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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한번 쓰고 버리는 마스크, 비정규직은 하루 2개 뿐”

“의사들 한번 쓰고 버리는 마스크, 비정규직은 하루 2개 뿐”

[인터뷰] 국가지정병원 청소노동자 A씨, “메르스 의심되면 신고? 하루만 격리돼도 생계가…”

감염병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특정 계층의 누군가가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는 평등하지 않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A씨는 요즘 이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A씨는 ‘메르스 환자 치료 국가지정병원’ 중 한 곳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다. 정확히는 병원의 청소를 맡은 하청업체에 속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청소노동자들에게는 각자 맡은 ‘구역’이 있다. A씨가 맡은 구역은 병원의 2층 빌라 두 채다. 한 빌라는 메르스 의심환자들이 머물다 가는 병실이고 또 다른 빌라는 메르스 환자들을 진료한 간호사들의 휴식공간이다.

A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많은 청소노동자들이 메르스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청소하는 사람들은 어디든 다 청소를 하지만 어디가 더 안전한지 아닌지는 모른다”며 “오늘도 우주복 입은 사람들이 메르스 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걸 봤는데, 우리들끼리 ‘겁이 난다’고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감염에 노출돼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환자들이 머물던 병실이다. A씨와 함께 인터뷰한 다른 청소노동자 B씨는 “환자들이 병실을 떠나면 우리가 환자가 머물던 침대를 비롯해 병실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환자들은 치료가 다 돼서 떠나도 이후에 청소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감염될 수 있다는 염려가 크다”며 “침이 튄 곳에 노출돼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B씨는 “메르스 뿐만 아니라 병원 곳곳에 감염병 환자들이 있다. 의사는 완전 무장하고 들어가는데, 우리는 솔직히 그냥 들어갈 때도 많다”며 “그나마 요새는 문제제기를 많이 해서 마스크도 주고 옷도 빨아주고 그러는데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험지역은 공중화장실이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한 ‘응급실 밖’ 외래환자가 화장실을 통해 전염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청소노동자들이 병실보다 공동화장실이 더 불안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B씨는 “병실은 환자와 보호자만 사용한다. 하지만 공동화장실은 다르다. 오전 9시부터 외래 환자들 수십 명이 줄 서 있는데 이들 중 누가 왔다 갔다 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게다가 아침점심에만 청소하는 병실과 달리 화장실은 수시로 쓸고 닦아서 언제 노출됐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도 “락스로 변기뚜껑부터 시작해 구석구석을 청소하지만 청소를 자주해도 청소를 안 하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바이러스가 계속 깔린다”며 “우리가 청소하는 것 말고 병원 차원에서 소독하는 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마스크는 하루에 두 개밖에 지급되지 않는다. 청소노동자 입장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화장실이나 병실을 청소하다보면 마스크나 장갑이 오염될 수도 있고, 오염된 경우 벗어서 버려야한다. 하지만 두 개밖에 지급되지 않는 마스크를 버릴 수 없기에 청소노동자들은 오염이 됐을 지도 모를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청소를 한다.

A씨는 “장비가 충분하지 않다. 격리병동을 담당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진료할 때 입었던 옷을 한 번 입고 바로 벗어서 태워버리는데, 우리들은 장비가 부족해 계속 쓰고 다닌다”며 “간호사에게 교육을 받을 때는 분명 오염된 것 같으면 벗어서 버리라고 했는데…”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마스크 지급도 정규직에 비해 늦었다. 메르스 사태가 터지자마자 병원 의료진들에게는 마스크가 지급됐고 쓰고 다니라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에게는 메르스 사태가 사회문제가 된 이후에나, 뒤늦게 지급됐다.

A씨는 오늘 병원에서 준 게 있다며 손세정제를 보여줬다. 위험에 노출돼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지키지 위해 할 수 있는 건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가끔 손세정제를 사용하는 것 뿐이다.

더 두려운 점은 자신을 매개로 가족과 지인들까지 메르스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A씨는 “아들하고 둘이 사는데 아들에게 될 수 있으면 내 방에 오지 말라고 한다. 밥도 따로 먹고, 빨래도 따로 한다”며 “뭔가 내 몸에 있는 무언가가 기어 나와 아들에게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B씨는 “나는 옆집 아기들한테 옮을까봐 아기들 근처에도 안 간다”고 덧붙였다.

청소노동자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정보 부재’다. 정부는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여러 명 발생할 때까지 국민들에게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다녀간 병원 등을 공개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청소노동자들은 한 차례의 교육만 받았을 뿐 청소하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할 점,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를 가지 말아야하는지 등에 대해 거의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 안전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서 그냥 ‘저곳을 청소해라’고 지시만 하고 있다는 것.

이런 정보 부재도 비정규직이라는 상황에서 기인한 탓이 크다. 병원에서는 자기네 직원이 아니기에 적극적이지 않고, 하청업체는 의학적 정보에 대해 교육할 역량이 없다. 또한 정규직 의사나 간호사들은 부서별 회의를 통해 메르스의 진행 과정을 일상적으로 공유하지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그냥 불안해하면서도 ‘나는 안 걸리겠지’라는 막연한 기대 밖에 할 수 없는 처지다.

B씨는 “침을 통해 감염된다고 교육을 시켰는데 삼성서울병원에서는 화장실을 통해서 전염된다고 하지 않았나”며 “교육 받은 것과 다른 새로운 내용들이 계속 나오면 뭘 조심하라고 교육을 다시 시켜야하는데 그렇게 안 한다. 예컨대 우리는 공동화장실은 물론 환자들이 잡고 다니는 복도 손잡이까지 다 닦는데, 그 중에 뭘 주의해야하는지 알려줘야지 덜 불안하다”고 강조했다.

노조 관계자 역시 “노동자들 입장에서 정보가 없는 게 가장 불안하다. 정부가 내세운 여러 가설들이 깨졌기에 더욱 그렇다”며 “간호사 숙소나 의심환자 숙소를 청소해도 안전한지를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냥 청소하라는 식이다. 병원은 치료에 집중하느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의 비정규직 응급실 이송요원(137번째 환자)이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9일 간이나 근무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A씨는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처해도 쉽게 신고하지 못할 것 같다. 청소하는 사람들 다 그럴 것”이라며 “진짜 발병을 해서 눈에 띨 정도가 되고 사람들이 다 알기 전에는 쉽게 ‘나 열이 나니까 열 좀 재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해고는 둘째 치고 당장 며칠만 일을 못해도 생계에 위협이 된다. A씨의 경우 세후 임금이 140만원인데, 하루만 격리돼도 5~6만원이 월급에서 빠진다. 정부는 미열이라도 발생하면 회사에 보고하라고 하지만, 보상책도 없는 상황에서 나서긴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메르스가 사라진대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메르스 이전부터 감염의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병실에 감염환자가 있어도 병원에선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주지도, 그 환자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A씨는 “병원에 결핵 환자들 모아놓은 병동이 있다. 일요일에 돌아가면서 그 병실을 청소한다”며 “어떤 의료진이나 환자는 청소노동자가 오면 압축마스크를 하라고 말해주지만, 대부분 그냥 다 들어간다”고 말했다.

A씨는 또한 “결핵 환자 방에서 나온 폐기물은 테이핑을 해서 버려야하는데, 테이핑을 하는 과정에서 균에 다 노출된다. 하청업체한테 이런 위험성을 말해주지도 않고, 하청업체도 그냥 가서 일만 하라는 식”이라고 밝혔다.

A씨는 퇴직한 동료들 중에 결핵 환자가 되는 경우도 여럿 봤다고 한다. 어디서 옮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소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거나 다른 직장에 취직한 뒤 뒤늦게 결핵 때문에 병원에 다니며 고생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