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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혜민스님과 멘토시대의 종말

혜민 스님이 사과까지 한 걸 보니 참 길지 않은 시간동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9년 전 혜민 스님 못지 않은 청춘들의 멘토였던 김난도 선생님을 인터뷰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 보면 왜 인기가 많았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한 때 저런 힐링 담론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9년 전에도 난 힐링 담론에 불만이 많았는지 란도쌤을 만나서 이런 저런 질문들을 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가지 질문이었다.

1) 교수님도 청춘을 책에 나온 대로 사셨는지 궁금해요.

2) 청년들이 도전을 망설이는 이유가 우리 사회에서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인 측면도 있잖아요. 개인의 노력 외에도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힐링 담론이 헬조선 담론으로 변화한 건 2번의 질문이 대세를 이루게 된 시대를 의미했다. 이제 1번 질문의 시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미디어에 등장해서 전문가니 뭐니 하는 사람들, 당신들은 당신들이 한 말에 책임질 수 있냐고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는 시대 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지”는 “아프면 환자지, 뭔 청춘이냐”가 되었다가 “그러는 넌 제대로 아파본 적 있냐?”로 바뀌었다.

나는 김란도 쌤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 후기도 남겼더라.

“사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을 때 위로보다는 반감이 많이 들었다. 지금 20대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구조적 모순의 해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란도쌤’은 이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이제 수없이 많은 청춘들을 위로해온 ‘란도쌤’의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해법이 궁금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이제 더이상 안 아팠으면 좋겠어서다.”

여전히 위로가 아니라 구조적 모순 해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변한 게 있다. 이제 더 이상 “란도쌤의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해법”이 궁금하지 않다. 혜민스님이건 란도쌤 같은 멘토들에게는 그런 해법이 없다. 해법을 낼 수도 없다. 애초에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등장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혜모 스님의 추락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멘토 시대의 종말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3352.html?fbclid=IwAR1pdyvVVbUNL1BoekWTCKsXOxcUvS8jMVZfvbddEOsVGWlrDBe2_YqEJ9I#c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