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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여당까지 해치는 ‘공멸정치’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여당까지 해치는 ‘공멸정치’

국회법 개정안, 여야 양보에도 물러나지 않는 청와대…곤혹스러운 새누리당 지도부

여야의 생각 이상으로 청와대의 고집이 센 걸까. 청와대가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고 여야가 수용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15일 오후 6시 경 청와대가 위헌 논란을 제기한 국회법 개정안을 일부 수정해 본회의 통과 17일 만에 정부로 이송했다. 여야는 지난달 29일 새벽 본회의를 열고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시행령 등 행정입법이 모법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정부에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는 “삼권분립 위배”라며 반발했다. 6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갈등이 지속되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시했다. 국회가 정부에 행정입법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문구 하나 바꾼 것이었다. 표현 변경으로 강제성을 약화시키면서도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여야와 청와대에게 물러설 길을 제시한 것이다. 강제성을 강조하던 야당도 중재안을 수용했다.

정치권에서도 이쯤하면 청와대가 물러설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15일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원총회에서 여러 의원들이 국회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의장이 중재안을 내놓은 것에도 협조하고 있기에 이 시점에서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국회와 대립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고 전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도 1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가) 국회의 노력을 존중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한 글자’ 고쳤던데 우리 입장이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민 대변인은 6월 10일에도 “국회법 개정에 대해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고 그 이후에 청와대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야당의 결단만 남았다’고 중재안 수용을 압박하던 여당이 민망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주어진 법적기한이 30일까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23일 국무회의나 30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고집할 경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 정확히는 유승민 원내대표 간의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의 거부권 시사 발언 이후 “일절 대응을 안 하겠다” “할 말이 없다”며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다. 

거부권 행사만으로도 책임론이 불거지게 된 유승민 원내대표는 재의를 요구받은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본회의에 이를 상정해 재의결할 경우 가결되든 부결되든 문제다. 3분의 2 찬성으로 법안이 가결될 경우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박 대통령의 의견을 무시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당청관계는 악화되고, 정국 주도권은 야당에서로 넘어간다.

법안이 부결된다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책임론을 피해갈 수 없다. 지도부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의원들이 다시 반대표를 던진 셈이기 때문에 지도부의 지도력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당내 계파갈등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아예 본회의에 상정을 안 시키고 19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청와대의 반발과 당내 갈등은 무마할 수 있지만 야당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한 번 양보한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기 때문이다. 야당이 앞으로의 법안 통과 일정에 전혀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국회 마비의 책임을 새누리당 지도부가 뒤집어쓰게 된다. 

결국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고집불통 정치가 여당의 발목까지 잡고 있는 양상이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1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세월호시행령으로 불거진 문제로, 국회법 개정안에 위협을 느꼈다면 세월호 시행령 문제를 풀어주면 된다. 그런데 이는 외면하면서 파생된 국회법 개정안에는 시비를 걸고 있다”며 “소수 친박 계 의원들을 제외한 정치권과 법학자들은 다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영일 평론가는 “국회법 개정안이 다시 3분의 2로 가결되면 국정에 어마어마한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혼란은 청와대가 야기한 것”이라며 “청와대가 휘두른 칼자루(거부권)는 야당이 아닌 여당으로 향할 것이고,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인 김무성 대표까지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공멸정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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