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5일차, 9월 18일은 투어 없는 날이다. 그래서 늦잠을 자고 조금 늦은 오전 7시 반쯤 숙소에서 나왔다. 늘 새벽 여섯 시에 숙소에서 나왔기에 이 정도면 매우 늦은 편.
어제 갔던 카페와는 다른 카페에서 카푸치노와 코르넷또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코르넷또 종류를 잔뜩 소개해서 추천해 달랬더니 햄이 들어간 코르넷또를 갖다줬다, 한 입 먹어보니...앞으로 코르넷또는 기본형으로 먹는 것으로.
투어가 없는 자유여행의 날이지만 찍어놓은 스팟이 많았다. 일단 ‘진실의 입’으로 유명한 포룸 보아리움 일대, 바로 인근의 로마 최대 전차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 로마 최대 목욕탕 중 하나였던 카라칼라 욕장까지. 오후엔 어제 못간 캄피돌리오광장부터 성천사성까지.
승객들의 양심에 의존하는 로마 버스를 타고 헤라클레스 신전 방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검색을 통해 신전 근처에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극장이던 ‘마르셀루스 극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때마침 버스가 마르셀루스 정류장 앞에서 멈춰서 진짜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하차했다.
얼핏 보면 ‘어? 여기가 콜로세움인가?’ 헷갈릴 법도 하지만 다른 곳이다. 그러나 함부로 ‘콜로세움 짝퉁’이라 부르면 (마르셀루스야 귀막아) 매우 억울할 것이다. 콜로세움보다 작아도 명백히 애가 원조다.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만들어졌고, 콜로세움을 만들 때 이 극장을 많이 참조했다고 전해진다.
마르셀루스 극장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잠시 둘러본 뒤 16년 전 로마에 왔을 때 인증샷을 찍었던 ‘진실의입’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포르투누스 신전 Tempio di Portuno과 정복자 헤라클레스 신전을 발견했다.
두 개의 신전이 있는 이 일대를 ‘포룸 보아리움’이라 부른다. 고대 로마에는 유명한 시장 두 곳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채소를 파는 포룸 홀리토리움(Forum Holitorium)이고, 다른 하나가 가축을 파는 포룸 보아리움(Forum Boarium)이었다. (라틴어로 보아리우스boarius가 소, 가축이라는 뜻이다.)
흔히 ‘진실의 입 인증샷’ 찍으러 가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포룸 보아리움 일대는 로마 탄생의 핵심적인 장소 중 하나였다. 고대 로마인들이 포로 로마노에서 테베레강으로 가려면 이 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거나 강을 건너 장사하는 사람들, 당시 로마 남북으로 오가는 물건과 사람이 모두 모이는 중심지였기에 자연스럽게 이곳에 시장이 형성됐다.
헤라클레스 신전을 지나 드디어 <로마의 휴일> 속 한 장면으로 유명한 진실의입 앞에 도착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입 안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설화로 유명한데, 사실 진실의입은 그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헤라클레스 신전의 하수도 뚜껑이었다는 썰이 있는데 정확치는 않다.
9시쯤 도착하자 인증샷을 찍으려는 한국인들이 단체로 도착했다. 하지만 진실의입이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은 9시 반에 문을 연다는 비보를 접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 또한 인증샷은 16년 전에 찍었기에 굳이 인증샷은 다시 찍지 않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손가락 잘릴까봐 무서워서 그런거 아님)
로마의 시작을 봤으니 이제 로마의 최전성기를 보러 가야겠다. 포룸 보아리움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로마의 12대 경기장 중 가장 크고 오래된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에 도착할 수 있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기로 최대 면적이 12만 제곱미터, 축구장 16개를 집어넣을 수 있고 15만 명~26만 명이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는 전차경기장이다.
그러나 참 세월이 무상하게도 지금은 과거의 위용을 알 수 없을 공터만 남아있다. 지나가다 보면 그냥 큰 공원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 지금은 ‘치르코 마시모 공원’으로 쓰이고 있다.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그때도 지금도 시민들의 문화 복지를 위해 쓰이고 있다니 다행이면 다행일런지.
참고로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지금 공사 중이라 그런지 뭣 때문인지 입장 시간이 매우 복잡하다. 안으로 들어가 오랜 시간 둘러보고 싶으면 시간을 잘 맞춰가야 할 듯하다. 나도 생각 없이 그냥 갔다가 통제선 바깥에서 잠깐 구경하고 나왔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지나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와 카라칼라 욕장으로 향했다. 입장료 13유로를 내고 로마의 목욕탕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카라칼라 욕장으로 들어섰다.
카라칼라 욕장은 키르쿠스 막시무스와 함께 로마 제국이 대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느끼고 싶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콤모두스와 함께 로마 최악의 폭군이라 불리는 카라칼라 황제가 군인과 시민의 지지를 받고 싶어 만들었는데, 건설하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카라칼라욕장은 집에서 씻을 수 있는 선진국 현대인의 입장에선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1,600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으며, 유동인구는 하루에 1만 명이 넘었고, 전체 부지 규모가 3만 3300평에 달했다고 한다. 이게 가능? 할까 싶지만 유적지로 들어서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로마 시대 목욕탕을 단순 목욕탕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로마 시대 목욕탕은 오늘날의 찜질방, 아니 워터파크 같은 복합문화시설이었다. 목욕탕은 냉탕, 온탕, 존나 온탕 세 개로 나누어져 있었고(각각 프리기다리움, 테피다리움, 칼다리움이라 불렀음) 체육관에 야외수영장, 미술관, 도서관, 회의실, 식당, 상점, 지하엔 종교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 노파심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이드도 없이 혼자 사진 찍고 기억에 의존해 정리한 내용이라 아래 사진 속 건축물들이 진짜 무엇인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어차피 부서진 옛날 건물인데)
위 사진들처럼 목욕탕 안에 창이 있는 이유는 낮 시간 동안 오랜시간 빛을 받아들여 내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목욕탕이었다는 것이 잘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형태를 알아볼 수 있도록 가장 잘 보존된 목욕탕 유적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최대 규모였다고. (이보다 더 큰 게 존재했다는 게 더 놀라움)
카라칼라 욕장은 냉탕과 온탕이 양쪽에 대칭으로 존재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온탕에서 수영장이나 체육관을 가로지르면 냉탕으로 갈 수 있다.
카라칼라욕장을 천천히 둘러 보며 확신했다. 이걸 만든 카라칼라 황제는 폭군일 수밖에 없다. 이런 규모의 목욕탕을 짓는 방법으로 군인과 시민의 지지를 갈구하면서, 이 워터파크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자가 정상일리 없다. 그러나 이 욕장을 만들고 완성시킨 것은 결코 폭군이 아니다.
흔히 옛날옛적의 위대한 유적지를 보며 엄청난 강제력과 폭력이 동원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나는 그것이 현대인이 갖는 상상력의 한계이자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어떤 일은 결코 강제력과 폭력만으로 이루어질 순 없다. 채찍으로 때리는 게 노동 효율성을 가장 높이는 길이었다면 인류는 계속 그 상태였을 것이다.
예컨대 피라미드는 채찍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그랬다면 몇 번이나 무너지고, 폭동이 수십 수천번은 일어났을 것이다.) 노동에 대한 (생각보다) 합당한 봉급과 대우, 그리고 사후세계가 중요하다는 그 시대 가장 보편적 사상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로마에서 본 콜로세움도 카라칼라욕장도 마찬가지다. 이 위대한 건축물은 황제, 혹은 폭군의 지시에서 시작됐을 지라도 그것이 로마 시민 보편의 지지나 필요, 혹은 사상에 기반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위대한 유적지를 보며 떠올려야할 것은 단지 '그 옛날에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기술적인 고민이 아니다. 우리의 고민은 이 업적을 가능하게 만든 고대 국가의 놀라운 행정력,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낸 시대적 필요성과 사상적 기반으로 향해야 한다. 즉 기술적 고민을 넘어 인문학적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복잡한 사색을 깨준 고양이 덕분에 비로소 점심시간이 꽤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후 일정 장소인 캄피돌리오 언덕 인근으로 향했다.
로마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는 캄피돌리오언덕, 그리고 교황의 은신처 성천사성, 그리고 실패없는 이날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음 편 : <반전의 캄피돌리오와 호박꽃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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