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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일본 여행기

4박5일 오사카 여행기 ② <세계 3대 무덤을 찾아서>

126일 오사카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목표지는 오사카 남쪽에 있는 사카이라는 도시다. 사카이는 오사카지만 사실 오사카가 아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일본의 행정구역은 도도부현’(都道府県)‘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메이지 유신 때 폐번치현이 이루어지며 정착한 시스템으로 도쿄, 훗카이, 교토와 오사카,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현()이다. 이 도도부현 아래 시정촌이라는 하위 행정구역을 두고 있다.

대부분 한국인들이 오사카라 인지하고 있는 곳, 즉 난바역, 우메다, 도톤보리 등은 모두 오사카부 오사카시에 속한다. 그리고 내가 들를 곳은 오사카부 사카이. 행정 체계상 오사카부에 속하긴 하지만 오사카시는 아니라는 뜻.

오사카의 중심부도 아니고 여행지로는 잘 찾지 않는 사카이를 방문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세계 3대 무덤이라는 다이센릉, 닌토쿠 천황릉 고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다이센릉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진시황릉과 함께 세계 3대 무덤으로 불리고 있다.

이거 이긴다고?
이거 이긴다고?

바닥 면적만 약 40만 평으로 규모로는 피라미드, 진시황릉을 제치고 세계에서 제일 넓은 무덤이라고 한다. 전체 길이는 486미터, 후반부 직경은 245미터, 3면에 호를 두른 채 13개의 위성 무덤들을 거느리고 있다. 봉분에 있는 흙만 해도 1,000명이 3년 넘게 왔다갔다 해야 나를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무덤 내부 접근은 모두 금지돼 있어서 큰 공원이나 다를 바 없다, 굳이 가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꽤 있었다. 하지만 다년 간의 유적지 탐방 경험상 이 정도 규모 무덤이라면 분명 뿜어내는 기세와 위용이 남다를 것이 분명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을 각오를 하고 가보기로 했다.

유적지의 규모를 고려하면 꽤 오래 걸을 것이 분명하기에 아점을 집 근처에서 먹고 사카이로 향하기로 했다. (밥 먹을 때만 P에서 J로 변하는 타입)

밥 먹으러 난바역 쪽으로 가는 길
이른 아침부터 슬롯하러 줄 서 있는 사람들

폭풍 검색으로 난바역 인근에 있는 규카츠 모토무라라는 맛집을 찾았다. 11시 오픈런을 위해 난바역 스타벅스 안에서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커피 한 잔을 때리면서 사카이의 역사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먹으려다 실패한 규카츠 모토무라 난바역점

11시에 맞춰 오픈런 하러 갔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맛집답게 줄이 말도 못할 정도로 길었다. ‘이게 줄이 맞아?’ 싶어 줄 선 사람들한테 물어봤을 정도였다.

이렇게 오래 기다릴 순 없어서 이끌리는 냄새를 따라 지유켄이라는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오므라이스 가게로 들어갔다. 아까 규카츠 집이 한국인들이 줄 서는 곳이라면 이곳은 일본인들 밖에 없었다.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러운 할머니 등신대
지유켄 내부

혼자 왔다고 하니 혼밥하는 아저씨 옆자리로 안내했다. 한국의 기사식당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해야 하는 혼밥촌 같았다. 무엇을 먹을지 메뉴판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혼밥하고 있는 아저씨들이 공통적으로 먹는 게 있어서 그대로 시켰다. 아마도 하이라이스로 보이는 메뉴였는데 사실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비쥬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맛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식탁 한가운데 현금만 가능’ ‘남은 음식은 가져가지 마라라고 한국어로 쓰여 있었다. (남길 정도의 양은 아니었어, .) 이 메뉴에 젓가락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쿨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던 식당이다.

* 오사카 맛집 찾을 때 실패 없는 공식

1. 현지 할머니들이 줄 서 있는 곳을 찾아라

2. 현지 아저씨들이 혼밥하고 있는 메뉴를 골라라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이제 일본 여행의 가장 커다란 난코스 지하철을 타러 갈 차례다. 개인적으로 일본은 한국인 입장에서 전 세계 여행지 중 급을 달리하는 top of top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바로 지하철이다

목적지인 다이센릉으로 가려면 난카이난바역에서 초록색 난카이 고야선을 타고 미쿠니카오카역에서 내려야 한다. 승차권을 구입하는 것까진 어렵지 않다. 지하철 역 내부의 티켓 머신으로 가서 한국어 버전을 선택하면 끝.

열 받아서 뻐큐하는 거 아님. 그냥 가리키는 것임

문제는 티켓 머신에서 승차권 구입을 선택하면 도착할 역 이름이 아니라 대뜸 240이니 350이니 650이니 하는 숫자가 뜬다는 점이다. 당황하지 말고 티켓 머신 위에 있는 지하철 지도를 살펴보자. 내 목적지가 250엔 구역인지 350엔 구역인지 등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미쿠니카오카역은 350엔 구역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350엔 짜리 승차권을 구입했다.

지하철 노선도에 적힌 숫자를 꼭 미리 살펴야 한다.

지하철 표를 끊고 무덤 탐방 중 배가 고플 것을 고려해(방금 밥먹었잖아...) 오사카 지하철 역 곳곳에 있는 만두체인점 '551호라'에 들렸다. 방금 식사를 마쳤다는 점을 고려해 양심상 왕만두 2개만 사고 지하철에 무사히 탑승 완료.

난카이난바역 551호라

지하철을 타고 다행히 더는 헤매지 않은 채 미쿠니카오카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닌토쿠천황릉 고분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 쉽게 나갈 수 있다.

지금은 나처럼 오사카에 오는 사람이 무덤보러 가는 곳 정도지만, 사실 중세 일본 도시 중 전세계적으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던 도시는 사카이였다. 1556년 일본을 찾은 포르투칼 선교사 가스파 빌레라는 사카이를 동양의 베네치아로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의 베네치아, 다시는 김포를 무시하지 마라

사카이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웬수는 아마 도요토미 히데요시일 것이다. (조선인으로서 사카이인들과 연대합니다. #우리가_사카이다) 원래 사카이는 상인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질 정도로 무역과 교역이 활발한 도시였는데, 히데요시가 집권한 이후 사카이의 경제력을 오사카로 편입시킬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사카이는 서쪽의 오사카만과 해자를 포함해 세 방향으로 물에 둘러 쌓인 천혜의 요새였는데 히데요시가 해자를 반쯤 매립해 버렸다. 히데요시의 조치(사카이 경제침략) 이후 간사이의 경제, 군사, 정치 중심지는 오카사로 이동한다.

출구 밖으로 나오면 바로 닌토쿠 천황릉 고분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다이센릉 안내 표지판

이 짧은 여행기에서도 사카이의 거대한 고분을 다이센릉’ ‘닌토쿠 천황릉두 가지 표현으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일본 궁내청은 이 무덤을 16대 천황인 닌토쿠천황의 것이라고 주장 혹은 추정한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분명한 증거가 발견된 바가 없다. 따라서 객관적인 표현은 누구의 무덤인지 명시하지 않은 다이센릉(다이센은 큰 산이라는 뜻)이 맞다.

흔히 일본 역사에서 3세기 중후반을 고분시대라 부르고, 고분 시대에 가장 유행한 무덤 형태가 바로 전방후원형 고분이다. 앞쪽은 사각형, 뒤쪽은 원형이라는 뜻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무덤이 마치 열쇠 구멍처럼 생긴 것이 특징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다이센릉의 모습. 전형적인 전방후원분

나라현 사쿠라이시 미와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젓가락 무덤(히미코 여왕의 것으로 추정), 오사카 하비키노시의 고시(후루이치) 고분군 등 3세기 중후반 일본에서 전방후원형 고분이 유행했다는 증거들이 여럿 존재한다.

이러한 대형 고분은 역사적으로 강력한 권력자의 등장을 의미한다. 각 지역의 서로 다른 장례 풍습을 표준화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라미드, 진시황릉이 보여주듯 수많은 사람을 장기간 동원할 수 있는 행정력은 중앙집권형 국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이 때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인 야마토 왕조가 성립되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본격 걷기 전에 만두 흡입부터 하고 시작했다.
닌토쿠 천황릉 가는길

궁내청이 설치해놓은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혹은 잘 모르고 쓱 지나가 보면 이곳이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무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언뜻 보면 평범한 공원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곳곳에 보이는 표지판, 출입 금지라는 일본 궁내청 간판을 살펴보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곳이 정말 범상치 않은 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대충 들어오지 말라는 뜻.
인 덕 천
황 릉 고 분

위의 사진처럼 큰 표지판을 통해 이곳이 닌토쿠(仁德) 천황의 무덤임을 알려준다. 닌토쿠천황은 인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질고 덕이 있는 천황이었다고 한다. 밥 때가 되도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자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3년 간 세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등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오사카 일대에 하천과 제방 공사를 열심히 해서 살기 좋은 오사카를 만드는 데 노력했다고 한다.

다이센릉 길을 따라 쭉 가면 마루호야마 고분, 도가에야마 고분, 히노타니 고분 등 많은 위성 고분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을 그냥 하나의 고분이 아니라 고분군()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루호야마 고분 표지
마루호야마 고분. 표지판이 아니면 동네 언덕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무덤은 맞는 건지 근처에 위패 같은 것들이 모셔져 있다.

무덤인지 아닌지 알 지 모를 것들을 구경하며 다시 하염없이 다이센릉 입구를 향해 걸었다. 다행히도 걷는 게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경치는 좋았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무덤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웬지 음산한 기운이 불어왔다.

다이센릉 가는 길에 있는 도가에야마 고분
여기는 그래도 무덤 같다.

음산한 기운을 헤치고 드디어 다이센릉 입구(참배소)에 도착했다.

입구에 있는 다이센릉 전방후원분 조감도. 이걸 안에서 못 보고 돌아가야한다니 통재라

날씨는 정말 좋았던 다이센릉 입구

'입구컷' 당한 다이센릉 입구 앞에서 꽤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노란옷을 입고 다니는 할아버지들이었다. 무덤 안내를 돕고 있는 자봉 할배들이라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3명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내가 오자마자 먼저 찾아와서 말을 걸었다. '와타시와 칸코쿠진'이라고 하자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노란 옷을 입고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자봉 할아버지1
열심히 다이센릉 입구에서 자봉 중인 할아버지들
자봉 할아버지들 덕분에 사진 찍기도편하다.

내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이라고 들었다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들고 있던 팜플렛을 보여주며 이곳의 엄청난 규모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영어에 능숙하진 않음에도(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이 유적지가 얼마나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지 말씀해주는 할아버지의 열정적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할아버지가 보여준 다이센릉 설명 자료

나이 든다는 건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맞이하기 어렵다는 뜻이지 않은가. 자원봉사라 해도 새로운 사람들과 오래된 과거가 만나는 공간인 유적지 안내하는 일을 노인들에게 맡긴 선택도 매우 좋아보였다. 일본의 뒤를 따라 노령화의 길을 걷는 우리가 따라가게 될 미래의 모습일지도. (나도 노인되면 저런 자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컷의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자봉 할아버지는 유적지 보호를 위한 궁내청의 조치라고 대답했다. 천황의 무덤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신성한 공간이기에 궁내청에서 특별 관리를 한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괴롭힐 영어 실력이 되지 않아 더 묻지 않았으나 사실 잘 이해는 되지 않았다.

세계3대 무덤일 정도로 의미 있는 유적이라면, 그런 역사적 자부심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면 훼손을 각오하고라서도 개방하는 게 맞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안에 들어갈 수 없도록 전부 철책을 쳐놓고 발굴까지 중단한 일본의 조치 때문에 다이센릉은 규모로 세계 최대급이지만 인지도는 거의 무명에 가깝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조치로 인해 무덤 주인이 사실 백제 출신이 아니냐(-), 심지어 전방후원분이라는 양식 자체를 백제인들이 만들었고 이를 감추기 위해 고분을 폐쇄했다는  썰이 돌 정도다. 임나일본부설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창작을 할 정도로 고대사에 대한 일본의 콤플렉스는 심각하기에 개인적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쉽게 안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남 모를 수확은 있었다. 이 거대한 무덤을 보며 나는 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현실과 판타지 세계의 전환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는 것인지 이해했다.

예컨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처럼 한발 차이로 일상과 이 세계가 엇갈리고 서로 다른 시간대가 비슷한 공간 안에 공존할 수 있다고 여기는 상상력.

이 다이센릉은 마치 동네 공원처럼 도시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교토에서 오다 노부나가 최후의 결전지 혼노지에 갔을 때도 느낀 점이다. 이런 일상과 유적지의 자연스러운 융화는 한국인으로서 참 부러운 측면이기도 하다.

다이센릉 고분 바로 앞에는 이렇게 도로다.

근처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 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던 모든 사람들은 언제든 시간의 흐름이 멈춘 수천 년 전의 고분으로 발길을 옮길 수 있다. 게다가 출입이 완전 통제되어 무엇이 존재하는 지 확인할 길이 없는,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수천 년전의 무덤이 삶의 공간과 함께하고 있는 셈.

시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세계의 존재는 이런 역사적 현장에서 기반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까 싶었다. 일본인의 심상을 이해했다는(착각일 수도) 한 가지 수확을 남기고 다이센릉 바로 건너편의 다이센 공원으로 향했다.

다이센 공원 입구
다이센공원 경치. 닌토쿠 아저씨 참 좋은데 자리잡으셨구려~

경치 좋은 이 공원에 들른 이유는 사카이시 박물관 때문이다. 접근성 좋은 공원 안에 박물관을 배치한 것도 참 좋은 선택 같았다. 다이센릉 고분 바로 앞에 있는 박물관이니 이에 대해 잘 설명해 줄 것 같아서 200엔을 주고 입장했다.

사카이시 박물관 표지판
사카이시 박물관 입구 앞
사카이시 박물관 유물들

예상대로 사카이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여러 유물들이 잘 전시돼 있었다. 피라미드에도 근처에 피라미드를 건설한 사람들의 취락촌이 남아있는데, 마찬가지로 이 고분군 근처에도 야마토 정권을 따르는 취락이 존재했다고 하며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무덤은 당시의 다양한 첨단기술의 총집합체라서 기술자 집단의 취락촌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스에키라는 토기 기술자 집단이 사카이 일대에 살고 있었고 당시의 가마터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술자 집단들이 계속 남아 전문성을 살려 토기도 제작하고 종도 만들고 무기도 제작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고, 사카이는 무역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히데요시만 아니었더라면..)

여러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듯 사카이는 무기로 유명한 도시다. 지금도 '일본 3대 칼의 산지' 중 한 곳으로 꼽히고, 박물관에도 보병용 총에서부터 무사용 총, 금속 장식이 훌륭한 다이묘들의 총까지 잘 전시돼 있었다.

박물관에 아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사진 찍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노란 자봉 할아버지 있었으면 부탁했을 텐데.
무덤 일대에서 발견된 토기들
무덤 일대에서 발견된 토기들.
예상대로 전방후원분의 역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
사카이와 조선의 적, 도요토미 히데요시

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잠시 쉬러 공원 밖으로 나왔다. 공원의 경치를 보니 다시 한 번 참 잘 꾸며놓은 유적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컷만 빼고) 시민들의 접근성이 가장 높은 공원에 역사적 현장인 고분, 미래교육의 산실인 박물관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 신나는 놀이기구는 없어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연결된 부담없는 테마파크 같달까.

박물관 앞쪽 호수
오리들도 행복한 사카이시

오리와의 조우를 마지막으로 이제 수천 년의 과거에서 벗어나 다시 2025년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몇 시간을 걸었던 터라 체력이 상당히 방전된 탓에 바로 지하철을 타고 난바역으로 복귀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며 오늘 저녁은 편의점 털이로 결정했다. 나는 일본 편의점 가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일정이 빠듯해도 한 끼는 꼭 '편의점 털이'로 때우는 편이다. 요새 한국 편의점이 일본 편의점을 많이 따라왔다고 하는데, 일본에 와서 로손이나 세븐일레븐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이유는 하나다. 일본 편의점 상품들은 삼각김밥 하나도, 컵라멘 하나도 진짜 말도 안 되게 다양하다. 지역 특성과 지역주민 입맛까지 고려한 차별화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다. 패밀리마트만 해도 후쿠오카의 전문우동점 감수를 받아 야키우동을 출시한다. 세븐일레븐은 규슈 지역에선 나가하마라멘’, 훗카이도에서는 '미소 라멘'으로 아예 지역별로 다른 상품을 내놓는다. 심지어 오뎅 국물도 지역마다 맛이 다르다.

일본 편의점 털이시 주의해야 할 팁 하나만 설명하고 오늘의 긴 여행기는 마무리해야겠다. 일본에선 편의점이든 마트든 두 개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아래 사진 참조) 하나는 소비세가 포함되지 않은 세전 금액을 뜻하는 '제이누카', 다른 하나는 세후 가격을 뜻하는 '제이코미'라 부른다.

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판매자가 세전 가격을 표시해도 괜찮은 일본의 법 때문에 벌어진 일종의 착시다. 세전 가격표를 보고 계산할 때 당황해선 안 된다는 말씀이다.

편의점 음식들과 하이볼 파티로 126일 일정은 마무리했다. 내일은 고대 일본의 도읍지, 헤이조쿄로 떠난다.

다음 편 : <헤이조쿄에서의 1대1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