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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을 국정원이 좋아합니다

테러방지법을 국정원이 좋아합니다

국정원을 테러대응 컨트롤타워로… 정권비판 사찰 조직으로 변질 가능성

정부여당이 파리 테러 이후 다시 ‘테러방지법’을 꺼내들었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테러방지법의 골자는 국정원을 대테러대응의 컨트롤타워로 만드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국정원이 테러방지라는 명목으로 수집한 정보를 국내정치개입이나 내국인 사찰에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대규모 테러 이후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야한다며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미 새누리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을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테러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기구를 만들어 종합적으로 테러 대책을 세우자는 내용의 법안들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분단국가의 특수성과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 등 한반도의 전반적인 안보상황을 고려한다면 테러방지 법안은 국가와 국민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안전장치”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여러 차례 테러방지법 통과를 주장한 결과, 여야는 지난 17일 3+3 회동에서 “테러방지법 관련 상임위(정보위, 안행위, 미방위, 정무위 등)는 논의를 시작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여야 합의된 안을 처리 한다”고 합의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18일 오전 ‘테러방지 종합대책’ 당정협의를 열었다. 당정은 정기국회 내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테러방지법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테러 행위가 의심되는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출입국관리법,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 항공보안법 및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등 관련법도 적극 처리하기로 했으며 약 736억 원에 달하는 예산도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하기로 했다.

문제는 테러 대책을 주관하는 기관이 국정원이라는 점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각종 테러방지법에는 국정원의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3월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테러예방 및 대응에 관한 법률’은 국가정보원장이 매 5년마다 대테러기본계획을 수립 및 시행하고, 국정원장 소속으로 테러업무를 총괄하는 대테러센터를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대테러센터의 장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할 수 있다.

앞서 지난 2월 이병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도 국정원장 소속으로 테러통합대응센터를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테러통합대응센터의 장은 정보수집 조사 및 테러우려인물에 대한 출입국 규제, 외국환거래 정지 요청, 통신이용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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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테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3년 서상기 의원이 발의한 ‘국가사이버테러 방지에 관한 법률안’은 국정원장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할 수 있으며, 국정원장 소속으로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둔다는 내용이다. 국정원장에게 사이버위기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권한도 생긴다. 지난 6월 이노근 의원이 발의한 ‘사이버테러방지 및 대응에 관한 법률안’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국정원장이 관계기관에 사이버 테러혐의자의 출입국관리기록, 금융거래정보 및 통신사실 확인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이처럼 국정원이 컨트롤타워가 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내국인 사찰 의혹과 정치개입 논란에 여러 차례 휩싸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테러를 방지하고 테러위험인물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국정원이 내국인을 사찰하거나 국내정치에 개입하는데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감시도 되지 않는 조직이다.

한 야당 정보위 관계자는 “테러 관련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하나로 합치고 법의 미비점을 바로잡자는 취지에는 동감한다. 근데 왜 하필이면 국정원에 그런 권한을 다 줘야하는가”라며 “테러정보통합센터가 있고 경찰과 군, 그 외 많은 기관에서 테러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컨트롤타워를 제3기구나 청와대 안보실에 맡겨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아직까지 국정원이 테러대응의 컨트롤타워여야 한다는 점을 고집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 위원장인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 인터뷰에서 “테러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정보 파악인데 사전정보 파악을 국가정보기관 이외에 할 만한 기관이 없다”며 “새로운 기관을 만들면 옥상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역시 18일 열린 당정협의 자리에서 “야당은 국정원 권한 집중을 이유로 (테러방지법을)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파리테러 참사를 보고도 국정원 힘 빼기나 하려는 야당이 참 답답하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행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다른 정부기관에 맡겨도 된다. 정부기관은 다 서로 협조하고 연결돼 있다”며 “그런데 그걸 굳이 국정원에 맡기려고 하니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닌가라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테러’의 개념이 애매모호한 점도 문제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고 난 뒤 국정원은 테러방지법을 입법 예고했는데, 이 법안은 테러를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 목적을 추구하거나 주의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행하는 행위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중대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 테러방지법을 두고 당시 ‘사회적 불안’ ‘정치적 목적’ 등의 애매한 규정은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을 탄압하는데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예컨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사업장인 국가중요시설을 점거하는 것도 테러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따라 테러방지법은 통과되지 못했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안은 이전의 테러방지법보다 더 세밀하게 테러에 대해 규정하긴 하지만 여전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남아 있다. 이 법안들은 테러에 해당하는 행위 중 하나로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정부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또는 사람을 체포‧감금‧약취‧유인하거나 인질로 삼는 행위’를 제시한다. 

‘국가지방자치단체의 권한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에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나 시위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과한 해석일 수 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의 최근 발언을 살펴보면 그런 조짐이 보인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13일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로 세계가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14일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는 폭동을 넘어선 테러에 온 국민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는 폭동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을 향한 명백한 테러 범죄”라며 민중총궐기 집회를 테러로 규정했다.

앞서 17일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들을 일컬어 “대한민국 경찰을 때리고 쇠파이프로 버스를 부수고 거리를 점령하려고 하는 테러분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종총궐기 집회 같이) 이런 기본질서를 해치는 일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IS의 테러에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수집 권한까지 지닌 국정원이 대테러업무를 총괄할 경우 테러 개념을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우려가 제기될 만하다. 국정원은 18일 정보위원회에서 국제테러조직인 IS와 북한의 연계 가능성은 상존하지만 뚜렷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앞으로 IS와 북한을 연계시키며 테러를 막기 위해 ‘종북세력’을 잡아야한다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테러방지법이 무분별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이미 미국에서도 드러났다. 미국은 9.11 테러 발생 직후 연방수사국의 대테러활동을 강화하고 감청 절차 등을 간소화하는 소위 ‘애국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2013년 스노든 전 CIA 직원의 폭로로 국가안보국이 무차별 감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연방 1심 법원은 애국법이 미국 수정헌법 4조를 위배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