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이해하지 않고 유럽을 이해할 수 있을까?
유럽을 거닐 때마다 발에 채이듯 보이는 수많은 성당들을 보며 떠올렸던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로마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나라,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들이 지하로 숨어들어야했던 나라. 그러나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다른 종교들을 박해했던 나라. 그렇게 기독교를 진정한 보편종교로 만들었던 나라.
너무나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기독교의 서로 다른 역사는 로마 안에서만 하나가 된다. 9월 20일 로마 7일차, 오늘의 투어는 이러한 모순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시작했다.
오늘의 투어 장소는 ‘해골 사원’이라 불리는 카푸친 수도원과 로마에서 가장 큰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자신의 영혼을 바친 것도 모자라 남은 육신까지 모두 바친 위대한 종교인들의 유적지다.
참고로 카타콤, 지하 무덤은 길이 매우 복잡하다. 용도 자체가 외부에서 쉽게 찾지 못하게 ‘길을 잃으라’고 만들어놓은 미로에 가깝다. 잘못하면 지하 무덤에서 망자들과 같이 누워 있는 신세가 될 수도 있으니(?? : 오랜만에 신병 받아라~) 꼭 가이드 투어로 가시길. 다만 한국인들이 잘 안 가는 유적지라 한국어 투어는 거의 없는 편이다.
오전 10시까지 미팅 장소인 바베르니광장Piazza Barberini으로 가야했기에 숙소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바베르니 역으로 향했다. 바베르니 광장은 중앙에 베르니니의 트리톤 분수가 있는, 로마에서 유명한 '만남의 광장'이다.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커피를 마시러 일찌감치 바베르니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바로 옆의 카페에서 (이제 안 먹으면 서운한) 카푸치노 + 코르넷또를 시식했다.
벌써 일주일 째 먹는 조합이지만 오늘은 카푸친 수도원을 가는 날이라 더욱 뜻깊은 카푸치노다. ‘카푸치노’라는 단어 자체가 카푸친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서 유래했다.
당시 카푸친Capuchine 수도회 수도사들은 청빈의 상징으로 고깔 모양의 후드가 달린 고동색의 옷을 입었다. 이 옷 색깔이 카푸치노 커피 색깔과 비슷하다는 데서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 첫 번째 가설이다.
두 번째로는...수도사들의 머리 스타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카푸친 수도사들은 소위 말하는 ‘속알머리’ 없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는데, 이 모습이 커피를 내리고 우유 거품을 가미한 카푸치노의 모습과 비슷했다는 것.
한 줄 요약하면 카푸치노는 머머리들의 커피라는 뜻. 이게 사실이라면 진짜 사탄도 울고 갈 작명 센스다.(고객님~ 주문하신 고객님 머리 닮은 커피 나왔습니다~)
그렇게 머머리들의 커피를 한 잔 하고도 시간이 남아 근처 구경을 하기로 했다. 유럽에서는 시간 빌 때 성당 구경이 정말 제격이다. 인근의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으로 향했다. 로마 성당은 오전에 보통 미사 시간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구경하러 갔는데 갑자기 신부님이 들어와 미사를 시작해서 나도 얼떨결에 자리에서 같이 일어났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9시반쯤 바베르니 광장으로 돌아오자 본인 손님들을 데려가려는 가이드들로 광장이 바글바글했다. 가이드 견습생인지 아니면 자원봉사인지 모르겠지만 곳곳에 ‘Free tour rome’이라는 팻말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잠시 뒤 내가 예약했던 투어의 가이드가 등장했다.
알린이라는 이름의 가이드가 15명 정도 되는 우리 일행을 인솔했다. 일행 중에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메인 일정인 카타콤에 가기 전에 가야할 곳이 바로 카푸친 수도회, 해골 사원이었다. 공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라 콘체치오네 성당Santa Maria della Concezione dei Cappuccini이다.
성당 박물관에서는 카푸친 수도회에서 활동한 수도사들의 초상화와 문서 같은 당시 유물을 볼 수 있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해골사원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적 느낌 때문일까? 박물관의 여러 유물을 보는 동안 그간 로마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섬뜩함이나 쎄한 기운이 느껴졌다. 박물관을 지나서 수도원 지하로 들어서는 순간 그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있다.
홀리 쉿, 이곳은 그냥 해골 사원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졸라 해골 사원' '쌉-해골사원' 정도로 불러야 한다.
실제 이 수도회에서 일했던 수도사들의 유골 4000여구를 300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장식해두었다고 한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아니 매드 monk라도 있었던 게 분명하다.
신에 대한 예찬과 숭배,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성당들을 보다가 해골로 수놓아진 성당을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 성당의 입구에는 '당신의 현재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며, 우리의 현재 모습은 당신의 미래가 될 것이다'라는 문구가 라틴어로 적혀 있다.
이 해골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성당에 화려하게 새겨진 천국, 천사들의 모습을 보고 신을 믿기로 한 건 아니겠지? 죽음이란 그런 게 아니야. 여기 보이는 이 수많은, 한 때 인간이었던 이 해골 무덤이 바로 네가 직면해야할 죽음이야. 이게 너의 미래라고. 그런데도 넌 신을 믿을 자신 있니?'
ㅇ 신을 사랑해서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낸 천재 화가, 조각가들 = 가짜 광기
ㅇ 신을 사랑해서 자신들의 해골로 성당을 뒤덮어버린 카푸친수도회 수도사들 = 진짜 광기
무한 해골 지옥을 빠져 나와 안에 있던 기념품 샵을 구경했다. 이곳 기념품 가게는 컨셉이 확실하다. 해.골.
해골 대환장 파티에 정신이 멍멍해진 알린과 15인의 관광객들은 카타콤으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친절한 알린과 다른 가이드들은 버스로 20분 걸려 카타콤에 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성당들, 콜로세움 등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나중에 보니 이렇게 열심히 설명한 다음, 투어 참가자들에게 자신들이 운영하는 콜로세움 투어, 성당 투어들도 신청해달라고 호객 행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내일 한국에 간다고 하자 알린은 다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유명한 로마 최초의 도로, 아피아 가도를 달려 로마 카타콤베에 도착했다. 각지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모두 카타콤 ‘미팅포인트’라는 곳에 모인다. 이곳 카타콤에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가이드들이 따로 있다. 이탈리아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등. 우리 알린팀은 이탈리아어-영어팀으로 나뉘어서 입장했다.
이곳 카타콤에선 사진 촬영이 절대 금지다. 로마에서 가장 큰 지하 공동묘지, 수십 명의 순교자와 16명의 교황, 50만 명의 기독교인이 묻혀 있는 이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공유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미로처럼 복잡한 지하 가도엔 당시 기독교인들의 집념에 가까운 신념이 그대로 남아 있다. 너희가 아무리 박해해도 나는 유일신을 믿고야 말겠다는 집념. 신에 대한 사랑과 종교에 대한 의지가 너무 강했기에 이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극복해낸 것처럼 보였다.
빛을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믿음을 빛으로 삼았던 이들은 그 어두컴컴한 지하 묘지 곳곳에,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놓았다. 이건 신앙일까 광기일까. 사실 두 가지는 애초부터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일지도 모른다.
카푸친의 해골 무덤에 이어 카타콤을 목도하며 확신했다. 자신들을 박해하던 제국마저 통째로 개종시켜낸 위대함은 예술작품으로 가득한 화려한 성당에 있지 않았다. 음산한 해골 무덤에, 그리고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의 묘지에 숨겨져 있었다. (내가 로마 황제였다면 지하 묘지의 이 광경을 보고 박해를 포기했을 것 같다.)
경이로웠던 카타콤 투어를 마치고 나와 돌아갈 버스를 기다렸다. 교통 혼잡으로 좀 기다려야 한다고 하기에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몰랐던 사실 하나 발견. 카타콤은 경치 맛집이었다. 이 경치를 포기하고 지하로 들어간 순교자들께 경의를.
카타콤 정원 구경과 고양이 구경까지 마치고 오후 1시20분 쯤 돌아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로마에서의 투어는 항상 ‘점심 허기와의 대결’이다. 투어를 마치고 알린 일당들과 작별을 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돌아다녔으나 지도에 찍어놓은 식당들이 전부 웨이팅. 결국 주변을 걷다가 평점이 괜찮은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오늘 저녁에 식당을 예약해뒀기에 늦은 점심은 진짜 가볍게 먹기로 하고 카르보나라를 하나 시켰다. 그런데 역시 뭔가 아쉬워서 며칠 전 맛있게 먹었던 호박꽃 튀김(fiori di zucca)을 같이 시켰다. 그런데 역시 뭔가 아쉬워서 하우스와인도 한 잔 시켰다.
와인은 맛있었다. 그러나 카르보나라는 너무 짰다. 호박꽃 튀김도 그냥 그랬다. 며칠 전에 갔던 식당이 호박꽃 튀김 맛집이었던 모양이다.
점심까지 든든하게 아니 가볍게 먹고 난 뒤 남은 오후에는 아무 대책 없는 골목 투어를 시작했다. 로마에서의 실질적 마지막 날인 만큼, 일부러 길 잃기 투어!
대책 없이 걷다가 조금 지쳐서 판테온 근처의 (딱 봐도 관광지 카페처럼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여기 주인장은 로마에서 와서 만난 사람 중 제일 싸가지 없는 X끼였다. 잠을 못 잘까봐 디카페인 커피를 시키려고 하자 꼽 주듯이 말하는가 하면, 계산하려고 동전을 탁자에 올려두었는데 지나가다 낚아채가면서 ‘이제 나갈 거냐?’ 식으로 말함. ㅈ같아서 그냥 빨리 일어났다.
맛없고 불친절한 카페에서 일어나 저녁 식사까지 다시 무한 골목 투어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비싸서 이 악물고 안 샀던 아이폰 껍데기도 하나 6유로에 구매하고, 그렇게 싫었던 I LOVE ROMA 티셔츠들도 구경하면서.
사실 하루. 이틀. 삼일까지의 로마는 허리 아픈 평발의 나에겐 걸을 수밖에 없는도시였다. 하지만 귀국을 하루 앞두고는 어느덧 계속 걷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끊임없이 풍경이 바뀌고, 새로운 골목길이 펼쳐지는 도시, 걸을 재미가 있는 도시이기에 그랬을 수도. (이 때쯤 집에 가기 싫다는 마음이 거의 극으로 치달았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저녁 장소는 미리 예약해두었던 ‘Achille Al Pantheon di Habana’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투어하면서 가이드에게 추천받은 곳인데 이곳의 양고기 스테이크를 추천한다고 해서 먹어보러 왔다.
메뉴판을 보니 로마와서 꼭 먹으려고 했던 carciofi(아티초크 튀김)가 있었다. 아티초크는 고대 이집트인들도 식용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근본 있는 엉겅퀴류 식물이다.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이 많이 먹었고 이후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들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 식당에는 ‘유대식’ ‘로마식’ 두 종류의 아티초크 튀김이 있다.
로마식 아티초크 튀김을 하나 시키고, 메인 요리로 abbacchio al forno(양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여기도 1잔 단위로 와인을 팔고 있어서 고기랑 어울릴 이탈리아 끼안티 레드와인을 한 잔 시켰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너무 맛있게 저녁을 먹었나 보다. ‘진실의 고개 끄덕임’을 반복하며 먹고 있는데 길가에 서 있던 이탈리안 할머니가 비어 있던 내 옆자리에 앉더니 나한테 ‘뭘 시킨 거냐’고 영어로 물었다.
‘mushroom?’이라고 묻기에 아티초크라 대답하고 찍어두었던 음식 사진을 보여줬다. 양고기 스테이크도 졸라 맛있다고 하자 할머니가 점원을 불러서 방금 이 사람이 시켰던 거 그대로 달라고 주문했다. (앞광고 아닙니다.)
솔솔 바람이 부는 바깥에서, 와인 한 잔에 아티초크 한 입 털어넣고 양고기 스테이크 썰고 있으니 진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진엔 못 담았지만 옆에선 웬 아저씨가 '벨라챠오Bella Ciao’를 연주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이게 낭만인가. 이래서 낭만을 ‘roma’n(로망)이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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