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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로 가자” 구호로는 안 된다

“청와대로 가자” 구호로는 안 된다

[기자수첩] 10만명 모였지만 예견된 충돌… 경찰의 고립 작전에 동력 상실, 국민적 관심 환기에도 실패

“친구가 나보고 파리에서 테러 났다는 데 괜찮냐고 카톡 하길래 난 괜찮은데 한국도 광화문 시위 때문에 난리던데 어떻냐고 물어보니까 ‘지금 광화문에서 시위해?’ 이런다. 그게 너무 소름 돋았다”

파리에 있는 한 누리꾼이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던 지난 14일 밤에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은 그 날의 참혹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기자 입장에서도 요 근래 취재한 집회 중에 가장 참혹했던 집회였다.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팔이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집회 참가자들이 속출했다. 칠순 농민 백모씨는 직사로 물대포를 맞아 생명이 위독한 상태까지 내몰렸다. 캡사이신이 섞인 물대포를 맞지도 않았는데 근처만 가도 기침이 나올 정도로 경찰은 최루액을 독하게 살포했다.

집회가 시작도 되기 전부터 차벽으로 광화문 일대를 둘러싸고 쓰러진 시민들을 향해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물대포를 쏘는 공권력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와는 별개로 집회 전략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한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소식까지 알았던 친구는 왜 광화문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을까. 시위대의 요구, 주장은 보도하지 않은 채 불법시위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책임이 크지만, 집회의 전개양상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크다. 

경찰의 진압이 특히 더 심각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민중총궐기 집회는 이전 집회와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첫째, 시위대가 광장에서 집회를 한 뒤 행진을 시작한다. 둘째, 경찰은 차벽을 겹겹이 쳐서 광화문 일대를 에워싸고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의 행진을 막는다. 셋째,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을 이어간다. 마지막으로 몇몇 사람이 연행되거나 해산하는 방식으로 집회가 끝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1만 명이 모이건 10만 명이 모이건 집회의 전개양상은 비슷하다. 선두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경찰 버스를 끌어내려고 밧줄을 당기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뒤의 사람들은 앞의 사람을 응원하거나 ‘길을 열어라’는 구호를 외치다가 집회는 끝난다. 그러다 경찰들의 방어선이 뚫리면 시위대는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고 경찰들은 그 다음 방어선에서 시위대를 저지하고, 또 같은 충돌이 반복된다.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의 모습도 비슷했다.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 몇몇 선봉대가 앞장서서 경찰버스를 밀거나 경찰을 끌어내려 했고, 뒤에 있던 대다수의 시위대는 버스가 움직이면 박수를 치면서 응원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대다수의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 차벽을 뚫고 광화문광장, 혹은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이 목표가 되다보니 앞의 선봉대가 차벽을 뚫을 때까지 뒤의 시위대는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경찰은 대규모 시위대가 행진할 수 있는 길에 방어선을 치면 행진이라는 시위대의 목표를 저지할 수 있다.

경찰의 진압방식은 시위 문화의 변화에 발 맞춰 변화했다. 과거 경찰은 곤봉이나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거나 해산시켰다. 경찰과 시위대가 직접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의 잔인한 진압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과잉 진압’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2년, 나아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많은 집회가 문화제 형식을 띠게 됐다. 특정 공간을 점유한 채 공연을 즐기는 방식이다. 그러자 경찰은 곤봉이나 방패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진압방식을 발견한다. 공간을 점유하고 문화제를 즐기는 시위대에 맞서 그 공간을 먼저 점유해버리는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명박산성이 대표사례다. 집회가 예정된 지역 주변에 컨테이너박스나 차벽을 세우고 일대를 봉쇄해 시위대를 고립시킨다. 이 지점에서 물대포가 등장한다. 경찰들이 곤봉과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진압하는 대신 물대포를 쏴서 시위대가 거리로 나오는 것을 차단한다. 물대포에 캡사이신을 섞어 시위대의 결집력을 흐트러트리면서 차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21세기 경찰의 시위 진압방식은 이처럼 ‘고립시키기’다.

집회 참가 인원이 지닌 중요성도 줄어들었다. 경찰이 시위대를 직접 곤봉과 방패로 진압해 해산시키는 상황에서는 집회 인원이 중요하다. 비유하자면 평야에서 벌어지는 전투다. 하지만 진압의 목표가 고립시키는 것이라면 시위대가 1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특정 공간만 사수하면 된다. 경찰은 평야의 전투에서 성을 지키는 공성전으로 전략을 바꾼 셈이다. 

시위, 데모의 목적은 ‘보여주기’다. 하지만 집회가 고립된 광화문에서 벌어지면, 제3자가 보기에 집회는 ‘남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경찰과 시위대의 전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시위대와 경찰의 몸싸움만 보여주며 이러한 시각을 더욱 강화한다. 

경찰의 진압방식에 발 맞춰 시위대의 시위 전략도 다변화해야 하는 이유다. 10만 명을 한 자리에 모아 많은 사람들이 노동개악과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한계점이 있다면 10만 명의 사람들이 지역 각지와 도심 곳곳에서 여론전을 펼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끌어내는 게릴라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에도 경찰은 도심 곳곳에 경찰을 풀어 시위를 막으려 할 것이다. 14일 민중총궐기는 공권력의 과잉 진압과 함께 집회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고민거리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