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내각제 우리나라가 못할 이유 어딨나”
출판 기념회에 모인 3당 대표들… 김무성 “새로운 길 가려는데 방해와 저항으로 어려워”
3월 10일 오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신간 ‘김종필 증언록’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세 대표는 모두 김 전 총리의 증언록을 읽었다고 말했으나, 각자 강조한 책의 포인트가 달랐다.김무성 대표는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죽여’ 욕설 파문 등 친박계의 상향식 공천 흔들기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축사에서 김종필 전 총리가 자주 사용했다는 단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을 인용해 “요즘 제 마음이 춘래불사춘이다. 꽃샘 추위를 심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어딜 가나 마음이 편치 않은데 오늘 모처럼 오고 싶은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출판기념회 사회를 맡은 성우 배한성씨는 김무성 대표를 소개하며 “요즘 유달리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이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의 욕설 파문으로 새누리당 내부가 요동치고 있지만 김 대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국민공천제 최초 시행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방해와 저항으로 인해 어려움 겪고 있다”며 “그런 면에서 되돌아보면 총리님은 온갖 난관과 반대를 무릅쓰고 역사에 가장 큰 업적 남기셨다”고 말했다. 친박계의 상향식 공천 흔들기를 겨냥한 말로 해석된다.김종인 대표는 ‘연합’과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김종인 대표는 축사에서 “우리가 아무리 민주화를 이야기해도 밖에서 보기에 한 정당이 계속 집권하는 사회라는 건 일반적으로 서구사회에서 민주화 사회라 인정을 못 받는다”며 “1997년 김종필 전 총리에 의해 DJP 연합이 이루어져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가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은 이후 중도층과 보수층을 겨냥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심장한 말이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교체를 위해 충청에 기반을 둔 김종필 전 총리와 연대했다는 말은 더민주가 국민의당에 연합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과 오버랩된다.
반면 안철수 대표는 김종필 전 총리에게서 ‘양당구조 타파’를 읽었다. 안 대표는 “무엇보다도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돌풍을 일으키면서 양당구조에 도전하신 것을 정말 높이 평가한다”며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 양당구조 헤집고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를 담아내기 위한 정치세력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의 제3정당으로써의 행보를 강조하는 말이다.
안 대표는 또한 “총리님께서 반세기가 넘는 오랜 정치생활 동안 정치언어의 품격을 지켜 오신 것은 저희들 정치후배에게 정말로 큰 귀감이 된다”며 “특히 요즘 실감하고 있다. 흔들림 없이 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야권통합을 두고 김종인 대표가 안철수 대표를 향해 “정치를 잘못 배웠다”는 등 날선 공격을 하고 있는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 증언록’은 중앙일보에 실린 김종필 전 총리 인터뷰 ‘소이부답’ 시리즈를 재편집해 출간한 책이다. 중앙일보는 2014년 10월부터 51회에 걸쳐 매주 토요일 김 전 총리와 인터뷰했다. 홍석현 회장이 직접 나서서 김종필 전 총리를 설득했다고 한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는 출판기념회에서 “회고록 집필을 거절하던 JP에게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삼고초려의 정성을 기울였다. JP가 ‘중앙일보의 정성에 내가 졌소’라고 말하며 대장정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홍 석현 회장은 축사에서 “(김 전 총리가) 저희 집안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60년대 초 우리 집안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다”며 “제가 초등학교 때 겪었어야했던 악몽이었다. 집안의 어려움 타개하는데 운정 선생(김 전 총리)께서 커다란 도움을 주셨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또한 “저의 장인은 6.25때 육군본부에서 JP와 처음 조우했다고 들었다. 뒤에 JP는 5.16의 주역으로 장인은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의 법률고문으로 만났다”며 “두 분은 신설된 중앙정보부의 초대 부장과 차장으로 인연을 이어갔다. 생전 장인께선 제게 박정희 시대 2대 주주는 누가 뭐래도 JP였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구순의 JP는 힘겹게 연단에 올랐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내각제’였다. 김 전 총리는 “제가 마지막 정치생명을 내걸고 내각책임제를 추진했던 이유 또한 나라의 먼 장래를 위한 결단이요 호소였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내각제를 우리나라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제도를 버려야 국회가 바로 설 수 있고 국민이 주인 되는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제가 비록 이루지는 못했지만 후진 정치인들이 꼭 계승해서 이루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의 글 >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민주 컷오프, 원내대표 출신 전병헌도 탈락 (0) | 2016.03.25 |
---|---|
박영선 "녹취록 발언 보도, 사실 아니다" (0) | 2016.03.25 |
“정청래 막말, 귀여운 수준이지만… 고민 끝에 컷오프” (0) | 2016.03.25 |
컷오프된 친박 김태환,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선언 (0) | 2016.03.25 |
탈당한 홍의락, 김종인 만류에도 “무소속 간다” (0) | 2016.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