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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오바마의 ‘시리아 개입’ 뒤에 ‘워싱턴 룰’ 있다

오바마의 ‘시리아 개입’ 뒤에 ‘워싱턴 룰’ 있다

[서평] 워싱턴 룰/ 앤드루 바세비치/ 오월의봄 펴냄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미국에서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그런 방식이 장기적으로 미국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세계의 수백만 사람들은 미국을 더 이상 민주주의의 모델로 보지 않는다. 단지 동맹국들에게 ‘우리와 함께 할 것이냐, 아니면 우리에게 맞설 것이냐’고 다그치면서 오로지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략)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주의 깊게 살펴본 바 그가 강조한 미국 예외주의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바마는 ‘미국의 정책은 미국을 다른 나라와 구분 짓게 하는 특별한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예외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든 오바마의 그런 발언은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예외적인 존재’로 여기게끔 부추긴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지난 12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고문 일부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시리아를 공격하겠다고 밝히고, 오바마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시리아 군사공격 결의안이 미 상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나온 글이다. 결국 오바마 정부는 러시아와 유엔의 입장을 일부 수용해 시리아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외교적 해결이 지지부진할 경우 언제 다시 ‘군사공격론’이 등장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푸틴이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표현한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파고든 책이 나왔다. 미국 안보정책 전문가 앤드루 바세비치가 쓴 <워싱턴 룰 :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이다. 바세비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패권국으로 떠오른 미국에 하나의 ‘룰’이 자리 잡았다고 지적하는데, 그것이 바로 ‘워싱턴 룰’이다.

바세비치에 따르면 ‘워싱턴 룰’은 ‘미국의 신조’와 이 신조를 수행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 ‘성 삼위일체’로 구성된다. 미국의 신조란 국제질서가 어떻게 작동돼야 하는가에 대한 규범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 규범을 집행할 책임이 미국에게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리고 오직 미국만이 세계를 이끌고 구원하며 해방하고 궁극적으로 변형시킬 임무와 특권을 갖는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세계적 리더십’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헨리 R.루스는 1941년 초 (자신이 발행인인) <라이프>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우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 나아가 우리가 적절하다고 믿는 수단으로 전 세계에 우리의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하자. 그리고 이런 우리의 의무를 전폭적으로 수락하자”

‘세계적 리더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게 무엇인가를 ‘강제’로 요구할 수 있다. 바세비치는 미국의 군사 정책과 실제 관행을 연구하면서 세 가지 지속적인 요소를 발견했다. 첫 번째가 ‘미 군사력의 세계적 주둔’이며 두 번째가 ‘이 군사력에 의한 세계적 힘의 투사’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현존하는, 또는 앞으로 예상되는 위협을 제거하는 세계적 개입주의’다.

바 세비치는 ‘미국의 신조’와 성 삼위일체로 구성된 워싱턴 룰이 미국의 정책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항구적인 합의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이 합의는 어느 정당이 여당이 되든,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바뀌지 않았다. 해리 트루먼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이 합의는 바뀐 적이 없다.



워싱턴 룰

저자
앤드루 바세비치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09-0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부시도 네오콘도 없는 미국에서 오바마는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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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워싱턴 룰이 깨질 뻔했던 계기가 베트남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미국 내에서 반전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로 인해 60년대 워싱턴 룰은 도전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가 되면서 워싱턴 룰이 다시 돌아왔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여러 사안을 두고 대립했으나 국가안보정책에 관한 한 차이가 없었다. 민주당의 당 강령에 베트남 전쟁은 “아시아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전쟁”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단 한 번 등장한다. 또한 민주당은 당 강령을 통해 미국의 목표가 “자유의 등대가 되는 것”이며, 미국의 힘과 이상을 동원해 “세게를 더 안전하고 더 인간적 삶이 보장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푸틴이 시리아 군사개입을 역설한 오바마를 보며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미국에서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푸틴의 우려대로, 미국은 공화당-민주당 가릴 것 없이, 부시-오바마 가릴 것 없이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으며(성 삼위일체) 미국 예외주의(미국의 신조)에 빠져 있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 되던 날, 버락 오바마는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 모인 군중에게 “우리의 손을 역사의 호 위에 올려놓고 다시 한 번 지금보다 더 나은 날에 대한 희망의 방향으로 구부립시다”라고 외쳤다. 역사에는 미리 정해진 방행이 있고, 미국이 그 궤적을 결정할 소명을 부여받았다는 ‘미국의 신조’였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 역시 첫 주요 외교 정책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세계를 다시 시작할 만한 힘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힘을 사용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오바마는 ‘Change'를 외치며 집권했지만 ’워싱턴 룰‘은 변하지 않았다. 그가 외친 ’YES WE CAN'은 미국이 다시 워싱턴 룰을 수행할 수 있다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바세비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현혹되지 말자”고 주장한다. 오바마는 미군의 세계적 배치와 관련해 아프리카를 강조하며, 미 아프리카사령부의 역할과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힘의 투사를 위해, 미사일 발사 능력을 지닌 ‘무인기drone’를 선호하며 이 무인기가 필리핀, 예멘, 소말리아 등에서 표적 암살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오바마는 세계적 개입주의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확대하고 연장시켰으며(이웃인 파키스탄까지), 이라크에서는 철군했지만 ‘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했다. “자신의 취향에 따른 약간이 변형이 있긴 하지만” 오바마 역시 워싱턴 룰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워싱턴 룰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걸까. 푸틴의 지적대로 장기적으로 미국에게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바세비치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어떤 것이든 현실적으로 유용한 것”을 신봉하는, 실용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하지만, 워싱턴 룰을 고수한다는 면에서 전혀 실용주의자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을 고수한다고 비웃었지만, 정작 자신들이야말로 현실과 동떨어진 ‘워싱턴 룰’이라는 이념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세비치는 미국이 워싱턴 룰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비용과 미국인들의 희생은 물론, 측정조차 할 수 없는 막심한 피해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워싱턴 룰이 생겨나게 만든 애당초의 조건들, 세계의 불안정과 전체주의 및 소련의 위협이 사라졌는데도 워싱턴 룰은 건재하다고 꼬집는다. 오늘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위협인 테러, 기후변화, 마약 카르텔, 제3세게의 저발전과 불안정,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 등은 워싱턴 룰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아니, 오히려 워싱턴 룰이 그러한 위협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가.

결국 이 워싱턴룰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인 스스로가 나서는 것 뿐이다. 워싱턴의 지배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미국의 신조를 들먹이고 군사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를 수용하는 미국인 대중이 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벌어진 반전운동이 워싱턴룰에 위협을 가했듯이, 오바마가 수행하는 전쟁에도 미국인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부시도, 네오콘도 없는 지금 미국인들이 반대해야 할 것은 ‘워싱턴 룰’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