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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두 가지 일본론

2학년 때 쓴 레포트.

두 가지 일본론 : 국화와 칼과 축소지향의 일본인

 

 


국화와 칼

저자
루스 베네딕트 지음
출판사
북라인 | 2006-09-29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 연구서. 문화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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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지향의 일본인

저자
이어령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2008-10-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일본 문화 깊숙이 박혀 있는, 일본인의 속성을 예리하게 해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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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론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전후 일본에서 나온 일본론 저술이 1천 권 이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론은 그야말로 시장에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일본론을 정리하고 비교하는 작업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 일본론을 비교하고 그 중에 무엇이 진짜 일본이며, 무엇이 가짜 일본임을 구별해내는 작업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의 일본론은 그냥 상품처럼 쏟아져 나오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일본론 중 대립하고 있는 두 가지의 일본론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바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과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그 대상이다.

 

철저하게 다른 시각과 다른 목적으로 쓰여진 두 개의 일본론

『국화와 칼』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정말 똑같은 일본을 보고 썼는가 싶었을 정도로 일본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개의 일본론이 각자 다른 목적을 지닌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먼저 『국화와 칼』은 일본과 전쟁을 하던 미국의 고민에서부터 시작된 일본론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자신들과 비슷한 문화와 사상을 가진 유럽의 열강들과 전쟁을 하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사상을 지닌 일본과 전쟁을 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 일본인들은 가미카제라는 방식으로 미국을 공격하는가? 왜 그렇게 싸우던 일본은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하자마자 모두 순순히 미국의 지배를 수용했는가? 자신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일본과의 전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일본을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미국의 고민 속에서 ‘미국인 루스 베네딕트’에 의해 탄생한 것이 『국화와 칼』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네딕트는 중국과 일본을 비교하고,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여 일본만이 가진 독특성을 찾아낼 필요가 없었다. 그냥 자신들, 미국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조금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백인(유럽) 문화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탐구하면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이처럼 『국화와 칼』과 같은 서구인에 의해 쓰여진, 혹은 일본인이지만 서구인의 관점에서 쓰여진 기존의 일본론을 타파하고자 쓰여졌다. ‘한국인 이어령’의 입장에서 보면 서구인의 관점에서, 서구 백인 문화와 일본 문화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대다수 서구인들과 일본인들이 생각한 일본 고유의 문화인 ‘아마에’와 ‘젓가락’은 그 자체로서 별 의미가 없다. 한국에도 똑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마에’보다 한국에 더 세분화된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 ‘젓가락’보다 ‘젓가락으로 밥을 덜어내어 먹는 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동양 문화라는 큰 범주에서 포괄할 수 없는 한국, 일본 문화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즉 일본, 한국과 같은 개별 국가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은 동떨어져 존재해왔던 타문화권, 서구 백인 문화와의 비교가 아닌 동질한 문화권 내에서의 비교 연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축소지향 vs 정신을 중요시하는 문화

이어령은 일본론을 ‘축소지향’이라는 코드를 통해 풀어낸다. “무엇이든 작은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일본인의 축소 지향적 성격이 일본의 자연물, 인간과 사회, 산업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찾는다”, ‘온’, ‘의리’, ‘인정’, ‘수치’, ‘체면’ 등 다양한 코드를 가지고 자신의 일본론을 풀어내지만, 결국 모든 코드를 포괄하는 코드는 하나다. 바로 일본은 “정신을 중요시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베네딕트와 이어령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 전반에 걸쳐 일본이 육체를 정신을 통해 통제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인들의 자기 수양 역시 정신으로 육체를 통제하려 하려는 시도이며 ‘기리’와 ‘기무’ 역시 상대방에 대한 정신적 부담이며 이러한 은혜를 갚아나가는 것이 일본인의 삶이다. 천황의 승리를 위해 가미카제를 자진하고, 천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천황의 명령 한마디에 미국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모습 역시 천황에 대해 진 빚을 갚으려는 당연한 시도였으며 이러한 세계관은 정신 교육과 어른이 되어갈수록 통제당하는 일본인의 삶 속과 체면을 존중하는 그들의 육아법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일본인들이 안정과 질서를 중요시하는 것 역시 그 안에서 일본인들이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령이 보기에 일본인은 정신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아니라 축소 지향적인,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을 추구하는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물질, 물건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일본이 개화를 추진할 때 모노, 뭔가를 만드는 기술을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대신 정신문화인 기독교는 일본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많이 기독교를 수용했다. 일본인들의 도구와 사물에 대한 사랑이 이를 입증해준다. 다도茶道에서 중요한 건 차 도구이며, 골프에서도 골프 도구에 집착한다. 더 나아가 일본인들은 어떠한 이념이나 관념 그 자체보다 물건, 사물로 사고하며 물건을 숭배하는 양태까지 보인다. 신기3종 역시 이념 숭상보다 모노를 떠받들었다는 증거이며 그들의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 역시 어떤 교리가 있는 종교가 아니라 물건을 모시고 비는 종교이다. 일본 군인들이 세계대전 당시 가지고 있던 국화 문장의 총은 천황, 군인 정신과 같은 관념을 사물로 표현하여 축소 지향적으로 자신의 손에 끌어들이고자 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관광지에 가서도 일본인들은 역사나 풍습과 같은 추상적인 것에 대해 묻기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함으로서 그 관광지의 풍속과 이미지를 샀다고 생각한다. 일본 경제가 상당히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계속 이루어지는 것 역시 물건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 차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미시다 부인의 자서전 〈나의 좁은 섬나라〉에 대한 베네딕트와 이어령의 해석 차이이다. 미시다 부인은 〈나의 좁은 섬나라〉에서 “일본인 누구나가 그러하듯, 나도 나의 행동이 전혀 흠잡힐 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자랑스러움도 무참히 상처받았다. 나는 이 나라에서는 대체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하여, 또 내가 이때까지 받아 온 예절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 환경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다.”라고 쓰고 있다. 또한 중국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들은 굉장히 당당하고 우아했다고 쓰고 있다. 베네딕트가 보기에 미시다의 혼란은 도덕적으로 엄한 나라의 국민이 도덕적으로 엄하지 않은 나라의 생활을 겪으며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즉 ‘도덕성의 정도’라고 하는 정신적 문화의 차이가 미시다로 하여금 분노를 느끼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령이 보기에 문제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 축소된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미국이라는 확대된 세계에 놓아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체면’, ‘의리’, ‘수치’, ‘온’ 등으로 대표되는 유교문화는 중국에도 똑같이 존재함에도 중국인들이 당당하고 일본인 미시다가 혼란을 느낀 것은 중국이 확대 지향의 문화를, 일본이 축소 지향의 문화를 지녔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이중적이다.

이처럼 다른 시각을 지닌 저자들이 유사한 시각을 보이는 지점이 바로 일본인의 이중성에 관한 부분이다.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항상 일관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본인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며,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통된 사항이다. 베네딕트와 이어령은 공통적으로 “일본인은 이중적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베네딕트는 그의 저서의 제목인 『국화와 칼』에도 잘 드러나듯이, 겉으로는 국화를 내밀면서도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는 일본인의 이중성에 대한 탐구로 일본 연구를 시작했다. 상반되어 보이는 모든 것이 공존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성의 원인이 ‘정신을 중시하는 문화’에 있다고 보았다. 미국인들과 같이 일본인은 항상 예의바른 사람은 예의바르고, 폭력적인 사람은 폭력적이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온’을 갚는다, ‘기리와 기무를 다한다.’라고 하는 정신적 차원의 지상명령에 의해 웃으며 국화를 내밀기도 하고 싸늘하게 칼을 빼들기도 한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미국과 싸웠던 가미카제의 모습이나 패전 후 미국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두 가지의 이중적 모습은 “천황에 대한 은혜를 갚는 길은 천황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같은 생각 안에서 파생된 현상이었다.

이어령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확대된 공간 안에 드러날 경우 발생하는 이중성에 대해 언급했다. 낯선 여행지, 즉 확대된 공간 안에 놓아진 개별적 일본인은 망설이거나 자신감이 없다. 그러나 그 일본인이 집단으로 여행을 갔을 경우 그들은 어떤 한국인, 중국인보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축소된 소집단 안에 자신이 속해있는 가 아닌가가 자신의 태도까지도 결정해버리는 절대적인 축소지향형 인간이 바로 일본인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국민은 끔찍이 아끼면서 외국에 대한 배타감이 높은 이중적 일본인을 설명해준다.

또한 베네딕트가 ‘정신적인 문화’ 코드로 설명한 미국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역시 축소지향의 코드로 설명할 수 있다. 이어령이 ‘노멘형 축소지향’이라고 표현한 일본인들의 특성은 가면에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인들의 가면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어떤 감정으로 옮길 수 있도록 희로애락을 응축한 중간 표정을 지니고 있다. 일본에 밖에 없는 ‘가마에’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마에는 앞으로 일어날 혹은 이미 있었던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자세로 축소한 형태이다. 즉 어떤 상황이 오느냐에 따라 가마에는 수많은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가면의 표정 역시 수많은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인은 일관되게 미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가마에’를 하고 있다가 가미카제를 하느냐, 미국의 지배를 수용하느냐라는 식으로 자세만 약간 변형했을 뿐이다.

 

 


일본은 없다

저자
전여옥 지음
출판사
푸른숲 | 1997-07-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일본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일본 특파원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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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비교하였듯이 일본인의 행동방식이라는 같은 현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네딕트와 이어령은 상반된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시각 차이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베네딕트와 이어령의 국적이 다르다는 것, 즉 서로 다른 목적성을 가지고 일본론을 전개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일본을 어떻게 보느냐, 일본인을 어떻게 보느냐의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일본인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한국인들의 경우에는 특정 가치를 지닌 일본론(예컨대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와 같은 류의)에 함몰되어 버릴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쏟아져 나오는 일본론들에 대한 비교, 분석과 이를 통한 “객관적인 일본”에 대한 탐구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