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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실명제 망령, 합헌결정 논란

되살아난 실명제 망령, 합헌결정 논란

선거기간 기사 댓글 달려면 실명인증해야… 소셜댓글은 합법, 실효성 없는 규제 논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인터넷 실명제’에 해당하는 공직선거법 조항들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인터넷실명제가 위헌이라는 앞선 결정과 모순되는 동시에 효용성도 없는데 표현의 자유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오후 선거기간 중에 언론사 홈페이지에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글을 올릴 때 실명확인을 거쳐야한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제82조 6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를 위반하여 기술적 조치를 하지 않은 자(언론사)에게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제261조도 합헌이라고 봤다. 재판관 5명이 합헌 의견을, 4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이번 위헌소송은 201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8월 인터넷언론 딴지일보는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실명제가 익명표현의 자유 등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013년 1월 실명확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다음카카오도 같은 해 10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선거운동기간 중 인터넷언론사 게시판 등을 통한 허위사실이 유포될 경우 언론사의 공신력과 지명도에 기초하여 광범위하고 신속한 정보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며 “실명 확인 조항은 이러한 언론사를 통한 정보의 특성과 우리나라 선거문화의 현실 등을 고려하여 입법된 것으로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는 2012년 8월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경우 실명인증을 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제44조 5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종합하면 선거기간 중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선거의 공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한 셈이다.

당장 선거기간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신훈민 진보네트워크 변호사는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자유롭게 토론의 장을 열어놓으면 언론사 게시판이 엉망이 될 것이라며 국민들의 역량을 낮춰보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며 “선거기간에는 본인이 드러날 것을 각오하고 글을 써야한다고 말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위헌 입장을 밝힌 4명의 재판관들은 “이 법률조항은 정치적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핵심적 기간인 선거운동기간 중에 익명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사실상 선거에 관한 익명표현의 자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의견을 냈다.

효용성도 별로 없다. 자신의 SNS로 로그인해 댓글을 다는 ‘소셜댓글’의 경우 이 법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미 2013년 해당 조항에 대한 폐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소셜 댓글 등 실명 확인을 받지 않는 정보의 게시가 가능해짐에 따라 규제의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였다. 국회도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였고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위원회가 이미 7월 28일 공직선거법 인터넷 실명제를 없애기로 의결한 상황이다.

결국 선관위와 국회 등이 폐지로 방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헌재가 초를 친 셈이다. 신훈민 변호사는 “헌재는 다양한 의견수렴에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방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헌재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하지 말라’고 선을 그어버렸다”며 “87년 민주주의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헌재가 이제 민주주의 의사결정과정에 훈장질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다음카카오 측 관계자는 “당시에 네이버나 다른 사이트는 ‘소셜댓글’이라는 이유로 과태료를 물지 않았다. 이런 방안을 포함해 어떤 기술적 조치가 필요한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