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21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

저자
한윤형 지음
출판사
텍스트 | 2009-03-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자신의 주관으로 한국 사회를 재단하다!인터넷 정치평론과 각종 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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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부러웠다. 아니, 원래는 그의 시대를 부러워했다. 이것은 내가 그의 저작 중 학술적 작업이 가미된, 그러나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상식인의 역사 관전기,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먼저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을 읽으며 정치적 의식을 일깨우고,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에 나가 1등을 하는가 하면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하기도 하는, 인터넷 대통령을 만들었던 잠시나마의 혁명이었던 그 시절에 키보드워리어로 살아갔던 한윤형의 삶. 그리고 20대 개새끼론을 무색하게 만들만큼의 정치적 관심과 대중지성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한방 날려줄 만큼의 상식인의 면모, 인터넷의 순기능을 긍정하게 만드는 그 현란한 키보드질! 나는 그가 부러웠다, 아니 그의 시대가 부러웠다.

 

그보다 한 세대 뒤에 있는 나는, 무엇으로 그만큼 즐겁고 신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로운 소통방식과 실험으로 들썩이던 인터넷 초기 시대, 그리고 지식인의 새 장을 개척한 진중권-강준만의 시대, 한국 정치에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던 노무현의 시대.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채, 허무함과 88만원 세대라는 딱지를 단 채 "20대는 안되."라는, 자질을 의심받으며 살아가는 나는 그의 시대가 부러웠다. 돈과 가능성이라는 굴레를 벗고 가벼운 진지함을 가지고 청소년기를 보내고 맘껏 뛰놀며 활보할 수 있었던 대학시절, 그 공간 안에서 <뉴라이트 사용후기>라는 걸작이 나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를테면 한윤형을, 인터넷과 진중권, 강준만, 노무현, 민주노동당이 만들어낸 20대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전투일지에서 그는 자신이 단지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한윤형은 2000년대 초반 시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댓글과 정치평론, 그리고 "전투" 그 자체가 한 시대였다. 그의 댓글들과 평론들은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의 입이었다.

 

내가 한윤형의 나이가 되어 비슷한 책을 쓰게 된다면, 난 그 책의 제목을 무엇으로 장식할 수 있을까. 두발자유에 비행기를 접어날리던 10대의 나는, 조선일보 기사에 분노하고 싸이월드 베플에 추천을 꾹 누르며, 어둠 속에 촛불을 들고 전경에게 얻어터졌던 그 때의 나는, 철학과 정치학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극좌와 극우를 넘나들며 정신분열 유사증상을 보이는 20년 간의 나는, 나는 무엇으로 나를 기록하게 될까. 나는 어떤 시대의 입이 될 수 있을까. 조선일보가 그렇게도 외치는 G세대의 입, 아니면 가난한 88만원 세대의 입, 아니면 88만원 세대가 아닌 주제에 88만원 세대를 대변하는 강남좌파? 자본의 힘으로 자본을 비야낭거리는 헐리우드 좌파? 지식인이 되고 싶지만 C급에 머물러 있는 키보드워리어? 열정과 패기를 가졌으나 대연합론에 밀려 좌절하고 마는 좌파정당의 정책위원장? 금융위기때마다 목소리를 드높이게 될 맑스주의자? 내 돈으로 산 촛불로 밤을 붉힌 촛불리언? 일주일에 50권의 책을 빌려가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인문학멘토? 피피티도 필기도 없이 말빨 하나로 쇼를 진행할 철학 오타쿠? 모르겠다, 그 어느 것이던지 간에, 나도 전투일지 하나 쯤은 쓰고 싶다. 나는 이것들과 싸웠다! 라면서 자신있게 말이다. 나에게 자극이 되어준 한윤형 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당부의 말씀도, 앞으로도 열심히 싸워주세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런 의미에서 써보는 아주 주관적이고 사소한 나의 일대기

1989년 조본좌 출생(1세)

 

2001년 내 일생을 바꿔놓을 박노자의 명저 <당신들의 대한민국> 출간 (13세). 노무현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다.

 

2002년 월드컵으로 전국이 흥분. 나도 흥분해서 날뜀. 그 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내 가슴이 싸그리 식는 느낌을 받다.(14세) 노무현이 대선에서 승리하다! 대한민국은 혁명의 분위기로.

 

2004년 16세. 한나라당에 대한 적개심이 최초로 생기다. 인터넷에서 조선일보의 기사들을 찾아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다. 탄핵 때 치를 떨며 촛불을 들다. 그리고 김선일의 죽음에 비통해하다.

 

2005년 17세. 아주 우연한 계기로 두발자유화 운동에 투신하다.(http://www.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3838) 청소년단체와 청소년언론에서 활동하기 시작. 학교 내외에서 농민 집회, 노동자 집회, 내신등급제 반대 집회, 수능 반대 집회에 참여하다. 교육부 앞에서 마이크 잡고 개같은 교육현실에 대해 기자회견을 진행함.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사토론반 동아리 창설하고 내가 회장을 맡음. 사회문제에 대한 급격한 관심으로 감정적 좌파로 돌아섬.

2006년 18세. 죽음의 고3. 반항심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문.사회과학서 500권을 7개월만에 독파함. 머리가 커지면서 못배운 좌파, 감정적 좌파들에 대한 반감이 늘어감. 결국 여러 청소년단체에서 다 뛰쳐나옴. 그러면서 중도우파로 돌아섬. 반대하던 한미FTA도 찬성으로 돌아섬.

 

2007년 19세 대학 새내기. 500권의 독서가 무용지물로 돌아가고 급실망함. 그러다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낀 것이 생김. 나름대로 운동권에 투신함. 반전 시위와 반FTA 집회에 단골로 참여. 트로츠키주의 공산주의단체인 다함께에서 동지를 얻었다고 좋아함. 그러나 이것도 잠깐. 우리 과 내의 문제로 대판 싸우고 내가 지칭하는 "진보꼴통"들과 결별함.

 

2008년 20세 대학2학년차. 진보꼴통들과의 결별로 급격히 우파로 전향함.(그럼에도 이명박의 당선은 지독히 싫어했다.) 그러던 와중 촛불사태가 터졌다. 결국 매일 밤을 꼴딱세워가며 촛불을 켜다. 그러다 물대포에 얻어맞고 닭장차에 끌려가다가 경찰 밀치고 도망침. 전경 방패에 등이 찍히기도 함. 다음 아고라와 진중권의 촛불 중계, 아프리카에 거의 상주하며 전의를 불태움. 그러던 와중 촛불 민중들의 경찰관 폭행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그 와중에 진행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이 당선되는 개같은 일이 발생. 나는 또다시 "키보드워리어 좌파들"과 결별함. 그 이후 국제학포럼, 안보토론대회, 모의유엔대회, 한중포럼, 피피티대회 등 국제관계학과 스펙쌓기에 몰두. 스펙쌓기에는 성공했으나 밀려오는 허전감. 역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2009년 공익근무를 시작함. 21세. 조용히 우파로 살고 싶었으나 정권이 가만놔두질 않음. 그러나 신분이 공무수행 중이라 애만 닳을 뿐. 한예종 사태와 미디어법 사태 때 결국 빡돌아 몰래 거리로 나섬. 그러던 중 철학 공부에 매달리는 삶이 시작됨. 철학과 정치철학으로 1년을 보내며 더욱 좌파적이 되어가다.(아마 노무현의 죽음은 내게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듯.)

 

2010년 현재 22세. 맑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올바른 좌파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중. 1년이나 남은 공익근무를 뭐하며 보낼까, 내년부터 어떤 좌파질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중임. 여새는 칸트 공부와 맑스 공부, 그리고 정치학회를 만들어 그곳에 여념하고 있음. 사유와 실천을 일치시키는 레닌이 되기 위해 재장전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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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21

 


정치의 원형을 찾아서

저자
최자영 지음
출판사
살림 | 2005-04-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를 추적하는 책. 그리스 정치의 독특한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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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도시국가 개괄

최자영의 이 작은 책은 오늘날 우리가 ‘정치’라고 부리는 것의 시원인 그리스 정치를 탐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가 그리스 정치를 탐구하는 목적이 단지 과거에 대해 알아보자는 교양 쌓기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김경희가 지적했듯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이 논쟁의 장에 펼쳐진 이 시대에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아가는 탐구는 충분히 실천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다.

최자영은 이 책의 부제를 ‘그리스 정치의 이해’라고 붙였지만, 내 소견으로는 익숙하지 않는 명칭인 ‘헬라스’가 ‘그리스’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당대의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라스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 역시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헬라스의 정체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당시 헬라스는 에게 해를 둘러싼 지역 전체를 일컫는데, 서쪽에는 그리스 반도가 있고 동쪽에는 트로이 지역, 그리고 남쪽에는 크레타섬이 있고 그리스 반도와 트로이 지역은 코카서스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최자영이 초기 그리스 정치를 개관하는 부분에서 트로이, 미케네, 크로노스 문명도 다루고 있고, 또 아테네 정치사를 설명할 때 페르시아 지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므로 헬라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헬라스 지역은 바다를 육지가 두르고 있는 형상으로, 통상적으로 이런 지형에선 거대 권력이 발달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 반도(특히 아티카 지역)는 폴리스 사이에 산맥이 가로막혀 있어서 상호 교류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지형적 조건이 폴리스라는 소규모 부족 공동체인 도시국가를 만들어낸 요인일 것이다. 또 바다에 근접해 있다는 조건은 정치 체제의 발달에도(이 책에선 아테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도시국가는 시기상으로 기원전 800년부터 마케도니아가 괴뢰정권 코린토스 동맹을 설립한 기원전 328년까지 유지되었다. 도시국가는 원시 혈연 사회와 고대 후기 로마 형태의 제국 사이의 과도기 형태의 국가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고대의 미케네 등의 문명에서는 미약하나마 왕정이 실시되었으나, 트로이 전쟁 이전의 헬라스의 기록을 모두 불살라버린 도리아인의 남하 이후 그리스는 시민 자치에 기반을 둔 도시국가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도시국가가 다른 지역의 정치체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유와 재산권을 지닌 시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며, 관료들이 아닌 시민의 민회에 의해 주요 정책들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국가에도 다른 정치체제들과 마찬가지로 부유한 귀족 계층이 있었으므로, 도시국가의 정치사는 민주정과 과두정의 투쟁으로 정리된다. 이에 대해 민중의 세력이 강해지는 흐름상에서 과두세력들이 반기를 들었다고 보는 시각과, 민중세력과 과두세력의 투쟁은 결국 개인적 유대를 지닌 소집단(상류집단)들 간의 민중 끌어들이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2. 아테네 정치사 : 솔론의 에우노미아eunomia에서 클레이스테네스의 이소노미아isnomia

최자영은 초기 그리스 정치사를 개괄한 다음 민주주의가 가장 극적으로 발전한 아테네 정치사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살펴보려고 한 아테네 민주정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인물이 바로 솔론이다. 솔론은 부자와 군중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던 위기의 시대에 비상대권을 부여받아 이 대립을 해소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솔론은 크게 세 가지 개혁을 실시했다. 첫 번째로 그는 빈자들이 채무자가 되어 결국 노예화되고, 국방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을 막기 위해 부채를 말소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이 개혁을 통해 그는 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인민들을 공동체 내에 통합하려 했다. 두 번째로 그는 국가의 부담을 지우는 데 비례평등의 원칙을 적용하여 시민들에게 등급별로 차별적인 의무를 부담하게 했다. 그 기준은 재산이었는데, 재산이라는 기준을 통해 그는 태생, 혈연, 가문이 아닌 객관적 기준에 따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부자들은 전쟁 경비를 부담하는 등의 더 많은 의무도 지녀야했다. 세 번째로 그는 사회의 위기가 귀족계층의 지나친 전횡이라는 판단 하에 아레오파고스 의회의 재판권을 민중재판소로 넘기고 관리를 선출이 아닌 추첨으로 결정하는 식으로 다수민중의 참정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레오파고스 의회의 많은 권한을 보장해주었고 빈민층의 토지 재분배 요구와 같은 급진적 요청은 거부함으로써, 김경희에 따르면 부자와 빈자의 균형을 맞추어 조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eunomia적인 질서를 따랐다.

그러나 솔론의 이러한 개혁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채 파당들 간의 불화와 정치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후 권력을 장악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외국인 용병을 이용하고 정기적인 세금 제도를 실시하는 등 아테네 전통과 맞지 않는 정책들을 도입하면서 농민들에게 면세 혜택을 주어 부유층의 분노를 샀다. 그의 아들들은 민중을 우대하지도 않은 채 폭정을 일삼았고 결국 클레이스테네스가 참주를 타도하여 온건 민주정을 수립했다. 이사고라스와 클레오메네스가 그를 추방하고 의회를 장악하고 권력을 손에 넣었으나 민중들의 저항으로 클레이스테네스가 아테네에 복귀한다.

돌아온 클레이스테네스는 개혁을 실시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개혁은 이전의 4부족을 10부족으로 나누는 행정구역의 개편이었다. 그는 기존의 혈연, 지연에 기반한 부족 중심의 정치구조를 극복하고자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그리고 각 지역구 차원에서의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하였으며 도편추방제를 도입하여 참주의 등장을 막고자 했다. 김경희는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isonimia란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원래 isonomia란 민주주의란 개념이 생기기 전 참주에 대한 귀족들의 평등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의미였으나 광범위한 의미의 시민 개념이 등장하면서 법에 의한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또한 공동체 구성원, 귀족들과 일반 민중들의 힘의 균형을 의미한다.

3. 아테네의 제국화와 demokratia

이런 isonomia로의 아테네의 발전 와중에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과 이후의 군사제국화는 아테네 정치의 주요한 특징을 귀족과 민중의 힘의 균형이 아닌 인민의 지배로 탈바꿈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만 해도 살라미스 해전에 크게 기여한 아레아파고스 의회가 득세했다. 그러나 아테네가 페르시아에 공동 대응한다는 이름으로 해상국가들끼리 델로스 동맹을 체결하고,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를 경계한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대립하면서 아테네의 정치구도 역시 달라진다. 해군력 유지를 위해 스스로 중무장을 할 능력이 없는 테테스 계층(무산계층)이 해군에 충원되면서 이들의 힘이 강력해진 것이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금고를 스스로 관리하고 동맹국들을 무장 해제, 관리하면서 제국주의화한다. 이렇게 되면서 동맹국들의 관계와 스파르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아테네 정치 지형의 하나의 구도가 되었는데, 이를 대표하던 이들이 아리스테이테스와 데미스토클레스였다. 아리스테이테스는 동맹국의 신임을 얻고 스파르타와 친선 관계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하던 온건파였던 반면 데미스토클레스는 동맹국들에게 정액 외의 자금을 거두고 다니는가 하면 스파르타의 무력에 강력하게 대응하자고 주장하던 강경파였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 정치에 발생한 두 번째 지형 변화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무산 계층의 힘이 강해지면서 시작된다. 이 시기에 권력을 잡은 에피알데스는 원래 의회였던 아레오파고스 의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500인 의회, 민회, 민중재판소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개혁을 단행한다. 민중의 권한 확대는 아테네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페리클레스 시대에 극대화된다. 스파르타와 동맹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동시에 민회 중심 개혁에 반대했던 보수파 키몬과 대립했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매우 중요시 여겼고 민중의 지배를 확립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는 재판소에 보수제를 도입함으로써 테테스 계층이 생계 걱정 없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진정으로 demos가 지배하는, demokratia가 확립된다.

4. 아테네의 몰락

그러나 해상제국으로서 아테네 제국주의를 드높이던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민중의 힘이 강해진 마당에 그들을 선동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선동정치가들이 난립함에 따라 아테네는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그 결과로 아테네는 선동당한 민중들에 의해 무리한 시칠리아 원정을 일으켰다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에게 참패하게 된다. 이후 네 차례에 걸쳐 과두파의 혁명이 벌어지고 참주들이 집권했으며 이 혼란 속에서 아테네는 동맹국들과의 전쟁을 계속하다가 결국 마케도니아의 침입으로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김경희에 따르면,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demokratia의 중우정치화를 방지하기 위해 나온 논의들이 바로 혼합정에 관한 논의들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탄식하며 민주주의를 반대한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혼합정에 대해 언급한 것 역시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혼합정의 논의, 즉 다양한 계층들 간의 균형을 통해, 궁극적으로 광범위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지배를 통해 특정한 집단에 의한 지배(과두정과 중우정치의 폐해)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시도가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공화주의-민주주의 논쟁의 맥락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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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마법의 사중주

저자
고병권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5-11-2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새로운 사유와의 마주침을 주선하는 클리나멘 총서 제1권.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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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의심하라.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명제다. 인간은 쉽게 어떤 가치에 의해 노예적으로 지배당하고,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과거에도 그랬고, 원래 그런 것이고(자연스러운 것이고) 고로 이 행위에는 목적성이나 권력의 개입이 없으며 단지 난 그저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는. 그런 류의 소극적 정당화는 우리 삶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의심한다 해도, 그것의 허구성을 밝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그것들을 노예적으로 신봉하는 모든 이들의 의심과 공격을 받아내야하며, 수 많은 논쟁을 감당해야한다. 그래서 니체는 이 어려운 작업에 엄청난 세밀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계보학이라고 칭했다.

 

모든 단조로운 목적성으로부터 사건들의 단독성을 탐지하고; 가장 예기치 않은 곳과 역사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 - 감정, 사랑, 의식, 본능에서 사건들을 주시하며, 단일 진전의 느린 곡선을 그리기 위해서가 전혀 아니라, 사건들이 다른 역할을 하였던 다른 장면들을 되찾기 위해 사건들의 회귀를 포착하며, 이것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순간엔 이것들의 공백점 조차 정의하는 것이다.

- 미셀 푸코,『니체, 계보학, 역사』 中

푸코가 수많은 형벌의 역사와 감옥, 규율의 역사를 통해 근대국가의 규율권력을 파헤치기 위해 수 많은 고문헌을 뒤졌고, 에피스테메의 개념 조차 뒤흔들었을 때, 니체가 모두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것의 "계보학"을 밝혀 기독교의 심장을 찔렀을 때, 그들이 한 일은 과연 무엇인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의심. 그리고 그것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자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기도 했다. <역사성이 없다!> 자본주의를 역사의 과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도달해야할 절대지, 혹은 이상적 단계로 파악하여 자본주의의 온갖 모순과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니체와 마르크스의 철학을 두루 공부한 고병권이기에, 고병권의 책을 읽을 땐 항상 역사성과 계보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마르크스에 대한 글, 니체에 대한 글 말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한 박사논문이었기에, 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부분, 화폐 자체에 대한 계보, 화폐의 계보학을 고병권이 그 고유의 말빨로 어떻게 풀어나갈 지 기대했던 것이다.

 

책을 읽은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을 상품분석으로 시작하며, 상품이 자본주의의 고유 특징이라 주장하는데, 그 상품교환이 발달하면서 등장하는 게 바로 화폐였다. 고로 화폐에 대한 이해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자들은 이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화폐를 왜 쓰냐고! 당연하지 않느냐. 인간의 본성 아니냐!

 

그러나 고병권은 이 책에서 화폐 사용이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마법>과도 같은 신앙이며, 거기다 화폐거래네크워크, 근대적 화폐주권, 화폐공동체로서의 사회, 근대화폐론이 사중주를 일으켜 서로 융합한 "역사적" 현상이었다. 각각의 사중주가 보여주는 것 또한 그러하다. 화폐거래네트워크, 화폐를 거래할 시장의 확대는 결코 초역사적 현상이 아니라 특정 계급과 특정 집단의 강력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어쩌면 하나의 폭력이 가해진 인위적 현상이었다! 당대인들은 화폐를 쓰며 불편하다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강력한 근대국가가 주권을 발휘해 화폐 사용을 강제할 그 힘. 그 힘의 탄생과 화폐의 확대는 맞물리며 그것은 힘에 의한 강제였다. 그리고 화폐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화폐공동체의 탄생. 종이쪼가리가 신앙을 지니게 되는 믿음의 사회학. 그리고 화폐 그 자체에 대한 논쟁. 화폐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 우리는 지금도 "통화정책"을 이야기하면서, 화폐론을 잊고 있다. 이 네 가지의 마법적 사중주. 그것에 의해 화폐는 "만들어진 " 것이다.

 

나는 이런 고병권의 작업이 자본주의 대안을 상상하는 사회학자로서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자체를,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천민적으로 만드는 상품물신. 그 속엔 화폐가 스스로 춤을 추는 화폐물신이 있다. 교환가치가 탄생한 순간 자본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교환가치는 화폐로 化했다. 화폐에 대한 공격, 화폐물신에 대한 대안 마련 없인 자본주의의 구조 자체를 뒤흔들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일단 고병권은 한 단계는 성공한 듯 하다. "화폐는 역사적 과정이다. 고로 자본주의 역시 역사적 과정일 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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