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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후보자 해명이… 축소은폐 아닌 능력부족 탓?

대법관 후보자 해명이… 축소은폐 아닌 능력부족 탓?

72일만에 열린 박상옥 대법관 청문회, "말단 검사라 몰랐다"… 수사기록 하루 전 제출에 증인 다수 불출석

‘자진 사퇴’ 요구까지 나오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72일 만에 열렸다. 안팎의 비판을 받으며 청문회를 열기로 한 야당은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후보자의 잘못을 끄집어내지 못했고, 박상옥 후보자는 기존의 해명을 반복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7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1987년 1차 수사에서 경찰의 조직적 축소·은폐를 다 밝히지 못한 점은 수사 검사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께 대단히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알면서도 진실 은폐에 관여하는 등 검찰의 본분을 저버리는 처신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상옥 후보자는 그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로 사건의 축소 및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고, 박 후보자가 부실수사를 했다는 여러 증거가 속속 제기됐다. (관련 기사 : <“박상옥, 그에겐 박종철 사건 진실 밝힐 기회 있었다”>

박 후보자의 해명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말단 검사라 잘 몰랐다’는 것.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의 엄격한 문화와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후보자가 상부의 수사지침이나 지시 없이 단독으로 2차 수사를 개시할 지위에 있었나”라고 묻자 박 후보자는 “상명하복과 검사 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주임검사가 아닌 내가 지휘나 지시 없이 별다른 직무를 수행하는 체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수사 외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팀에 참여하면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은 “박상옥 후보자는 거기에 참여할 위치가 아니었잖아요”라고 되물었고 박 후보자는 “초임 검사 입장에서 그 같은 상황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두 번째는 ‘경찰 책임’이다. ‘축소 은폐에 관여 했나’는 민병주 의원의 질문에 박 후보자는 “조한경, 강진규 두 경찰이 두 사람의 범행이라고 일관되게 자백했고 관련 경찰관들도 똑같이 말했다. 경찰이 이와 같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했다는 것은 검사로서 상상할 수 없었다”며 “관련자가 3명 더 있다는 진상에 대해 전혀 인지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나름 열심히 했으나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후보자가 수사를 하면서 왜소한 경관 두 명이 덩치가 큰 박종철을 물고문 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고, 두 명의 경찰 외 관련자가 더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못했다는 것이 논란이 됐다. 

박 후보자는 “세 명이나 그 이상의 다른 관련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가정에 대해 많이 추궁했다. 그러나 관련 경찰관들이 두 명만의 범행으로 이미 철저하게 입맞춤한 상태에서 그러한 것들 간파하고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검사로서 없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또한 “두 명의 경찰이 왜소하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전투경찰, 특수경비대 출신이다. 절대 두 사람이 왜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박 후보자는 자신이 열심히 수사에 임했다는 태도를 취했다. 박 후보자는 “고문 관련자가 세 명이 있다는 것에 대해 2차 수사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밝혀냈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가 기존의 해명을 되풀이하며 청문회가 사실상 ‘통과의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청문회에 합의할 때부터 제기됐다. 새정치연합은 청문회를 열어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관련 기록을 받아낼 수 있고 진상규명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법무부는 수사 및 공판 기록 제출을 거부하다 청문회 하루 전에야 열람을 허용하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관련 기사 : <새정치연합의 박상옥 회군, “이러니까 야당이 욕 먹지”>

박완주 새정치연합 의원은 청문회에서 수사기록을 근거로 “1차 수사기록을 보면 강진규한테 96번의 질의를 하는데 단 한 번도 고문에 가담한 사람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며 “공범 여부를 추궁했다는 답변은 위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수사기록을 확인해보겠다”고만 답했다. 만약 6000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면 박 후보자의 책임에 대해 더 밝혀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증인들도 다수가 출석하지 않았다. 증인 출석을 요청한 8명 중 고문경찰 강진규, 조한경, 반금곤, 이정호와 정형근 전 안기부 대공수사 2단장 등은 출석하지 않았다. 고문경찰 황정웅과 수사검사였던 안상수 창원시장, 최환 서울지검 공안2부장만 출석했다.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야당이 청문회에 합의한 직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청문회가 청문회 역할을 하지 못하고 ‘통과의례’가 되다 보니 박상옥 후보자의 명백한 잘못에도 일방 통과될 것 같다는 생각에 청문회에 반대했다”며 “야당이 이러한 우려에 대한 대책, 최소한의 전제조건도 없이 청문회 개최에 합의한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의 걱정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