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입증해 보시든가’, 배짱 튕겼던 황교안 청문회
결국 ‘한 방’ 없이 끝나나… “자료제출 거부, 청문회 무력화” 논란
“청문회가 아니라 무죄 여부를 다투는 재판장에 있는 것 같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8일 황교안 후보자 청문회에서 남긴 말이다.
우 의원은 “후보자는 핵심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의혹에 대해) ‘그렇지 않다’며 기억력만 가지고 대답한다. 참 답답한 일”이라며 “증거제일주의에 입각해 ‘입증하지 못하면 난 무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여당이 (후보자를) 변론하는 자리가 됐다. 청문회가 매우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황교안 후보자 청문회는 당초 ‘송곳 검증’이 예상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스터 국보법’이라 불리는 공안통이자 통합진보당 해산‧국정원 대선개입 등 민감한 정치현안에 연루된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총리에 지명하면서 야당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월 8일, 9일 진행된 청문회는 싱거웠다. ‘한 방’은 없었다. 기존에 제기됐던 전관예우 의혹과 병역면제 논란 등이
반복됐다. 9일 오전부터 몇몇 야당 의원들은 황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 대신 경제‧노동 등 현안에 대한 질의를 하기 시작했다.
야당이 검증을 못했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청문회 시작 전부터 ‘보이콧’ ‘청문회 연기’ 주장이 나올 정도로 자료 미제출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청문회 하루 전인 7일 이언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황교안 후보자는 청문회 전날인 오늘까지도 위원회 의결자료 총 39건 중 24건, 61.6%에 달하는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다”며 전관예우 논란 검증을 위한 변호사 시절 수임자료, 병역면제 의혹 검증을 위한 학교생활기록부, 직무 검증을 위한 검사재직 시 판공비와 특정업무경비 사용내역 등을 미제출 자료로 꼽았다. 청문회 당일인 8일까지 제출된 자료를 합쳐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우원식 의원은 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에서는 ‘한 방이 없다’고 하는데 자료가 없다”고 토로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인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은 8일 밤 자신의 SNS에 “큰 한방이 없다 말씀하시지만 수사권을 갖는 게 아닌 이상 제출된 자료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제출이 되지 않으면 진도도 나가지 못함을 이해해 달라”는 글을 남겼다.
실제 청문회에서 자료 없이 황교안 후보자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답변이 반복됐다. 황 후보자가 퇴임한 후 수임한 119건에 대한 자료가 대표 사례다. 전관예우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119건에 대한 자료 요청을 했으나 법조윤리협의회는 이중 19건을 삭제한 채 국회에 제출했다. 황 후보자가 변론을 맡은 사건이 아니라 자문한 사건이기에 제출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박범계 새정치연합 의원은 “황교안 후보자로 인해 만들어진 황교안 법을 스스로 희롱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3년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당시 황 후보자가 비밀누설금지 등 변호사법 위반을 이유로 수임 내역 자료를 제출하지 않자 이를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자료는 법조윤리협의회를 통해 받도록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법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관련 기사 : <황교안법 희롱하는 황교안 “자료 제출 왜 안하나”>
논란이 커지자 황 후보자는 19건에 대해 비공개로 열람하는 데 동의했다. 8일 저녁이 돼서야 관련 자료가 국회로 넘어왔다. 그러나 야당이 사건 의뢰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당은 의뢰인 내역을 열람해선 안 된다고 맞서면서 열람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선임계 누락 의혹에 대해서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전관’ 변호사들이 정식 선임계를 내지 않은 채 전화 등을 통해 관련 재판에 개입하는 것을 속칭 ‘전화변론’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전관예우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고 탈세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것이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황교안 후보자는 2012년 청호나이스 정휘동 회장 횡령사건을 수임하며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기사 : <‘슈퍼 양파’ 황교안… 선임계 없이 사건수임, 탈세 의혹도>
그러나 관련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 8일 청문회에서 김광진 의원이 “119건 중 송무사건의 경우 선임계 제출한 것은 몇 건이고 제출하지 않은 것은 몇 건인지, 자문사건은 몇 건인지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황 후보자는 “건수에 대한 자료가 없기에 확인할 수 없다. 법인을 나오면서 법조윤리위원회에 신고했고 신고할 때는 내가 맡았던 사건을 다 냈다”는 말만 반복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같은 질문을 던졌으나 황 후보자는 “(자료에) 접근이 가능한지 이런 부분들을 검토해야 한다. 지금은 기억할 수 없으니 자료를 찾아보도록 하겠다”고만 답했다.
이외에도 병역 논란 검증을 위한 생활기록부와 병적기록부와 증여세 관련 자료 등은 청문회 도중 전달됐다. 생활기록부의 경우 ‘별도로 보관하지 않는다’며 제출하지 않다가 8일 오전에야 국회에 전달됐고, 그나마도 일부 내용이 지워진 상태였다.
은수미 새정치연합 의원은 9일 청문회에서 황 후보자의 자료 미제출 유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자료가 없다’, ‘사생활이다’ ‘줄 수 없다’ 등 세 가지 이유다. 은 의원은 “(아가페 재단 이사) 겸직허가서 같은 경우 자료가 없다는데, 자료가 없다는 건 자격이 없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은 의원은 또한 “2013년에 의료보험료가 7300만원이나 나갔기에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는 것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사생활’이라고 한다. 비공개로 보여 달라고 말했는데도 답이 없다”며 “소득세 신고내역도 요구했는데 줄 수 없다고 거부한다. 자료가 없는 분을 어떻게 청문회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자료 미제출이 검증을 무력화시키는 ‘수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황 후보자는 2013년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때도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황 후보자는 국무총리 내정 이후 “청문회 때 모든 것을 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료제출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검증할 시간 없이 당일에 제출됐다.
홍종학 새정치연합 의원은 9일 청문회에서 “이게 무슨 청문회냐. 하루 반이 지났는데 여태까지 자료 제출을 안 한다는 것은 청문회를 안 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라며 “후보자가 ‘삼성한테 수임 받은 적 없다’고 말하면 그냥 끝나는 건가. 국민을 무시하고 청문회를 무력화시키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박원석 의원도 “부적절한 행동 하지 않았다는 말 한 마디로 의혹을 다 뭉개고 있다. 후보자가 믿으라면 다 믿어야하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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