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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전태일, 다수의 연대를 형성할 줄 알았던 사람

어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발언이 꽤 논란이 됐다. 주52시간 근로제를 유예하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 청년 전태일의 죽음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윤희숙 의원은 1970년대의 근로기준법을 일컬어 “조금의 일거리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절박했던 시절에 현실과 철저히 괴리된 법을 만듦으로써 아예 실효성이 배제”됐다고 말한다. 이 말대로라면 전태일은 지키지도 못할 근로기준법에 헛된 희망을 품고 아까운 목숨을 버린 사람이 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보수파들이 종종 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라는, 대한민국의 수식어는 비현실적이고 헛된 희망으로 결론 날지도 몰랐던 전태일 같은 사람들의 도전과 외침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윤 의원의 말대로 그렇게 절박했던 시절에, 일거리만 준다면 근로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새벽마다 공장문 앞에 줄을 길게 설 정도였던 시절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의 외침에 공감하고 분노해 세상을 바꾸자고 나섰을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던 전태일의 외침이 단지 공허하고 헛된 희망이 아니라,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가장 급진적인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다수 시민의 상식과 급진적인 주장이 만날 때 세상은 가장 크게 진보한다. 전태일은 그것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역사를 절반만 보고 싶은 사람들은 전태일을 ‘시대의 흐름을 모르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 정도로 취급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전태일은 시대의 흐름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도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또 곤궁한 처지였음에도 자신보다 안 좋은 처지에 있는 재단보조 여공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바꿔낼 때 모두의 삶을 바꿀 수 있고, 다수의 연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