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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압격리병상 입원·치료 가능한 곳은 6개 병원 뿐

음압격리병상 입원·치료 가능한 곳은 6개 병원 뿐
“의료진 감염이 지역감염 요인, 보호지침이 없어 우왕좌왕”… 자가격리 매뉴얼도 부재, 총체적 위기상황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의 확산으로 확진환자가 41명, 사망자가 4명까지 늘어난 가운데 메르스 환자 치료에 적합하다고 알려진 ‘음압격리병상’을 보유한 21개 의료기관 중 즉시 입원 및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6곳(28.5%)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5일 오전 메르스 현장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고 특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자리에서 음압격리병상이 있는 21개 의료기관에 대한 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음압격리병상이란 메르스 등 각종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병상이다. 기압차를 이용해 공기가 병실 안쪽으로만 흘러들어가고 병실 안의 공기는 밖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메르스 환자가 오면 즉시 음압격리병실 입원 및 치료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병원은 21개 병원 중 6개 병원(28.5%) 뿐이었다. 입원 및 치료가 어려운 이유로는 음압병실이 독립되어 있지 않거나 다른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어서 환자를 옮겨야 한다는 점, 음압병실은 있으나 환자 치료에 필요한 시설이나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 환자 치료를 위한 독립적인 소독시설, 의료폐기물 처리 시설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 보건의료노조가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또한 인력준비 상황에 대해 묻는 질문에 ‘메르스 환자 입원 시 담당할 인력에 대한 운영 계획이 있다’고 답한 곳은 6곳(28.5%) 뿐이었다. ‘치료를 위해 즉시 투입될 인력과 교체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냐는 질문에는 20개 병원(95.2%)가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 

의사, 간호사 및 직원들이 신종감염병 관리교육 및 훈련을 받은 곳은 7곳(33.3%)에 그쳤다. 메르스 환자 대응을 위한 질병관리본부의 매뉴얼과 의료기관의 자체 대응 지침을 만들어 직원들과 공유했다고 밝힌 곳은 11개 병원(52.3%)이었다. 

의료기관들이 의료진 보호 장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의사, 간호사, 직원이 사용할 보호장구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냐는 질문에 5곳(23.8%)만이 그렇다고 답했고 나머지 16개 병원(76.1%)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지급되는 보호 장구가 안전을 확보하기에 충분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8곳(38.0%)이 그렇다고, 13곳(61.9%)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또한 병원에 제대로 된 의료진 보호지침이 내려져 있지 않고 교육훈련, 보호장구류가 미비한 사례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확진환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의료진이 감염될 경우 진료가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의료진 감염이 다른 환자로 전파되면서 메르스가 더 확산될 수 있다. 의료진 보호가 중요한 이유다. 

보건의료노조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확진환자가 거쳐 간 서울의 한 병원의 경우 보호 장구 지침이 제대로 내려져 있지 않았다. 의료진이 병원에 요구해도 병원은 질병관리본부에서 N95 마스크 착용하라는 지침만 내려왔다고 밝혀 의료진 스스로 가운, 글러브, 모자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또한 일반적인 보호장비조차 제대로 안 갖춰진 민간병원 등을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전염병에 대비한 N95 마스크 등 일반적인 보호장비조차 제대로 구비되어 않은 병원이 다수라는 것.

보건의료노조는 “국가지정입원병원이나 지역거점공공병원 등 감염병 진료 및 치료에 전면 배치되어 있지 않은 병원이라 하더라도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상황과 의심환자의 내원 등을 대비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가격리중인 의료인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현실도 폭로됐다.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와 접촉한 서울 한 병원의 의료진이 자가격리됐는데, 격리 1일차 질병관리본부는 의료진에게 나이, 성별, 가족관계를 파악해간 뒤 보건소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가격리 4일차가 되도록 보건소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해당 의료진이 보건소에 전화해보니 연락이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질병관리본부 핫라인에 전화해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밝혔으나 핫라인 담당자는 기록이 없다고 답했고, 이후 보건소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격리 4일차 오후 4시가 돼서야 보건소에서 처음으로 나와 의료진의 체온과 몸 상태를 체크했다.

의료진은 보건의료노조에 보건소에서 오기 전까지 가족들이 사다주는 마스크와 소독티슈를 사용했고 어떻게 해야될 지 몰라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자가격리 시켰으며, 격리자들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출입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어느 정도까지 제한을 두고 생활해야할지 등을 알지 몰랐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당국의 질병관리 메뉴얼에 의한 자가격리자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환자 발생 양상을 고려할 때 지역감염으로 확대 가능한 가장 위험한 고리는 의료진의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다. 정부는 메르스 환자나 의심환자를 격리치료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시설과 장비, 인력을 지원하고 정확한 정보와 매뉴얼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또한 ▷위기대응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할 것 ▷청와대를 컨트롤타워로 한 범정부대책기구 구성 ▷오염병원 공개 및 나머지 안전한 병원에 대한 지원 및 관리 ▷ 환자발생병원과 접촉대상자에 대한 전수조사 및 검사 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