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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내린 친박, 칼을 뺐으면 권성동이라도 베야?

꼬리내린 친박, 칼을 뺐으면 권성동이라도 베야?

[뉴스분석] 고립되는 강성 친박, 유승민 복당에 복잡해진 계산…발끈했지만 요구 수준 후퇴

친박이 흔들리고 있다. ‘복당 불가’를 외치던 과거와는 달리 유승민 의원의 복당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고, 세를 과시하기에도 역부족인 모습이다.

친 박계 의원 26명은 지난 20일 회동을 열고 최근 벌어진 새누리당의 복당 관련 내홍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유승민 의원 등에 대한 일괄복당을 주도한 정진석 원내대표의 소명,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 복당파 의원들의 화합 다짐 등 3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요구안은 참석은 못했지만 뜻을 같이하는 친박 계 초재선 9명이 이름을 더해 35명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이 날 회동은 친박계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줬다. 지난 17일 친박계의 1차 회동에는 조원진, 김태흠, 이장우, 김진태 의원 등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 6명만 참석했다. 이후 2차 회동 때는 세를 과시하기 위해 친박계 모두가 모일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참석한 인원은 30여명에 그쳤다. 새누리당 내 친박계가 70~80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도 모이지 못한 것이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유승민 의원 등의 복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는 뜻이다. 친박 좌장이라 불리는 서청원 의원은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권성동 사무총장 사퇴에 대해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앞서 17일에도 “여론 수렴 과정이 미흡한 것에 대해선 아쉽게 생각한다”면서도 “비대위의 탈당파 복당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 중진으로 꼽히는 한선교 의원은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아주 강한 친박 성향의 의원들 몇 분이 (나서는 것)”이라며 “어제 저녁에 뉴스 나오는 거 보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분들이 몇 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실 제 유승민 의원 등의 복당에 문제를 제기하는 친박 의원들은 3선의 조원진 의원을 제외하면 초‧재선 의원들이다. 이들은 김용태 혁신위원장 인선에 반발해 연판장에 서명했던 20여명의 명단과 겹친다. 중진급은 복당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요구사항의 수위도 점점 낮아진다. 17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복당을 결정한 뒤 청와대에서 “(복당을) 뉴스보고 알았다”는 반응이 나오자 친박계에서는 ‘쿠데타’라는 강경한 반응이 나왔다. 친박 의원들은 17일 회동에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열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권성동 사무총장이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유승민 의원이 복당하려면 과거 자신의 행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20일 회동에서는 친박계의 요구사항이 후퇴했다. 친박 모임의 대변인 격인 박대출 의원은 20일 회동 이후 브리핑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빠른 시일 내 의원총회를 소집해서 최근 일련 사태에 대해 경위를 설명하고 당 화합을 위해 솔선수범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과에서 ‘경위설명’으로 요구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박 의원은 “일부 의원들의 사과 요구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김희옥 비대위원장에 대한 (정 원내대표의) 사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본인 의견을 듣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대출 의원은 또한 “복당된 의원들은 의총에서 본인의 입장을 밝히고 당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민 의원에 대한 사과 요구를 철회하고 사실상 복당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마 지막 남은 요구는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다. 칼을 뽑은 이상 뭐라도 베야하는 친박 입장에서 본인들이 선출한 정진석 원내대표를 흔드는 것은 부담스럽고 또 이미 당 복귀를 받아준 의원을 다시 내보낼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권 사무총장의 사퇴가 마지막 보루다.

하지만 권 사무총장은 사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칩거를 마친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19일 이미 권 사무총장에 대한 경질 의사를 밝혔으나 권 사무총장은 이를 거부했고 비대위 회의에도 이틀 째 참석했다.

권 사무총장에 대한 경질이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권 사무총장은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새누리당 당헌 제26조 제3항은 대표최고위원이 당직자 임명과 관련해 가지는 권한은 ‘추천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제33조는 최고위원회의가 의결을 통한 당직자 임명권을 가지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며 “따라서 저의 사무총장 임명은 비대위원장께서 추천하였지만 비대위 의결에 따른 것이었고, 당헌‧당규에 별도의 해임규정이 없는 경우 임명권을 가진 비대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해임하는 것이 확고한 법리”라고 밝혔다.

권 사무총장이 사퇴하지 않자 친박은 ‘사퇴의 이유’까지 제공해주고 나섰다. 권 사무총장은 법사위원장직을 맡고 있는데, 당헌 23조에 “국회 상임위원장은 상임전국위원 신분을 갖게 되며, 상임전국위원은 선출직 이외 다른 당직을 겸할 수 없다”는 것. 이정현 의원은 20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매끄럽지는 않지만 어차피 이제 국회법사위원장직에 몰두해야 하는 위치가 되셨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당이 빨리 화합, 통합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친박이 흔들리는 조짐은 이전부터 감지됐다. 총선 직후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은 “친박으로 분류된 분들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안 나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 유기준 의원은 출마를 굽히지 않았다.

야 당에서 먼저 제기된 개헌론을 둘러싸고도 친박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헌법학자 출신의 ‘진박’ 정종섭 의원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한다. 하지만 친박 내에서는 개헌론이 본격화되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홍문종 의원은 16일 SBS 한수진의 전망대 인터뷰에서 “개헌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게 되면 결국 정치는 올스톱”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개헌 필요하다”는 입장만 일치하는, 정치권의 동상이몽

친박이 흔들린다는 것은 친박의 이해관계에도 변화가 있음을 뜻한다.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에만 관심을 둔 ‘강성 친박’과 그 외 미래권력을 고려해야하는 친박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특 히 최경환, 서청원 의원 등 친박 중진들은 미래권력을 대비해 새누리당의 당권을 장악해야 하고, 당권 장악을 위해서는 지금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심판론이 유 의원을 대선주자로 만들어줬듯이 자칫 새누리당이 유 의원의 복당 문제로 계파갈등을 벌일 경우 유 의원을 비박이 당권을 장악할 구심점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친박 내에서 갈리는 개헌론에 대한 입장 차이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고려해 ‘개헌은 안 된다’는 강성 친박과 ‘반기문 대통령-친박총리’라는 이원집정부제, 즉 미래권력 교체를 고려하는 친박 간의 입장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친박의 수가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