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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있을 거란 예상만으로 집회 금지 안 된다”

“폭력 있을 거란 예상만으로 집회 금지 안 된다”
경찰 집회 허가제에 법원이 제동… “경찰 주장대로라면 민주노총은 영원히 집회 못해”

2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금지 통보를 하며 사실상 집회신고제를 허가제로 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던 경찰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집회를 제재하려는 경찰의 움직임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행정법원 6부는 3일 ‘백남기농민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가 서울지방경찰청을 대상으로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경찰의 2차 민중총궐기 금지 통고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지난달 29일 대책위는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다. 12월 5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서울시청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4시부터 6시까지 시청광장에서 대학로 서울대병원 앞까지 2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경찰은 11월 30일 집회 금지 통고를 했다. 경찰은 지난 11월 14일자 민중총궐기 집회가 불법폭력집회였는데, 이번 12월 5일 집회도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금지할 수 있는 집시법 5조에 근거한다. 경찰은 또한 인근도로에 극심한 혼잡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도 제시했다. 이는 집시법 12조에 근거한다. 

법원은 경찰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법원은 “1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53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었으나 이 사건(2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118개 단체가 가입돼 있고 51개 단체가 동일하다는 사정만으로는 제1차 민중총궐기 주최자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한 “민주노총이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와 이 사건 집회의 주된 세력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집회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의 발생이 명백한 집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며 “피신청인(경찰)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주최하거나 참석하는 모든 집회는 앞으로 허가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여당은 앞서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와 민주노총 등을 불법폭력 시위꾼으로 규정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8년간 반정부 성향의 5개 대형집회 모두 민주노총이 주도했다고 한다”며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190건의 불법폭력시위가 있었는데 이중 절반이 노동계 집회에서 발생했고, 특히 올해 들어 8월까지 발생한 14건의 불법폭력시위 중 9건이 노동계 주관”이라고 말했다. ‘폭력집회를 주최한 단체의집회는 금지한다’는 경찰 논리와 궤를 같이 한 셈이다. 법원은 이러한 논리를 반박했다.

법원은 집회를 신청한 단체들이 평화집회를 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참작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평화집회를 공언했고 조계종 등 4대 종단과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평화집회를 위해 차벽 대신 사람 벽을 쌓아 충돌을 막자고 제안한 상황이다.

법원은 “신청인은 이 사건 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수회에 걸쳐 밝히고 있고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에 개최된 2015년 11월 28일자 집회는 이 사건 집회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집회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에 해당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교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집회를 제한하는 경찰의 논리도 반박했다. 경찰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집시법 12조 1항를 근거로 집회 금지를 통보했다.

집시법 시행령은 서울지역 도로 중 △세종대로-한강대로 △경인로-여의대로-마포대로-종로-왕산로-망우로 △하늘길-공항대로-성산로-율곡로-장충단로 등 16개 도로를 집회 금지가 가능한 주요 도로로 설정하고 있다. 청와대,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서울광장, 국회 앞, 각종 대학 등 집회가 주요 벌어지는 지역들이 죄다 포함돼 있다. 집시법 12조가 폭넓게 적용될 경우 사실상 집회신고제가 허가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신청인이 질서유지인 300명을 두고 도로 행진을 하겠다고 신고하였으므로 피신청인(경찰)은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사유만으로 이 사건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집시법 12조 2항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도로를 행진하는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금지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또한 법원은 “집회 금지는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라며 “피신청인(경찰)은 신청인과 이 사건 처분 전에 행진 인원‧노선‧시간 또는 방법을 변경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협의한 바 없고 이 사건 집회를 허용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집회가 집회 개최장소와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집회를 금지하려는 공권력의 시도는 번번이 법원의 제지를 받아왔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는 세월호 생존자 무사생환을 기원하며 종로구 동화면세점부터 북인사마당까지 침묵행진을 하겠다고 집회 신고를 했다. 경찰은 행진코스가 주요도로라는 이유로 금지했다. 원탁회의는 가처분 신청을 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경찰의 금지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2013년 6월 참여연대 등은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반대 문화제를 열겠다고 집회 신고를 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교통에 방해가 된다며 금지통고를 했고 참여연대는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법원은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신고제가 허가제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대법원은 2011년 10월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2012년 4월에도 “집회신고는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허가할 수 없는 걸 어떻게 불허하나>

이번 법원 결정도 이러한 판단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법원의 결정으로 예외규정을 이용하여 집회 신고를 사실상의 허가제로 운영해 온 경찰의 공권력 남용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