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여론조사, 당신의 답변을 정부가 들여다 본다면?
여론조사심의위, 객관성 검증 명분 개인정보·응답데이터 등 수집… “헌법에 보장된 비밀선거 원칙 위반” 논란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검증하기 위한 정보수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여론조사심의위가 여론조사를 검증한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A업체는 서울시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로부터 공문 한 장을 받았다. “선거여론조사결과 자료제출 요구”라는 제목의 공문이다.
공
문내용은 A업체의 여론조사가 공직선거법이나 선거여론조사기준을 위반하였는지 심의하기 위해 보관 중인 여론조사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서울시 여론조사심의위는 “해당 여론조사에 사용된 전체 데이터베이스 및 전체 DB(데이터베이스)의
특성(성별‧연령별‧지역별), 구축‧관리방법에 대한 설명, 해당 여론조사 과정에 접촉된 전화번호 데이터베이스”를 요구했다.
서
울시 여론조사심의위는 또한 ‘피조사자 접촉현황’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피조사자 접촉현황’에는 국번이 포함된 피조사자의
전화번호, 통화연결 및 종료시각, 통화시간, 응답데이터(비적격, 연결실패, 연결 후 거절 및 중도 이탈, 연결 후 응답완료) 등이
포함된다.
서울시 여론조사심의위는 “각 전화번호와 응답자 복수의 특성이 연결된 자료를 제출하고 자료를 임의로
삭제하여 제출하지 말라”며 자료제출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관련
자료를 임의로 삭제해 제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서울시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A업체에 보낸 공문. |
서
울시 여론조사심의위의 요구대로 정보를 제공하면 A업체의 여론조사에 응한 사람들의 전화번호와 거주 지역, 성별 등의 개인정보가
넘어간다. 서울시 여론조사심의위는 ‘전화번호와 응답자의 특성이 연결된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조사대상의 전화번호와
성별, 지역, 응답결과 등의 개인정보가 한꺼번에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대표는 “여론조사를
하면 전화번호와 응답 결과, 즉 어떤 번호를 가진 사람이 누굴 지지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6개월 간 보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여론조사를 두고 소송이 생기면 법원에 제출하기만 했다”며 “그런데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저인망식으로 자료를 다
제출하라고 한다. 1~2개 업체가 아니라 쏟아지는 여론조사들의 자료를 다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자료수집은
정치권의 ‘안심번호 도입’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각 정당은 20대 총선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승인
하에 0505로 시작하는 11자리의 가상번호, 즉 안심번호를 부여받은 유권자 명단을 받은 뒤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여론조사를
실시해 경선에 반영하거나 판세 분석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안심번호 도입에는 전화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론조사심의위의
자료수집은 안심번호 도입 취지와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심의위는 여론조작을 밝혀내기 위해 이러한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 관계자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여론조사심의위는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지키는 기관이다. 전화번호와 응답 데이터가 분리된 자료로는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후보자들이 여론조작을 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며 “전화번호와 해당
전화번호의 응답 데이터가 같이 있어야 특정 전화번호들에서 특정 후보자에 대한 응답치가 높게 나오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를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라 규정한다. 이 개인정보의 정의에는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포함된다.
여론조사심의위는
여론조사에 응답한 전화번호와 응답데이터가 연결된 데이터베이스 제공을 요구하고 있는데, 전화번호만으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을 특정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여론조사심의위가 요구하는 데이터베이스가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금지된 개인정보 제공이 될 수 있다는 것.
▲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
이 런 이유로 A업체는 서울시 여론조사심의위로부터 최초 자료제출 요구를 받았을 때 전화번호와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난 응답결과를 분리하여 제공했다. 하지만 서울시 여론조사심의위는 전화번호와 유권자의 특정한 응답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자료를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자료 수집이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헌법 제41조 제1항은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며 비밀선거를 규정하고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헌법상 비밀선거 원칙의 원칙은 투표 시에만 타당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또는 누구에게 투표하였는가에 관하여 구명하는 것도 금지되는 것을 뜻한다”며 “여론조사에 응답한 전화번호와 그 응답데이터가 연결된 데이터베이스에 의하여, 해당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자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 알려지거나 추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 데이터베이스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비밀선거 원칙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에 위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심의위가 내세우는 법적 근거는 공직선거법이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9항에 따르면 여론조사심의위가 심의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여론조사기관에 조사와 관련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 요구를 받은 기관 및 단체는 지체 없이 이에 따라야 한다.
공 직선거법 제108조 6항에 따르면 ‘관련 자료’란 “조사설계서·피조사자선정·표본추출·질문지작성·결과분석 등 조사의 신뢰성과 객관성의 입증에 필요한 자료와 수집된 설문지 및 결과분석자료 등 해당 여론조사와 관련 있는 자료일체”를 뜻한다. 여론조사심의위는 “해당 여론조사와 관련 있는 자료일체”라는 포괄적인 문구를 근거로 데이터베이스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 만 이러한 해석에도 반론이 제기된다. 통상 법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을 해석하는 데 있어 포괄적인 문구는 앞에서 열거된 개별적인 대상에 부수하거나 그에 관련된 부분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지적이다. 법 조항을 포괄적으로 해석할 경우 ‘관련 자료’의 범위가 무제한으로 확장돼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 관계자는 “여론조사심의위 업무는 법에 의한 공무사항이다. (수집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일도 없고, (여론조작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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