 쓰는 이유는 나 자신이 <일베의 사상>의 탄생에 일조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필자와 출판사를 연결해주었다. 2013년 3월 말 박가분이 한창 재미삼아 혹은 관찰 삼아 일베를 ‘눈팅’하고 있을 때, 술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박가분은 일베에 관한 책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괜찮은 출판사를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2010년부터 박가분과 알고 지냈다. 내가 보기에 박가분에겐 한 가지 탁월한 재능이 있다. 바로 술자리에서의 ‘개드립’을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으로 풀어내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그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며칠이 지나면 그의 블로그에는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주고받았던 개드립들이 하나의 완성된 글로 변모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술자리’에서 ‘개드립’처럼 일베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일베의 사상

저자
박가분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10-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김치녀’ ‘홍어’ ‘보슬아치’ ‘좌빨좀비’ ‘노알라’ ‘민주화...
가격비교



박가분이 ‘일베’에 늪에 빠지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도 ‘개드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베’와 ‘사상’은 마치 형용모순처럼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이 인간들, 온갖 배설물들과 즉자적인 정념들을 쏟아놓은 쓰레기통에 무슨 이념이 있다는 말인가.

한 진보커뮤니티에 올라온 <일베의 사상>에 대한 반응이 그러했다. 진보 누리꾼들은 박가분의 이 책이 일베를 정당화해주고, 일베를 옹호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무엇인가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곧 그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 연구한다고 식민지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것을 정확하게 격파하기 위해 연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베의 사상>은 일베를 옹호하는 책이 아니라 일베를 제대로 연구하는, 그래서 일베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고민하는, 즉 일베와 제대로 싸우기 위한 길라잡이다.

하지만 연구대상과 자신이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박가분이 일베를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보며 박가분이 어느새 일게이(일베 유저를 뜻하는 일베 은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나는 곧 박가분이 일베의 늪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이유는 우선 박가분은 어떤 면에서 일베보다 더한 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베의, 모든 것을 ‘절멸’하고자 하는 파괴본능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박가분은 그에 못지않은 파괴자다. 그는 일베보다 더 급진적이다. 따라서 나는 박가분이 일베의 파괴 충동에 물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박가분은 절대 일게이가 될 수 없다. 그는 유게이이기 때문이다. 유게이란 덕후들의 커뮤니티인 루리웹 유머게시판 유저를 뜻한다. 박가분은 일베를 탄생시킨 인터넷 고유의 문화에 이미 물들대로 물들어 있어서 일베에 의해 더 이상 물들 게 없다. 또한 그는 일베와는 조금 다른 원리를 가진 ‘완벽한 세계’ 루리웹에서 살고 있다.



일베의 정언 명령, ‘세계를 동물화하라’

그렇다면 박가분은 일베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일베에 접속하면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베의 특징은 ‘파괴 충동’이다. 하지만 ‘파괴 충동’은 일베 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오늘날의 정치가 처한 현실이다. 적어도 인터넷 공간만 보면, 한국의 세 정치세력인 수꼴-깨시민(노빠)-좌빨들은 공존할 수 없는 세력처럼 보인다. 수꼴과 깨시민, 좌빨들은 서로를 증오하며 서로의 ‘절멸’을 꿈꾼다. 인터넷 공간에는 구체적인 정책들이 논의되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절멸하고 싶어 하는 증오의 언어들이 떠돌아다닌다. 우리는 상대의 정책을 가지고 ‘공론장’에서 논쟁을 벌이기보다, 어떻게 하면 반대파의 정치적 모순을 폭로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센스 있는 문구로 반대파를 공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런 ‘절멸’을 가장 잘 구현하는 주체가 바로 일베다. 박가분이 <일베의 사상>에서 밝혔듯이, 일베 유저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진보인사들의 위선과 모순을 비꼬는 것이다. 진보인사들이 과거에 했던 발언을 찾아내 그들이 이중적이라고 비난하는 게 일베의 ‘정치’다. 하지만 이것이 일베‘만’의 정치는 아니다. 촛불집회 당시 촛불시민들과 누리꾼들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거짓말과 위선을 폭로하는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뿌리곤 했다. 한나라당을 가장 잘 비꼬는 댓글이 ‘베플’로 추천을 받고, 이명박을 가장 우습게 만드는 피켓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촛불시민들의 ‘인정’을 받는다.

박가분은 이러한 ‘인정투쟁’이 인터넷 특유의 ‘평등‧호혜 문화’의 기반이며, 이 원리를 가장 끝까지 밀어붙인 집단이 ‘일베’라고 말한다. 진보 누리꾼들의 인정투쟁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가상’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국가와 민족 혹은 공동체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가상’이다. 즉 현실의 국가라는 가상 속에서만 인터넷 상의 인정투쟁이 성립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베는 이런 진보 누리꾼들을 ‘씹썬비’라고 부른다. 일베에는 이러한 가상이 없다. 그들은 가상을 만드는 대신 인터넷을 하나의 '완벽한 세계'로 만든다. 즉 일베는 국가나 사회에 기대지 않은 채, 인터넷이라는 완벽한 세계 안에서 인정투쟁을 벌인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나 사회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진보세력의 주장을 비웃는다. 박가분이 밝혔듯이, 일베의 정언명령은 ‘세계를 동물화하라’는 것이다. 일베 유저들은 국가나 시민사회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인정받는 대신 인터넷 안에서 자족적인 인정투쟁을 벌이는, ‘동물화 된’ 삶을 지향하고 이를 하나의 강령처럼 밀어붙인다. 이 점이 바로 일베가 진보 누리꾼과 다른 점이자, 국가주의를 내세우는 기존 ‘우파’와도 다른 점이다.

‘일밍아웃’이라는 용어가 가진 함의도 비슷하다. 일베 유저들은 현실에서 자신이 일베 유저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을 ‘커밍아웃’에 비견할 만한 모험으로 여긴다. 또한, 다른 일베 유저가 그런 일을 벌였을 경우 쌍욕을 하며 비난한다. 그것은 '완벽한 세계‘인 일베를 깨고 현실로 나아가려는 이들에 대한 반발이 아닐까?

박가분이 최근 <일베의 사상> 출간기념 강연회를 진행했을 때, 한 참석자가 박가분에게 이렇게 물었다. “국가에 기대하지 않는 일베가 왜 전두환이나 박정희를 좋아할까?” 일베가 동경하는 전두환이나 박정희의 모습은 반대파를 가감 없이 때려잡는 ‘절멸’의 힘이다. 전두환을 ‘전땅크’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베에서 전두환은 반대파를 탱크로 밀어버린 ‘영웅’으로 묘사된다. 박근혜가 북한과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일베에 박근혜에 대한 쌍욕이 올라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박정희나 전두환, 박근혜의 정책과 이념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철퇴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일베의 또 다른 사상은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박가분에 따르면 일베는 ‘우리 모두 병X, 너도 병X 나도 병X’이라는 논리를 통해 한국의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 숨겨져 있던 적대와 혐오를 표면 위로 드러낸다. ‘우리 모두 병X’이라는 논리가 전제하는 것은 평등주의와 자기혐오다. 우리는 다 같이 병X들이며, 따라서 서로를 혐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베에서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혐오 문화다. 일베는 한국여성을 ‘김치년’이라 비하하고,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 ‘7시방향’ 등으로 부른다. 박가분의 태생이 ‘전라도와 경상도 집안이 만난 동서화합의 가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베는 박가분을 ‘하프홍어’라고 불렀다. 십 분만 눈팅을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곳이 일베다.

박가분은 일베의 5.18 비난을 일베 유저들의 혐오 문화로 해석한다. 일베는 5.18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한다. 일베가 혐오하는 것은 5.18에 성스러운 의미를 부여하는 한국사회 그 자체다.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이뤄진 최소한의 합의다. 일베는 그러한 성스러운 의미 부여에 오글거림을 참을 수 없고, 그것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일베는 5.18이라는 사회적 합의 속에 가려졌던 대립과 갈등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무엇인가에 의해 은폐되어 있던 진실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일베는 ‘계급투쟁’을 하고 있다.



청년들은 왜 일베에 빠져드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탈출해야할까

사람들이 일베를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베 유저들 중에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당시 “우리도 오유나 다른 진보 커뮤니티처럼 투표 인증샷”하자는 한 일베 유저의 제안은 성사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일베 유저의 대다수가 청소년들이었기 때문이다. 박가분은 “제대로 활동하는 이들 중에는 20대 청년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보적인 어른들이 보기엔 혀를 찰 일이다. 미래의 주역들이 촛불집회에는 안 나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일베나 하고 있으니!

청소년과 청년들이 일베에 빠져드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재밌기 때문이다. 일베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물론 5‧18 유족들을 홍어라고 비하하는 말에는 ‘분노를’ 참을 수 없지만, 진보 정치인에 대한 센스 있는 비난에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기사 거리를 찾으러 일베를 들락날락 거리면 나도 모르게 입에 일베 용어가 붙어있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온갖 금기를 깨면서도 상대방을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비꼬아 부르는 언어에서 재미를 느끼고, 그 언어를 공유하면서 묘한 동류의식까지 느낄 지도 모른다. ‘나도 병X 너도 병X’이라는 동류의식 말이다.

그에 비해 진보 어른들은 너무나 꼰대스럽고, 권위주의적이다. 심지어 재미도 없으며, 온갖 진보적인 척은 다하면서 자기 자식한테는 권위란 궈위는 다 부린다. 그들에게는 '486 때문에 청년실업이 심하다'는 '세대적 관점'이 먹혀든다. 박가분이 분석하듯 일베 안에서 기성 세대에 대한 적개심과 일종의 ‘세대 문제’가 드러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가분이 제안하는 해법은 매우 고전적이다. 박가분이 '루리웹'이라는 세계에 살면서 일베에 동화되지 않았듯이,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국가'도 인터넷도 아닌 현실세계에 만들어져야 한다. 촛불집회가 끝난 이후에도, 촛불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함께 공유하며 무엇인가 함께할 수 있는 현실의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일베!

일베가 그러한 '사회'나 현실의 공동체를 만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박가분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본다. 그들이 '일베라는 완벽한 세계'에 빠져 있으며, 정치세력화 할 만한 이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들이 정치세력화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극우세력은 기독교만으로도 족하다. 

하지만 나는 일베가 그들의 세계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들이 현실로 나올 수 없다고 본다면,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국가도 인터넷도 아닌 사회를 만드는 것 역시 매우 난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촛불시민들이 국가라는 '가상'을 가지고 있다면, 일베 역시 '현실로부터 독립된 세계'라는 또 다른 '가상'이 아닌가, 그들이 국가로부터 독립된 사회를 만들어내려면 각자의 가상을 깨야하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가 아닐까.

박가분은 쓰레기통이라 불리던 일베에게 '사상'을 부여했다. 이제 일베가 응답할 때다. 일베 앞에 파란 약과 빨간 약이 있다. 일베라는 가상을 깨고 나올 것인가, 아니면 국가라는 새로운 가상에 몸을 맡길 것인가? 어느 경우든 둘 다 더 나쁘다. 응답하라, 일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