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돌리는 김한길, 기자들이 먼저 지쳤다
야권 통합 두고 국민의당 내분, 기자들 불러서 "뜨거운 토론 필요해"만 반복… 향후 거취 질문엔 '버럭'
기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자회견, 기자간담회에 참석한다. 그 중 가장 난감한 기자회견은 ‘뭘 써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기자회견이다. 그럴 때 기자들은 질문을 던진다. 기사에 쓸 만한 새로운 팩트를 알아내기 위해서다.8일 오후에 열린 김한길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의 기자회견도 그랬다. 기자들은 ‘이제 그만할까요’라는 김한길 의원의 말에도 거듭 ‘확실한 입장’을 요구했고 “명확히 해 달라”고 질문을 던졌다. 기자들은 ‘탈당할 거냐’ ‘불출마할 생각도 있냐’ 등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김 의원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반문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한길 의원의 기자회견은 김한길 의원 사무실인 의원회관 918호에서 열렸다.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자리를 못 찾아 바닥에 앉아야 할 정도였다. 김 의원이 야권 통합 관련해 안철수 대표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김 의원의 향후 행보에 언론의 눈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한길 의원 측 관계자는 간담회 시작 전 “일부러 만든 자리니 자유롭게 질문하라”고 했다. 김한길 의원 역시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저희 집 앞에서 기자들이 고생하고 또 오늘도 당사에서도 그랬고, 많은 기자들이 저를 보고싶어 하길래 왔다”고 말했다.
2-3 분간의 모두발언이 시작됐다. 달라진 입장은 없었다. 김 의원은 “여당이 개헌선을 넘으면 나라와 국민이 끔찍한 상황에 놓이는 대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야권이 개헌저지선 지키는 일은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이라며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
김 대표는 또한 “패권주의 청산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일이 선행돼야 야권의 개헌선 저지를 위한 뜨거운 토론이 있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김종인 대표의 야권 통합 제안 이후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던 말과 비슷한 입장이다.
이제 기자 입장에서는 물어야 한다. 기자가 더 들어야만 하는 새로운 팩트는 다음과 같다. △패권주의 청산의 기준은? △‘뜨거운 토론’의 계획이 잡힌 것이 있나 △완강히 거부하는 안철수 대표를 설득할 수 있나? △설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그래서 기자들이 물었다. “더민주의 컷오프가 패권주의 청산 기준이 될 수 있나?” 김 의원이 답한다. “잘 보겠다” 다시 묻는다. “패권 청산은 어떤 걸 의미하는가?” 김 의원이 답한다. “그것까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 국민들과 국회의원들이 각자가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고 평가가 토론을 통해 모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기자가 묻는다. “당내 의견을 모을 계획이 있나?” 김 의원이 답한다. “당내에서 지난 번 통합에 대한 토론을 했다. 당이라는 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토론을 이어가는 장터 아닌가”
질문이 모호했나? 질문을 구체화시킨다. 한 기자가 묻는다. “안철수 대표가 통합을 거부하는데?” 김 의원이 답한다. “안 대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겠나. 많은 분의 의견이 모아지는 과정에 참여할 것이다”
질
문이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통합할 건데 왜 탈당했는가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김 의원이 다소 목소리를 높인다. “애초에 왜
탈당했는지 잘 아시지 않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계파패권주의에 장악당하고 있었기에 이런 상태의 정당으로는 정권교체 총선승리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어렵게들 결단한 거다”
김한길 의원 입장에서 ‘공격’이라 느껴질 수 있는 질문도 나온다. “통합
필요성, 본인의 선거 때문 아닌가?” 김 의원의 답변도 강해진다. “제 지역구를 연결시켜서 이야기하는 건 저에 대한 모욕이다.
서울에서 제일 좋은 구로 같은 지역구를 내놓고 나온 사람이다”
기자들이 다시 묻는다.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리실 의향은 없나?” 김 의원이 답한다. “결단이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책임지는 걸 회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어떤 결과든 분명하게 책임지겠다”
‘정
치적 결단’의 정체는 기자의 입에서 나왔다. “안 대표를 설득하지 못하면 탈당할 생각도 있나?” 김 의원은 “안 대표도 토론을
피하는 분이 아니다”고 답했다. 또 다른 기자는 “개별적 복당이나 광진에 불출마할 생각 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 의원은
“고려해 본 바 없다”고 답한다.
주제는 어느덧 ‘김한길 대표의 향후 거취’로 바뀐다. 기자가 “여당의 개헌저지선
방어를 위해 독자적 행동을 할 수도 있나”라고 묻는다. 김 대표는 다시 앞의 논의로 되돌아간다. “독자적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토론을 하자는 거다”
기자는 또 다시 “안 대표를 설득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묻는다. 김 의원은 답하지 않은 채 “오래 하니까 질문이 어려워지고 모호해지는 면이 있다.그만할까요”라고 말한다.
그
러자 기자들이 이제 대놓고 물어보기 시작한다. “당내 설득에 실패해서 기자간담회를 하시는 건가. 토론의 장 열자는 메시지인가?” 김
의원이 반박한다. “우선 정확하게 말해야 하는데, 당내 토론이 실패했다는 게 뭔가. 당내 토론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왜 당내
토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기자들이 ‘당내 설득 실패’라고 다시 묻는다. 김 의원은 “저는 그렇게 설득하지 않았다. 토론할 때 한
마디도 안 했다”고 받아친다.
“지도부 간 계파갈등부터 반성해야 하지 않나”라는 다소 불편한 질문도 나온다. 김
의원은 “국민의 당이 계파갈등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졌나”라고 되묻는다. 기자는 “그런 시각이 있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그런
시각이 있었는지 몰라도 정확한 말씀은 아닌 것 같다. 국민의당이 무슨 계파라고 할 만한 게 있나”라고 반박했다.
약
30분 간 진행된 기자회견은 자신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김한길 의원과 새로운 것을 알아내려는 기자들 간에 진행된 다툼의 현장이었다.
몇몇 기자들은 김한길 의원이 예전과 똑같은 메시지를 던져서 “뭘 야마로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기자는
“하다못해 언제 토론을 제안할 거라는 식의 말이라도 해야 기사를 쓸 것 아닌가. 소설 써야겠네, 관심법 동원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통 이런 종류의 기자간담회를 다룬 기사에는 정치인의 정체된 발언과 메시지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때론 기자들과 정치인 간의 물고 물리는 다툼을 그대로 보여줘야 현재 상황이 더 잘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글 >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도 위기지만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더 큰 일” (0) | 2016.03.25 |
---|---|
'임시 사장'의 친노 청산, 탈당파 명분 흔들까 (0) | 2016.03.25 |
컷오프된 송호창 "불출마, 국민의당 안 간다" (0) | 2016.03.25 |
53년 전 할아버지가 못 이룬 야권 통합, 손자가 이룰까 (0) | 2016.03.25 |
테러 수사 명목, 기자들 통화 내역까지 뒤지는데… (0) | 2016.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