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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파동, 같은 듯 다른 조중동의 세 가지 시선

국회법 파동, 같은 듯 다른 조중동의 세 가지 시선
‘입법부 독재’ 강조하면서도 ‘국회책임’ ‘싸우지마’ ‘방안 만들자’ 시선 엇갈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입법권한을 둘러싼 다툼이 여당 내분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실제로 행사할 경우 당정 양측의 한 곳의 치명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언론은 ‘입법부 독재’라는 청와대 입장을 충실히 전하면서도 그 시선이 서로 묘하게 달랐다. 

여야는 지난 29일 새벽 시행령 등 행정입법이 모법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 소환 상임위원회가 정부에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삼권분립 위배”라고 경고했으나 새누리당 지도부는 “위배가 아니다”고 맞섰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조중동은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삼권 분립에 위배된다’는 청와대의 주장을 충실히 전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입법부 獨裁’(독재)라고 뽑았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이날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입법부가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의 권한까지 침해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자칫 입법부 독재’(獨裁)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 5월 30일자 조선일보 1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이 점을 부각시켰다. “정부를 식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황당한 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방침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동아일보)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한다면 입법부가 행정부의 고유권한까지 제약하는 결과가 된다. 과도한 권한 행사이고, 입법권 남용”(중앙일보)

조선일보는 1일 ‘입법부 독재’라는 말 앞에 ‘야당’을 붙였다. 조선은 “새누리당은 ‘여당 동의 없이 야당 마음대로 시행령을 고칠 수는 없다’고 했지만, 야당엔 국회선진화법이란 또 다른 무기가 있다. 정부·여당이 꼭 필요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주는 대가로 자신들이 원하는 시행령 수정을 거래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야당이 오른손에는 국회선진화법을 들고 여당을, 왼손에는 개정 국회법으로 행정부를 흔드는 입법부 독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 가지 포인트는 이들 보수언론이 입법부 독재라는 청와대 입장을 전하면서도 여당과 청와대의 갈등 상황에 대해 강조하는 지점이 달랐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가장 강하게 국회의 책임을 물었다. 

동아일보는 2일 사설에서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에 매몰돼 심사숙고없이 국회법 개정에 담합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다. 여야가 결자해지하는 것이 바른 해법”이라며 “여당의 뜻을 하나로 모으고 야당을 설득해 재협의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여야한다”고 밝혔다.

반면 조선일보는 비판을 하면서도 청와대와 여당의 충돌을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1일 사설에서 “정부와 국회가 6년 뒤에 재정 부담이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갈 맹탕 공무원연금 개혁을 해놓고 이 사안과 아무 관련도 없는 권한 싸움이나 벌이는 것은 완전히 본말전도”라며 갈등을 ‘쓸데없는 소란’으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2일 사설에서도 “이번 사태는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중 어느 한쪽이 정치적 치명상을 입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이번 일이 대통령과 여당이 정면 충돌해서라도 꼭 풀어야 할 시급한 국정 현안인지 의문스럽다. 대통령과 여당 간 불협화음과 갈등·충돌이 더 걱정스럽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 6월 1일자 조선일보 31면
 

조선과 동아의 시선은 국회법 개정안의 효력을 둘러싸고 가장 크게 엇갈렸다. 친박계와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이 청와대의 국정을 마비시킬 것이라 주장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처벌규정이 없고 여야 합의가 전제되는 만큼 야당에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동아일보는 2일 사설에서 “여당 일각에서는 여야 합의가 돼야 수정 요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야당 뜻대로만 될 수 없을 것이라 말하지만 순진한 생각”이라 주장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2일 사설에서 “대통령은 '국정 마비'를 우려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야당이 정부 시행령을 문제 삼을 때마다 여당이 모법을 바꿔줄 리 없을뿐더러 국회가 시행령 개정을 요청해도 행정부가 듣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며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일을 놓고 대통령이 언성을 높이면서 여당을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라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보다 더 적극적으로 여당과 청와대를 중재하는 모습이다. 위헌논란의 해소는 사법부의 권한쟁의심판에 맡기면 된다는 것.

한편 중앙일보는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더 중장기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중앙일보는 2일 사설에서 “여야는 법안처리가 졸속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논란이 종식될 수 있는 방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의 잘못된 시행령·총리령·부령 등에 대해 국회의 견제가 필요하다면 이는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절차를 통해 추진하면 된다”고 밝혔다.

중앙은 나아가 “삼권분립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는 ‘현역 의원 정무특보’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회를 상대하려면 대통령 자체가 당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