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용산에 나타난 ‘배신의 정치’와 ‘약속’의 대결
[르포] “진영은 배신자” 네거티브 공세 나선 새누리당…두 개의 사무실, 그리고 두 마리 토끼
4년 전만 해도 대통령 인수위원회 부위원장까지 맡았던 ‘친박’ 의원은 4년 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3선의 진영 의원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이었던 진 의원은 지금은 더민주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4.13 총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친박과 비박의 대결이다. 이 대결은 TK(대구경북)을 넘어 수도권에도 확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당적을 옮긴 진 의원을 노골적으로 ‘배신자’라 공격하고 있다. 진 의원은 서울의 중심지 용산에서 펼쳐진 ‘배신의 정치’ 공세를 뚫을 수 있을까. 공식선거운동 이틀째인 1일 용산을 찾았다.
용산에는 진영 의원의 선거를 돕는 두 개의 사무실이 있다. 삼각지역 8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이른바 ‘삼각지 사무실’에는 진 의원이 탈당하면서 데려온 새누리당 출신 보좌진들이 상주한다. 반면 남영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남영 사무실’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선거운동원들이 상주한다.
두 개의 사무실은 진영 의원이 잡아야하는 ‘두 마리 토끼’를 대변한다. 12년 간 새누리당 소속으로 복무하면서 지역에서 쌓아온 지지층이 있지만, 이제 당을 옮기면서 그 지지층이 진 의원을 지지할지 돌아설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진영 의원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하는 처지다. 새누리당 탈당으로 빠져나갈 지지층을 최소화하면서도 야당 지지층으로 확대해야 당선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줄타기’다. 진 의원은 3월 31일 출정식 직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끝까지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새누리당과 친박계를 향해서는 “최악의 정당”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공천”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용 산의 정치 지형도 고민을 더한다. 용산은 ‘여당세’가 강한 곳이지만 압도적이진 않다. 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52.4%를 얻어 조순형 민주당 후보를 6.5%p 차이로 이겼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는 진 의원이 0.12%p 차이로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성장현 구청장이 5.1%p 차이로 새누리당 후보에
승리했다. 용산은 동부이촌동, 한남동 등의 부촌과 동자동 쪽방촌 등 빈촌이 공존하고, 여야 지지층이 팽팽하게 맞선다. 5~10%에
달하는 부동층과 중도층의 선택이 승부를 좌지우지하는 지역이다.
진영 의원 측 한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용산의
북쪽 지역은 민주당이 이겼고, 남쪽 지역은 새누리당, 즉 진영 의원이 이겼다. 근데 진영 의원이 더민주 후보로 나오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다”며 “어떻게 될지 우리도 예상을 못하겠다”고 밝혔다.
▲ 더민주 진영 후보의 남영 사무실에 걸려 있는 용산구 지도. 빨간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곳은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진영 의원)이 이긴 지역, 하늘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곳은 민주당이 이긴 지역이다. 사진=조윤호 기자 |
이 관계자는 “지난 선거 때 진 의원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진영이라는 인물을 보고 지지한 것이라면 오히려 진 의원의 더민주 입당으로 지지층이 빠져 나가진 않겠지만,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의 진영’을 지지한 것이라면 문제가 완전 달라진다”며 “표본도 없고 여론조사를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까봐야 아는 선거”라고 설명했다.
진영 의원 측의 또 다른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진영’보다 ‘진영이라는 사람’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구청장도 두 번이나 민주당에서 가져간 지역에서 3선을 했다면 인물 경쟁력 아니겠나”라며 “의원의 인물 경쟁력을 믿고 선거운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새누리당은 3선의 진 의원에 맞서기 위해 2014년 지방선거 때 구청장 후보였던 황춘자 전 서울메트로 경영혁신본부장을 내보냈다. 새누리당의 전략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것이다.
김 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1일 용산 후암시장에서 진행된 황춘자 후보 지원유세에서 “박근혜 정권에 사사건건 발목 잡고 발전을 방해했던 운동권 정당인 더민주로 출마한 건 용산주민, 새누리당,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얼마 전까지 당의 실세로 불리며 당의 바람막이 밑에서 혜택 받던 사람이 박 정권을 사사건건 방해하던 더민주로 들어간 건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달라고 정치적 도의를 져버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원효로2가에 위치한 황춘자 후보 사무실 앞에는 ‘진실한 일꾼 황춘자’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들’(진박)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 황춘자 새누리당 후보 사무실 앞에 달린 팻말. 사진=조윤호 기자 |
사
무실에 들어서자 문 앞 탁자에 웬 종이뭉치가 쌓여 있었다. ‘더민주 입당한 진영 의원, 최소한의 정치 신의도 없나’라는 제목의
3월 21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인쇄한 것이다. 기자가 “선거운동 때 뿌리려고 쌓아놨나”라고 물어보자 사무소 관계자는 “그냥 사무실
찾아오는 분들 보라고 쌓아놓은 것”이라고 답했다.
▲ 황춘자 새누리당 후보 사무실에 놓여 있는 조선일보 사설. 사진=조윤호 기자 |
황
춘자 후보 측 관계자는 “진영 의원의 탈당이 지역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진영 의원에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주민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오히려 캠프 담당자들이 ‘정책을 보고 한 표 달라’고 달랠 정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누리당 위쪽에서는 ‘배신의 정치’ 전략을 쓰는 것 같은데. 그거야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지역 캠프 차원에서는 ‘지역일꾼’이 되겠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며 “진영 의원이 일한 12년 동안 용산이 너무 정체됐고,
멈춘 용산을 황춘자 후보가 다시 뛰게 하겠다는 점을 서울메트로 경영혁신본부장 등 황 후보의 이력과 함께 부각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신의 정치’에 맞서는 진 의원의 코드는 ‘약속’이다. 진 의원 측 관계자는 “배신이라는 키워드로
네거티브를 하고 있다. 정치 무관심층은 그 말을 믿을 수도 있지만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정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진 의원의 진심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표이고, 진심이라는 것이 막연한 게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 공약을 지키기
위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자고 했는데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고 그래서 당을 옮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배신’과 ‘약속’ 중 무엇에 더 공감할까. 효창동에 사는 60대 주민 A씨는 “당에서 누릴 만큼 누리고 장관까지 했던 양반이 국회의원 한 번 더하겠다고 당을 헌신짝처럼 버린 거 아닌가.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반
면 용산동에 사는 30대 주민 김모씨는 “배신이 아니라 배신할 수밖에 없게 내몬 거라고 생각한다. 어제 뉴스 보니 하루 종일 진영
의원이 ‘배신자’라는 이야기밖에 안 나오더라”며 “너무한 것 같다. 왜 나갔는지 뻔히 다 아는데, 국민들 수준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일종의 네거티브 전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 의원 측은 ‘배신의 정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처지다. 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배신의 정치’ 공세에 적극적으로 맞서면 선거구도 자체가 정쟁으로 흐르게 되고, 중도층이 이탈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용산에는 다른 야당 후보들도 있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 26일 만
19세 이상 유권자 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영 후보는 34.7%, 황춘자 새누리당 후보는 30.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조사에서 곽태원 국민의당 후보는 5.3%, 정연욱 정의당 후보는 2.6%, 이소영 민중연합당 후보는
0.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포인트, 응답률은 9.0%. 이번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영 의원 측
관계자는 “다른 야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적지 않은 데다 야당 후보들이 진 의원이 새누리당 출신이라는 점을 두고 ‘내가 진짜
야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여론조사에서 (우리가) 10% 차이로 이겨도 까보면 박빙일 거라 예측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배신의 정치’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질 경우 중도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 곽태원 국민의당 후보 등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곽태원 후보 측 관계자는 “선거 구도가 네거티브로 짜이면 야당 지지층이 제3당으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당이고 지지층도 조직기반도 약하다보니 네거티브 없이 진실 되게 가보자는 전략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
렇다고 야권연대가 가능한 상황도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정책특보 출신의 곽 후보는 독자노선이다. 곽 후보 측 관계자는
“(야권연대는) 전혀 생각 안 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진영 의원 측 관계자 역시 “용산 유권자들은 정치
의식이 매우 높다. 검증되지 않은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야권연대 가능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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