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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이탈리아 여행기

2024 로마 여행기⑦ 반전의 캄피돌리오와 호박꽃의 재발견

카라칼라 욕장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방향을 북쪽으로 틀었다. 전날 투어 가이드에게 괴테가 다녀갔다는 오래된 식당을(사실인진 모르겠다. 괴테가 아니라 고테나 괴으테일 수도) 추천받아 그곳을 구글지도에 찍어놨지만 막상 가보니 영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탈리아특 : 문 닫아도 공지 안 함)

그래서 뭐 먹을지 고민하며 베네치아 광장 - 캄피돌리오언덕 근처를 헤매다가 인근에서 별점이 제일 높은 Saporizzo라는 샌드위치 가게를 발견했다.

샌드위치 가게 내부

종류가 많아서 추천을 해달라고 했더니 2PIAZZA VENEZIA를 추천한다고 했다. 그래서 2번과 1, 각각 하나씩 달라고 하고 목이 말라 메시나 맥주도 하나 시켰다. 내 예상보다 샌드위치가 훨씬 컸고 (눈앞에서 잘라서 만들어주니 신선하고) 간이 잘 맞아 맛있었다.

샌드위치
샌드위치랑 같이 마신 메시나 맥주. 시칠리아 맥주인데 여기서 발견해서 반가웠다.

먼저 나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가게 주인이 와서 다른 하나는 싸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이걸 한 번에 두 개나 쳐 먹을 린 없다고 생각한 모양) 주인장이 바라는 대로 나머지 샌드위치 하나는 싸들고 캄피돌리오언덕으로 향했다.

캄피돌리오 언덕 가는 길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은 로마의 기원이 된 7개의 언덕 중 하나. 이곳으로 올라가는 코르도나타 계단과 언덕을 올라가면 펼쳐진 캄피돌리오광장은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코르도나타 계단은 위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마차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이렇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 광장
캄피돌리오 광장
언덕 위에서 바라본 전경
언덕 위에서 바라본 전경
캄피돌리오에서 바라본 포로 로마노

광장 어딘가에 앉아 들고 온 샌드위치를 하나 깠는데(언덕이니까 올라오느라 배고플 만하잖아) 샌드위치를 까자마자 비둘기들이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했다. 니놈들한테 줄 건 없었기에 둘기들을 피해서 허겁지겁 먹다가 토마토를 흘렸는데, 이 새끼들이 또 토마토는 기가 막히게 안 쳐먹는다. (가리는 것도 있었냐?)

샌드위치 오픈하자 모여드는 비둘기들

이쯤해서 캄피돌리오언덕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사실 캄피돌리오언덕은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베네치아광장을 들른 관광객들이 잠시 스쳐가는 경유지지만 로마 역사에서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캄피돌리오언덕은 처음에 로마의 도읍지를 정할 때 로물루스의 선택지에서 진작에 제외됐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 가장 작고 좁았을뿐더러, 고도는 제일 높았다. 주변은 절벽으로 둘러쌓인 데다 올라가는 길은 남동쪽뿐이라 마을을 이뤄 살기엔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랬던 캄피돌리오에 로마의 마을이 만들어진 이유는 로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단과 연결된다. 국력이 약해 언제든 주변 나라에 잡아먹힐 수 있었던 위기의 상황, 작은 도시 로마를 성장시키기 위해 로물루스는 살고 싶은 누구나 로마에 받아주겠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을 한다. 도망자, 부랑아, 빚쟁이, 산적, 범죄자, 누구든 신분을 불문하고 받아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동에서 호방하게 관리 살해하고 도망치던 관우도 로마라면 받아줬을 텐데.

그러나 이런 부랑자나 범죄자들이 곧바로 로마에 정착할 경우 당연히 다른 나라에서 '그놈 내놓으라'고 쫓아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로물루스는 이민자들이 안전하게 숨어있을 장소를 제공하였는데, 그 역할에 가장 부합하는 장소가 바로 캄피돌리오언덕이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고향에서도 잊혀졌다 싶으면 로마에 정착해서 살게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 광장의 늑대상

바다가 바다인 이유는 어디서 오는 물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이고, 산이 산인 이유는 어디서 온 돌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로마는 그 누구든 품어 안는다는 포용의 정신, 여기서는 누구든 새로 출발할 수 있다는 로만 드림을 심어줬기에 진정한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로마의 다섯 번째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이 언덕에 유피테르 신전을 건축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두개골을 다수 발견했고 (두개골이 라틴어로 Caput) 이곳에 살던 로마인들은 이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아 언덕의 이름을 세계의 머리Caput mundi라 붙이고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 신전을 지었다. 그 뒤로 이곳은 카피톨리움이라 불리게 된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나라의 중심을 뜻하는 캐피털Capital의 어원이 되었다.

캄피돌리오박물관에서 발견한 캄피돌리오의 자부심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 아닌가. 그 시절 가장 가난하고 가진 것 없고 흠 많던 인간들이 갈 곳 없어 모여들었던 일종의 유배소가 진짜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니 말이다. 캄피돌리오언덕은 그래서 어쩌면 로마에서 가장 반전 있는 곳이고, 로마의 제국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다.

캄피돌리오광장을 둘러싼 3개의 궁전 세나토리오, 콘세르바토리, 누우보 중 좌우 2개 궁전은 현재 카피돌리오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입장료 13유로를 내고 세계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방문했다.

입구 계단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두 바바리아인'(죄측)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승리' 조각
1층 호라티와 쿠라이지의 방. 대형 프레스코화로 온통 벽이 장식되어 있는데, 주세페 체사리가 로마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그림으로 묘사해두었다. 정면에 보이는 건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조각, 뒷편 그림은 늦대 젖을 빨고 있는 로물루스 형제가 발견된 장면
이노센트 10세 조각상 맞은 편의 교황 우르바노 8세 조각(베르니니니 작). 그림은 주세페 체사리의 '사비네 여인의 강간'
제독의 방 조각상
제독의 방 조각상
승리의 방.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
카스텔라니의 방에 있는 도자기
라이마니 정원의방에 있는  콤모두스의 흉상.  좌우 조각상은 반인반수 켄타우로스의 몸통 조각상
메세테나정원의 방의 마르시아 조각. 음악의 신 아폴로에게 도전하여 패배하자 소나무에 매달려 죽은 마르시아의 모습.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회랑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청동 기마상
청동 기마상과 같은 공간에 있던 암늑대상
2층 회화관에 있는 귀도 레니의 성 세바스찬
루벤스의 로물루스와 레무스
구에르치노의 <성 페트로닐라의 죽음과 영광>
캄피돌리오박물관엔 말 조각이 많았다.
이렇게 유물의 원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보여줘서 좋았다.
앗, 조선의 민화가?

오랜 여정으로 지쳐 잠시 숙소에서 쉬고 오후 성천사성 일정을 수행하려 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버스를 타야겠다는 판단에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거듭 계속 지연되다가 겨우 만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로마는 걷기 좋은 도시가 아니고 걸을 수밖에 없는 도시다.

24분 지연됨. 실제로는 더 지연됐다.

숙소에서 좀 쉬다가 몸이 근질거려서 도보 10분 거리인 성천사성으로 향했다. 흔히 성천사성은 로마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경치 명소, 야경 명소로 불린다. 원래 바티칸시국을 갔다가 오후에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미리 예약을 해야만 입장가능해서 일정을 바꿨다. 입장권 17유로.

성천사성 앞의 산탄젤로 다리
성천사성 가는 길
성천사성 입구

성천사성(Castel Sant'Angelo, 혹은 산탄젤로성)은 흔히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이 건물의 용도가 원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세운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로마가 멸망한 후 로마 교황청의 성곽 겸 요새로 사용됐고, 지금은 군사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중세 시대 성천사성은 교황의 전용 피난처였다. 바티칸하고 가깝기도 해서 교황 니콜라오3세는 이곳과 성 베드로 성당을 연결할 비밀통로를 만들었고 실제 로마가 외세에 침공당했을 때 교황이 베드로 성당에서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경치를 보려면 하늘에 가까워져야 하는 법. 계속 걸었다.
4층까지 올라가면 꼭대기다.
가는 길에 유적들도 보면서...
군사 박물관답게 무기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성천사성 꼭대기 올라가는 길의 중간 쉼터 같은 곳. 여기서 박물관이나 기념품 샵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성천사성 전체 조감도
꼭대기 가는 길에 천사들의 테라스
이곳부터는 성이라기보다 성당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성천사성 꼭대기, 성천사성의 상징인 미카엘 대천사상
성천사성에서 바라본 경치
성천사성에서 바라본 경치
성천사성에서 바라본 경치

아쉬웠던 점은 산탄젤로 다리부터 로마 곳곳이 공사판이라 성천사성에서 바라본 경치가 생각만큼 이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중충한 날씨 탓에 드리워진 어둠과 구름이 성천사성을 뒤덮은 모습은 멋스러워 좋았다.  (아, 로마. 왜 구름조차 조각 같은가.)

성천사성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예약을 한 식당으로 향했다. La Fraschetta Romanesca라는 로컬 느낌 나는 숙소 인근 식당을 예약해두었다. 6시에 왔더니 6시 15분에 오픈한다고 하여 잠시 기다렸다가 입장하여 아마트리치아나(파스타)랑 살팀보카, 그리고 하우스와인을 주문했다. 주문을 마쳤는데 눈 앞에 보이는 메뉴판 속 'fiori di zucca'라는 메뉴가 나를 사로잡았다.

La Fraschetta Romanesca 식당 메뉴판

fiori di zucca라는 호박꽃 요리는 로마에 오면 꼭 한 번 먹어봐야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추가 주문을 했다. 그리고 얼핏보면 때깔 좋은 군만두처럼 보이는 요리가 나왔는데..

fiori di zucca
fiori di zucca

와씨, 이거 뭔데 이렇게 맛있냐? 호박은 먹어도 호박꽃은 처음 먹어봤는데, 안에 모짜렐르치즈까지 들어 있어서 진짜 맛있었다. (뭐 이런 거까지 맛있냐 이탈리아?) 

훌륭했던 메인요리 아마트리치아나
제일 먼저 나왔던 하우스와인과 식전 빵. 1리터짜리 와인이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두 번째 메인요리 살팀보카. 나는 맛있었지만 냄새나 식감 때문에 취향 따라 호불호는 좀 갈릴 수 있을 듯

아마트리치아나도 살팀보카도 훌륭했지만 오늘의 재발견은 역시 호박꽃. 역시 세상에 맛없는 식재료는 없나보다. 맛없는 음식만 있을 뿐. (호박꽃 : ?? 나 식재료 아닌데?)

하우스와인 1리터 흡입으로 준 만취 상태에서 9월 18일 일정은 모두 마쳤다. 또 다시 정처 없는 로마 시내 구경과 보르게세미술관 일정은 다음 편에서!

다음 편 : <보르게세, 넌 감동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