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경향의 ‘야권연대 만능론’, 수혜자는 새누리당
[비평] 또 다른 공포마케팅, 야권연대 부각할수록 야야 대결 구도 강화 역설… 1면과 사설 따로 노는 이유
두 개의 공포 마케팅이 413 총선을 휘젓고 있다. 이 공포 마케팅은 여도 야도 가리지 않는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6일 홍문표 충남 홍성‧예산군 후보 지원유세에서 “새누리당 과반수가 깨지게 되면 대한민국이 엉망이 되고 경제도 망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 마케팅의 전형이다. 새누리당은 이러한 공포 마케팅과 함께 ‘큰절’ 퍼포먼스 등 사죄 마케팅을 병행하고 있다.
야권에도 공포 마케팅이 존재한다. “야권연대 안 하면 야당이 전멸한다”는 것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서로 야권연대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상대에게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할 경우 몰아칠 책임을 강조하며 공포로 서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연대 안 하면 야당이 전멸한다”는 논리를 강화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인사들만이 아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소위 진보언론도 이 논리를 강화하는데 적극 동참하고 있다.
‘단일화 안 하면 전멸’ 논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지난 3월2일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야권통합 제안을 한 직후였다. 경향은 3월3일 사설에
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역사의 시계를 30~40년 전으로 되돌린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론이 뒷전으로 밀릴 판”이라며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려는 민의를 결집하는 길은 야권 전체의 협력뿐이다. 야권 지지층 다수도 새누리당의 어부지리를
우려하며 야권 통합이나 연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3월4일 사설에
서 ‘지지자의 열망’이라는 이유로 야권연대를 촉구했다. 한겨레는 “야권 통합 또는 연대 움직임을 단순한 정치공학이나 당리당략으로만
몰아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이뤄질 수 있도록 선거구도가 짜이는 건 국민에게 올바른 정치적
선택권을 돌려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철수 대표는 김종인 대표의 통합 제의를 거부했다. 그러자 비판이 쏟아진다. 한겨레는 3월7일 사설에서 “국민의당 역시 새누리당 독주 저지를 목표로 내걸고 출범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통합이나 전국적 연대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도권에서라도 야권이 손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경향은 3월8일 사설에서 “역대 선거에서 수도권은 득표율 격차 5% 내로 당락이 갈리는 곳이 상당수다. 야권이 ‘수도권 연대’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당의 어부지리는 필연”이라고 안철수 대표를 비판했다.
각 당의 공천이 정리되고 야권연대의 시한이 다가오면서 야권연대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보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날짜는 신문지면 기준)
“야권분열 틈…새누리 수도권서 크게 앞질러”(3월 25일 한겨레)
“수도권 104곳 ‘1여다야’…야권 공멸 위기”(3월 28일 경향신문)
“야권 분열에 ‘정권 심판’ 표심 무기력…여당 반사이익 현실화”(3월 29일 경향신문)
“안철수 대표, ‘새누리당 확장 저지’ 초심 어디갔나”(3월 30일 한겨레 사설)
“야 3당 수도권 지지율 새누리 앞서…개별 선거구선 고전”(3월 31일 경향신문)
“야권연대, 19대 때 수도권 27석->69석 ‘승리의 공식’ 입증”(4월 1일 경향신문)
“수도권 27곳 중 19곳 박빙…단일화가 승패 가른다”(4월 2일 경향신문)
▲ 4월 2일 경향신문 1면 |
한겨레는 4월 5일 사설에 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사실상 물 건너감에 따라 새누리당 압승 가능성도 커졌다.”며 “야권 분열이 여당에 국회의원 배지를 거저 헌납하는 지름길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인데, 투표용지 인쇄로 후보 단일화의 ‘골든타임’마저 놓쳤다.”고 질타했다.
한겨레는 정치전문사이트 ‘정치BAR’를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야권연대, 단일화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3월 30일 기사 “착잡한 야권 지지자들 ‘단일화는 대체 어찌 되나요’”에서는 “‘분열된’ 지역구의 야권 지지자는 속이 탄다”며 한겨레 총선상담소에 올라온 단일화나 연대를 묻는 야권 지지자의 글을 소개했다.
SNS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기사는 4월 1일자 기사 ‘야권 후보에게 단일화 압박을 넣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였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후보자에게 야권단일화를 압박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①일단 악수를 한다. ②해맑게 웃고 있을 후보자를 째려본다. 잡아먹을 듯이. ③독설을 날린다. ‘이번에 단일화 안 하면 내가 죽을 때까지 당신 안 찍을 겁니다. 당신 정치인생 종치는 거죠. 좋게 말할 때 내 말 들으세요.’” 후보를 만나지 못하면 선거캠프 사무실로 전화를 하고 후보의 SNS나 블로그에 댓글을 달라고 조언한다.
이 기사가 나가자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언론이 직접 나서서 지나치게 단일화를 강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무리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심판이 중요하다 해도 돈 내고 시간 써서 출마한 피선거권을 가진 후보자들에게 유권자가 나서서 단일화를 압박하라는 조언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김재두 국민의당 대변인은 4월 2일 브리핑을 통해 “한겨레가 국민의당에게 당 대 당 야권연대를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독자와의 소통을 빙자해 국민의당 후보자들을 제재하는 행동수칙까지 만들어 게재하고 있다”며 “이는 선거기간 중 정치적 중립과 공명선거에 앞장서야 할 언론의 사명을 포기한 채 특정 정파에 대한 노골적 편들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기사 삭제와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국민의당 뿐 아니라 소수정당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안효상 노동당 대변인은 4월 6일 논평에서 “선거를 일주일 앞둔 4월 6일자 한겨레를 보면 제1면과 맨 뒤의 사설이 불일치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고 비판했다.
안 대변인은 “제1면 헤드라인은 ‘꺼져가는 단일화...야권 10명중 1명 투표 포기’라는 제목으로 수도권 다섯 지역, 즉 이른바 ‘1여다야’ 구도인 지역의 유권자에 대한 여론조사에 기초한 기사”라며 “그런데 (4월 6일) 첫 번째 사설 ‘편파 선거방송, 이대로 방치해야 하나’ 는 지상파 방송과 종편의 편파성을 부각하면서 ‘방송의 공정성이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위협 받는다’고 꾸짖는다. 그동안 이 신문이 보여준 논조, 특히 자신들이 무시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보도 태도와 비교하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가 야권연대만 강조하느라 소수정당을 투명인간 취급해왔다는 것이다.
▲ 4월 6일자 한겨레 1면 |
정 치적 중립이라는 다소 고루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야권연대 만능론은 진보언론이 지닌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을 보여준다. 진보언론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이유로 야권이 뭉치자고 그러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관련 기사 : 야권연대하면 이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더
민주 후보와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새누리당 후보보다 많으니 야권연대를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산술적인
계산이다. 하지만 야권연대에는 수많은 기회비용이 있다. ‘결국 합칠 거면서 왜 그렇게 싸웠나’라는 유권자들의 질문에 무슨 논리로
답할 수 있을까.
보수 우위의 한국 유권자 구조를 고려하면 야권이 승리하려면 결집에서 나아가 중도층과 무당층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 야권 일각과 진보언론이 부르짖는 야권연대에 ‘새누리당 심판’ 말고 중도층과 무당층 유권자들을
설득할 어떤 가치와 명분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진보언론은 야권이 선거구도가 ‘야야대결’로
짜여 새누리당이 득을 보고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진보언론이 ‘야권연대 만능론’ 프레임에 빠져 이번 선거 구도를
야야 대결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렇게 야권분열 효과 있음에도 왜 수도권에는 경합지역이 많을까. 이 점을 다들 놓치고 있다”며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으로 수도권과 대구 등에서 보수층의 분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일화를 붙잡으면서 중도‧무당층이 빠져나가는 것을
감수하기보다 제1당과 1대 1 구도를 만들어 경합구도를 우위로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1등과 2등의
대결이 부각돼야 경합을 우위로 만들 수 있고 3당 지지층이 사표 방지심리로 2등에게 쏠릴 텐데, 지금은 야권단일화와 호남 주도권
이야기만 하면서 2등과 3등의 대결이 부각되고 2등과 3등의 지지층이 서로 결집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야권 단일화 주장이
오히려 야야 구도를 굳히고 있다는 뜻이다.
보수언론은 선거 때마다 ‘그놈이 그놈’이라며 정치권 전반을 싸잡아 비난해
정치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진보언론의 ‘야권연대 만능론’도 자꾸 반복될 경우 유권자 입장에서는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보도로 느껴질 수 있다. ‘결국 저놈들 선거 때면 이기려고 합칠 거면서 또 쇼하네’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4월4일 사설에
서 “고인 물처럼 정체되고 굳어버린 한국 정치를 바꾸려면 다양한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해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게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의 정당이 활동하는 게 한국 정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는 희망도 덧붙였다.
총선을 전하는 진보언론의 보도에도 ‘야권연대 만능론’ 외에 무지개처럼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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