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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한반도 분단, 비극을 넘어 희극이 되다

한반도 분단, 비극을 넘어 희극이 되다

[서평]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노순택/ 오마이북 펴냄

지금은 모두가 잊어버린 이름 ‘안상수’를 다시 호명하는 책이 있다. 사진작가 노순택은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에서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화제가 됐던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발언’을 통해 분단의 비극이 희극이 되어버린 현실을 추적한다.

한반도 분단의 현실은 참혹한 비극이다. 한반도는 60여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고, 그 이후 경계선을 두고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다. 각종 간첩침투사건과 국경선 근처에서 벌어진 교전 등을 통해 애꿎은 목숨들이 희생된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은 어떤 지점에서 희극으로 전환된다. 조선일보가 천안함 사건의 배후를 북으로 추정하며 ‘인간 어뢰’를 꺼내들었을 때, 많은 이들이 천안함의 비극 앞에서도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노순택은 이러한 희극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보온병 안상수’를 꼽는다. 안상수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YTN 돌발영상>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됐다. 2010년 11월 30일 YTN 돌발영상 ‘폭탄&폭탄’ 편은 안상수의 보온병 발언을 공개했다. 안상수는 폐허가 된 연평도 주택가를 돌아보다 바닥에서 그을린 쇠통을 주워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한다. 옆에 있던 안형환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 함께 온 육군 포병장군 출신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에게 “몇 미리 포입니까, 이게?”라고 묻는다. 황 의원은 “이게 76.1미리”라고 답하고, 안 대변인은 “아, 이게 곡사포구나”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이 포탄은 곡사포가 아니라 보온병이었다.

   
▲ 2010년 11월 30일 YTN 돌발영상 갈무리
 
이 사건 이후 안상수는 ‘보온상수’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누리꾼들은 대형마트 보온병 코너에서 사진을 찍고 “나는 지금 이마트 폭탄코너에 와 있다”고 농담을 던지고,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을 패러디해 “이것은 보온병이 아니다”라는 그림을 그렸다.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보온병에 지나지 않았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연평도의 비극은 희극이 되었다.

안상수는 보온병 사건 하루 전인 11월 29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쟁이 나면 지금이라도 입대해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상수는 ‘행방불명’을 이유로 병역을 제대로 마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입대해서 싸우겠다’는 말에 ‘병역이나 똑바로 마치지’라며 코웃음을 쳤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안상수의 결의에 찬 표현이 그의 행방불명 경력으로 인해 희극이 된 것이다.

“안상수는 ‘작동하는 동시에 오작동하는’ 분단정치의 상징적 모델이고, 그의 곁에서 보온병 폭탄의 규격을 설명해준 황진하는 일그러진 분단 군사주의의 영웅이다”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의 수많은 사진이 입증하듯 2010년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는 폐허가 됐다. 보온병도 그 폐허의 산물이다. 하지만 안상수는 그 폐허에서 더 심각한 비극을 찾아내고자 보온병을 포탄으로 만들었고, 결국 코미디를 연출하고 말았다.

연평도에서는 이런 지배세력의 ‘오버’로 인한 코미디가 연일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포연이 피어오르는 연평도 사진을 포토샵으로 지나치게 과장해 비난을 샀고, SBS는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 당시 바그다드 위성사진을 ‘연평도 실시간 위성사진’이라고 공개해 빈축을 샀다. 비극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더 과장하려다 생기는 희극적인 현실이다.

그리고 이 희극의 배후에는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지배세력이 있다. 안상수는 잊혀졌지만 우리 사회에 수많은 ‘안상수’들이 있다. 많은 안상수들은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의 ‘종북’이라는 단어를 만능보검처럼 휘두른다. 그들이 휘두르는 만능보검 앞에 동성애자도 종북, 여성주의자도 종북, 정부 비판세력도 죄다 종북이 된다. 어떤 이들에게는 밥값을 깍아주지 않는 식당주인도 종북이다. 지난 대선 때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은 인터넷 공간에서 댓글을 달며 종북 세력을 조롱하고 다녔다.

분단이 낳은 비극을 극대화하고 이를 지배에 활용하려던 이들의 ‘오버’는 안상수가 그러했듯 많은 사람들이 종북이라는 단어에 코웃음 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은 국정원 사건 이후 국정원을 ‘악플러’와 동일한 의미로 인식한다.

   
▲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노순택 저/오마이북
 
노순택은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헤매다 거울 앞에서 보온병을 발견한다. 이 책의 부제가 ‘분단인의 거울일기’인 이유다. 멀쩡한 보온병이 분단의 현실 앞에서 폭탄이 되었듯, 평범한 우리는 분단의 현실 앞에서 위험한 종북 세력이 되고, 국가분열세력이 된다. 우리가 거울 속에 비친 보온병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상, 잃어버린 보온병은 언제 다시 나타나 우리를 포격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