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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6.2 지방선거에 대한 소견 ① : 각 정치세력에게 줄 영향

전문적 분석이야 할 단계도 아니고 할 위치도 아니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저 이번 개표방송을 월드컵 4강전보다 재밌게 밤새 시청했던 투표자 1인으로서 이번 지방선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 내용은 당연히 대단하고 획기적인 내용은 아니구요. 일간지 대충 뒤지면 나올 만한 사항입니다만 제 원래의 ‘관점’이 약간 섞여 있을 테고 또 이리저리 신문 뒤지기 귀찮은 지라 한 번 종합해보려고 합니다.

1. 이명박 행정부에 미치는 영향

지방선거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시겠지만, 대선과 총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방선거는 현 정권에 대한 중간심판이라는 상징적 의미 말고도 실질적으로도 중요합니다. 대통령을 개혁적이고 정신이 똑바른 놈 뽑아놓으면 뭐합니까. 국회의원들이 삽질하면 국회에 막혀 아무것도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명백히 혼합정입니다. 노빠들이 한 실수 중에 제일 큰 것이 노무현의 당선에 흥분하느라 민주당이 지네한테 굴복했다고 착각한 겁니다. 그래서 탄핵 때 등 뒤에서 칼 꽂힌 사태를 겪어야했죠.

이 중앙정치를 정확히 축소한 게 지방 정치입니다. 큰 규모의 정책들은 몰라도, 우리 삶에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항들은 대부분 시 의회, 구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중앙 정부와 지방 정치는 쿵짝이 맞아 ‘다함께 앞으로!’를 외칠 수 있는 겁니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재선했다고 웃으며 사진 찍었던데 웃을 일이 아닙니다. 민주당이 ‘제대로만’ 기능한다면 오세훈은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없습니다. 예산 집행 하나하나 다 발목 잡힐 겁니다. 중앙당으로부터 배웠으니, 시 의원들도 발목잡기와 의회 점거는 잘할 거라 믿습니다.^^ 오세훈과 김문수는 팔목 발목 다 짤린 겁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서민들이 달려들어서 오세훈의 사지를 다 묶어버린 다음 목을 치려고 하는 데 강남 3구가 달려들어 목은 치지 말라고 으르렁 거린 겁니다. 얼굴은 있으니까 입은 나불댈 수 있겠지만, 민주당이 저지하고자 한다면 오세훈의 정책 거의 대부분은 제동이 가능합니다. ‘제대로만’ 한다면요. 김문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아예 목을 쳐버린 곳은 어떨까요? 당장 4대강과 세종시가 발목 잡힐 게 뻔합니다. 물론 귀 없는 각하께서 갑자기 깨달음을 얻으셔서 4대강 전면 철회를 외칠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안하구요, 다만 민주당이 제대로만 한다면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겁니다. 4대강 사업은 서울 청와대에 가만히 앉아서 “공사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4대강이 지나가는 모든 지역들의 도지사를 비롯한 지방 관리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장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환경영향평가를 전면 실시하라고 할 수도 있구요, 도지사의 권한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막는다면 사실상 공사가 불가능한 상황이 옵니다. 세종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말로 기업 유치 허가 안 해주고 예산 배정 안하고 안 받으면 끝입니다. 물론 이런 정치적 입장을 뛰어넘을 big deal이 오고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죠.

결론 한마디 : 바뀐 도지사와 지역 의원들이 제대로만 한다면, 이명박 행정부는 사실상 원래 하고자 했던 정책들을 밀어붙이기가 힘들어진다.

2. 한나라당에 미치는 영향

1)번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나라당 지도부 체제는 흔들립니다. (이 글을 올리는 시점에 보니 정몽준, 정병국이 사퇴한다더군요.) 정몽준은 2002년 노무현과의 단일화 드립 친 다음 한나라당에 들어와 철새 정치인이라 욕먹고, 계파가 없는지라 당내 기반이 없어서 별 힘도 없는 데다가 버스비 70원 개드립까지 쳐서 한순간에 비호감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가 친이-친박의 당내 계파 갈등을 무마한다는 차원에서 (계파 없는 놈이) 당대표가 되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죠. 그러나 이번 사퇴로 대권주자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입니다. 승계직 대표라는 꼬리표도 7월 전당대회로 완전히 떼는 가 했는데, 이제 거의 끝으로 보입니다. 당분간 입 닥치고 지내야 할 겁니다. 반면에 최근에 원내대표가 되어서 책임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김무성에게 당권의 힘이 실릴 기세입니다. 오늘 보니 한나라당 선거참패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김무성이 맡는다는 군요. 앞으로 한나라당 내부 권력 경쟁은 친박계로 분류되던 김무성이 친박계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무게가 실릴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친박계입니다. 일단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친이계나 중도계가 아닌 친박에 가까운 김무성에게 권력의 힘이 실리면서 상당히 유리해졌습니다. 또 하나 박근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점은, 이번 선거에 박근혜가 ‘지원 유세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민심을 완전히 잘못 읽은 정몽준 체제는 박근혜를 완전 제압할 의도로 유세 요청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죠. 특히 여권의 압승이 예상된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부터요. 그러나 결국 참패했습니다. 친박은 기세등등해질 겁니다. 박근혜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완전히 굳혔구요. (단 하나 변수는 박근혜가 영향을 미치는 선거구에서 친박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점입니다. ‘무려’ 대구 달성군에서 친박 후보가 떨어졌습니다. 이 결과를 한나라당 계파들이 어떻게 읽어낼지가 가장 궁금한 지점입니다.) (아, 오늘 뉴스를 보니 박근혜가 대구로 내려갔다는 군요. 참, ‘정치’ 할 줄 아는 여자에요.-_-)

또 하나의 성과는 오세훈, 김문수의 당선입니다. 오세훈은 철저하게 계급 투표를 실시한 강남3구(송파 강남 서초)와 재개발 타운돌이들의(중랑 용산) 도움으로 승리했고 다른 지역에서는 한명숙에게 뒤졌지만 여전히 그의 네임 브랜드가 막강함을 보여줬습니다. 김문수는 지방선거 최대의 이슈 메이커였던 유시민을 제치고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냈습니다. 둘 다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할 듯 보입니다. 다만 대선은 2012년이라 다음 대선에 참여하려면 중간에 사퇴를 해야 되는데, 둘 다 중간 사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라 중간에 그만 둘 경우 지지층 일부가 실망하여 다른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걸 계산하고 신중히 대선 주자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한마디 : 친박계가 살아날 듯. 친이계는 7월 전당대회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새로운 이슈를 통해 반전을 노릴 듯. 오세훈과 김문수는 팔다리 다 짤렸지만 얼굴은 남아있음.

3. 민주당에게 미치는 영향

한국 민주당부터 이어져 온 민주당의 전통이,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싸운다는 점입니다. 다만 주류/비주류가 고정점 없이 확확 뒤바뀐다는 점에서 한나라당보다는 계파가 ‘정체성’이 없지요. 지금 주류가 정세균 체제인데, 당분간 정세균-이미경 체제는 당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당과는 반대로 원내대표 박지원보다 정세균한테로 힘이 쏠릴 겁니다. 이번에 정세균 체제가 배제한 구민주계가 탈당해서 평화민주당이라는 추잡한 지역정당(대표 한화갑)을 만들었는데 단 1석도 못 얻었습니다. 지역정당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으면 이들과 민주당 주류를 잇는 연결책으로 박지원이 큰 힘을 얻었을 테지만요.

더불어 민주당으로선 정국 운영의 반전을 꾀할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반MB연대의 유용함을 단일화를 통해서 반MB 성향 국민들과 젊은이들에게 각인했습니다. 더불어 몇 개 구를 민노당에게 양보해서 향후 민노당과의 연합의 가능성도 열어두었습니다.(유시민에게 패배한 김진표의 대인배 이미지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제일 큰 건 ‘역시 대안은 민주당뿐이다. 미워도 이명박이 더 미워서 뽑아준다.'식의 논리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제 국민들은 2012년 박근혜를 막기 위해서 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지지할 겁니다. ’비판적 지지론‘ 역시 더욱 활개 치게 되겠죠. 여러모로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당입니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의 화려한 부활입니다. 민주당은 아깝게 진 한명숙, 그리고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이긴 안희정, 이광재. 그리고 단일화를 이룬 유시민, 무소속이지만 뒤에서 밀어준 김두관을 통해 노무현 정신의 가장 효과적인 계승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노빠들은 미워 죽겠어도 당분간 민주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유시민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었더라면 판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민주당에겐 최적의 시나리오가 유시민만 떨어지고 나머지 친노는 다 당선되는 것이었고 최악이 나머지는 떨어지고 유시민만 당선이었는데 선거 결과로만 보면 선방한 셈이죠.) 세종시 원안 고수(반MB의 상징)를 외치며 지역정당 자유 선진당마저 물리친 안희정, 무려 북한과 맞닿아있음에도(냉전수구라는 한나라당의 상징) 당선된 이광재, 노무현이 한평생 싸웠던 지역주의에 맞서 이긴 김두관, 그리고 44%라는 경이로운 득표를 한 부산시장 후보 김정길은 노무현을 민주당 안으로 집어넣는 동시에 민주당을 반MB의 유일한 대안으로 만들었습니다.

결론 한마디 : 민주당에게는 거의 최상의 시나리오였음. 한명숙이 서울시장만 되었으면 완전히 최상. 그러나 떨어졌어도 이 책임을 노회찬에게 돌리며 단일화의 정당성을 더욱 더 주창할 기회로 삼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을 탓하지 않으며 ‘쿨한 대인배 정당’을 만들 수 있음.(지금 두 전략을 다 쓰고 있는 중. 노회찬은 그냥 상대하지 마셈. 상대하면 말려드는 거.)

4. 민주노동당에게 미치는 영향

민노당으로선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대연합 거래를 통해 일단 3명의 기초단체장, 17명의 광역의원, 87명의 기초의원을 확보했습니다. (진보신당은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22명에 그쳤습니다.) 수도권에 최초로 진보출신 기초단체장도 탄생했고(인천 남동구청장 배진교, 동구청장 조택상) 민선 4기 때 한나라당에 빼앗겼던 울산 북구도 되찾았습니다.(윤종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 쇄신입니다. 이번에 민노당이 민주당에 완전히 숙이고 들어간 것은, 그래서 노무현의 정책들에 그렇게 반기를 들었으면서도 “사랑해요 노무현”을 외친 것은 다분히 전략적입니다. 2006 일심회 사건 이후 당 쇄신이 실패하면서 진보신당과 갈라지면서 종북주의 이미지가 완전 틀어박히고, 진보신당이 오히려 친북적이지 않은 합리적 진보의 이미지를 얻었는데(전적으로 민노당과의 상대적 비교에서 말입니다.) 그걸 뒤집고 합리적 진보정당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을 희생해가며 단일화를 이룬 이들로 이미지 쇄신을 하였고, 중도우파개혁세력으로부터 흐뭇한 시선을 받게 되었죠. 진보신당이 개새끼라고 외치는 이들이 대부분 민노당을 본받으라고 윽박지릅니다. 참 속 편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NL이 잘하는 조직 동원해서 진보신당 압박하면서 노동자 정당이라는 이들이 한명숙과 유시민 선거운동을 한 거죠. 조선일보가 “너희도 우리와 한 편이 될 수 있어,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중도우파와 중도좌파들 글 실어주는 것만큼이나 코미디입니다. (민주노총은 조직력 동원해서 진보신당 후보자들 숙소제공까지 못하게 했다면서요? 사실이라면 제작년에 민노당에서 나온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민노당은 그런 빌어먹을 비판적 지지로는 본인들이 이루려는 거 아무것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모른다면 그냥 민주당이랑 합당하시구요. 민주당이 한나라당이랑 싸우면 비판적 지지 외치면서 민주당 편들다가 민주당 집권하면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며 극렬 투쟁합니다. 백년야당의 싹이 보입니다. 민주당 주류는 호남이라도 믿고 그러지, 진짜 집권하고 싶다면 뭘 믿고 그러는 지 모르겠네요.

노무현이 갑자기 실성해서 삼성하고 건설족하고 손잡았나요? 김대중은 97년 대선 때 정리해고 안한다고 했다가 당선 된 후 일주일 만에 정리해고 했구요, 김영삼도 92 대선 때 쌀 개방 안한다고 나불대다가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웃으면서 협상했습니다. 그놈들이 신자유주의 이념에 가득차서 인가요? 아뇨, 한국의 강력한 보수 세력에 맞설 기반이 없어서 못 버티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겁니다. 집권할 생각도 없이 제2야당의 꿈이나 꾸는 지역정당 민주당 따위가 기반이라서 그렇습니다. 민노당이 자기네 색깔을 가지고 집권하지 않으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이상의 신자유주의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대통령 욕하기 무한반복! 징그럽게 반복되는 역사 속에 살려면 민노당 댁들이나 비판적 지지 하십쇼. 여튼, 민노당이 얻은 게 많고 단기적으로는 이번 대선의 득을 본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깜깜한 앞날뿐입니다.

결론 한 마디 : 단기적으로 얻은 게 많으나 역사에 ‘개드립’으로 기록될 것임.

5. 진보신당에게 미치는 영향

정치 생명력이 굉장히 깍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노회찬은 한명숙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 쓸테고 심상정은 스스로 사퇴해서 진보정치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심상정 처리 문제를 가지고 당에서 내분이 일어날 게 뻔합니다. 그리고 이 내분은 단일화 파 VS 단일화 거부 파가 되고, 더 크게는 탈당파 VS 잔류파로 나뉠 겁니다. 개인적으로 해체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세력과 입지가 더 좁아지는 건 어쩔 수 없겠죠. ‘양보할 줄 모르는 놈들’ 이미지는 확실히 굳힌 것 같습니다. 근데 저 같으면 노빠들에게 양보하느니 차라리 자살하고 말겠습니다. 한윤형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는데 진보신당은 한마디로 자살과 타살 사이에서 삽질을 하게 될 겁니다. 당분간. 저도 답이 없네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 박근혜가 아니라 중도개혁 우파가 집권하길 기도하는 수밖에요. 그리고 그 대통령이 자살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요.(조롱하는 게 아닙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저도 매우 슬픕니다.) 사람들이 문제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란 걸 알게요. 그래서 빠르게는 2017년에는 신자유주의 심판에 진보신당이 한 몫 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보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저도 동참할 생각입니다.


 

결론 한 마디 : 좆 됬음. 그러나 절대로 타협하지 마셈. 타살보다 자살이 나음.


p.s 2편은 정치세력들이라기보다 이번 선거 이후에 일어나게 될 작은 변화들에 대해서 쓸 생각. 대략 ‘유시민 변수’ 그리고 20대 정치 참여, 인터넷, 지역주의 균열 등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