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글들을 짜집기 했습니다. 2011년 4월 7일 카페 체화당에서 열린 신촌논단 청년주거권 토론회에 공동생활전선도 참여했는데, 그 때 사용한 발제문입니다.
1. 공동생활전선이란?
간단히 말해서 ‘20대 생활 학습 연대체’라 소개할 수 있는 공동생활전선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공동생활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전선을 형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 전선을 형성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20대들이 연대하여 우리를 억누르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하자는 의미이다. 공동생활전선은 이러한 저항과 투쟁을 위해서, 즉 20대가 처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20대가 스스로 경제적 자율성을 가지고 이론적 학습과 실천적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생활학습연대모임이다. 2011년 봄 현재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생활공간을 구하여 공동생활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생활을 통해 공통의 대의에 걸맞은 새로운 일상의 습관을 만들고, 공동 학습을 통해 20대가 나름의 지적 역량을 갖춘 담론적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음을 증명하며, 20대가 ‘따로, 또 같이’ 연맹체를 이루며 실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2. 공동생활전선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공동생활전선에 관한 논의가 처음 나오게 된 곳은 2009년 9월, 군대 내부 전산망인 인트라넷이었다. 당시 인트라넷에는 ‘책 마을’이라는 인문사회 독서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책 마을은 군인들이 모여 라이트노벨에서부터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독서 관심사를 표현하던 공간이었다. 대부분이 20대인 군인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보니 책 마을에서도 몇 해 동안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88만원 세대’론이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2008년『문학 동네』겨울 호에 실린 ‘청춘의 종언’ 좌담회 내용이 책 마을에 옮겨진 뒤부터 책 마을에서 88만원 세대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슬픔을 느꼈고 누군가는 답답함을 느꼈으며 엄청나게 분통을 터트린 이도 있었다. ‘불안한 20대’라는 규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는 없었고, 따라서 스스로도 슬픔과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좌담회는 꼭 그만큼의 꺼림직함을 가져다주기도 했는데, 요즘의 이십대들은 반항, 도발, 상상력, 순수, 열정 등 낭만주의적 (청춘의) 특질들을 상실하여 노회하기도 하고, 영악하기도 하고, 젊음 고유의 패기나 무모함이 부족해지는, 20대와 청춘의 분리 현상을 격고 있다는 전제,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특징이 없다, 겁에 질려 있다, 계급적 열등의식을 완전히 내면화하고 있다.’ 등등의 규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과연 우리들이 스스로 그러한가에 대한 의문부터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될 때까지 너희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책임론,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는 질문까지 다양한 말들이 근무 시간 틈틈이 쓰인 텍스트들을 통해 튀어나왔고, 논의들은 꼬리를 물고 책 마을이 없어지는 날까지 지속되었다.
이 수 많은 텍스트들 중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글은 2009년 9월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중 한 명인 양제열이 올린 ‘우리는 88만원 세대인가’라는 글이었다. 양제열은 이 글에서 88만원 세대들의 당사자 운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이유를 ‘20대 대부분이 부모님 집에서 살며, 등록금을 지원 받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부모가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같이 데리고 사는 것은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합의이다. 그러나 양제열은 이러한 기본적 합의가 20대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주거권(집 값 문제), 교육권(등록금 문제), 노동권(일자리 문제) 등 20대 문제를 이루는 세 가지 큰 축들에 대해 20대 본인들의 반발과 저항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20대들이 실질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20대들 뿐 아니라 부모 세대의 노년 안정성을 저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20-30대 부부들에게 출산율 저하라는 사회적 문제가 등장하는 것 역시 유사한 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20대 문제는 세대 간 분배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재생산 능력 상실과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책 마을에서 활동하던 김예찬은 양제열의 이 글이 지닌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는 마츠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참조한 것이었다. 20대들이 ‘가난뱅이 전략’을 실천하며 경제적 자율성을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는 문화가 생긴다면, 실질적으로 가게 부담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20대들에게 당사자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이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았을 때 공동생활전선은 공동생활을 통해 집으로부터 자립하여 사는 젊은이들을 많이 만들어나가자는 운동으로 기획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된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은 책 마을 내에서 논의를 거듭하며 점차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형태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20대 운동의 한 형태로 공동생활전선이 지닌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현재 20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세대론을 포함한 20대에 대한 규정은 대부분 어른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부터 낼 필요가 있다. 20대가 처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20대 당사자가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이 가장 예리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담론적 주체.
2) 물론 이러한 ‘당사자 운동’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물질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20대들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부모의 지원을 받아가며, ‘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것을 몇 년 이상 지속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20대가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가족의 품을 떠나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3) 설령 물질적 조건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찾기 어려워진 ‘연대’와 ‘투쟁’이라는 상실된 가치를 되살려내지 않는 이상 20대 운동은 마치 지금 학생운동이 처한 상황처럼 일부 특이한 애들의 소란으로 여겨질 뿐이다. 어떻게 하면 20대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 20대가 일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주제들을 다룰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문제제기들을 20대에게 일반화된 매체를 통해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첫 단계로 주장된 것이 가출이었다. 사실 부모가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데리고 사는 것은 한국사회의 거의 기본적인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합의가 오히려 20대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흉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들이 가출을 생각하게 된 원인이었다. 오늘날의 20대 대부분은 부모와 함께 살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 받는다. 오늘날 20대 초반의 젊은이 대다수는 대학생이며, 따라서 경제적 활동을 몇 년간 유예 받은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적지 않은 등록금을 부모들이 부담하며, 자취생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지원으로 생활해나간다. 여기에 과외나 알바를 한다면 생활비 정도는 제가 벌어 쓰기도 한다. 그러나 용돈을 받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20대 대학생들은 집에서 ‘부양’받는 존재인 것이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이 어렵고 미래가 불안해서 학점과 스펙 관리에 열중하지만, 일단 그것은 ‘미래’의 문제다. 적어도 현재 20대들 자신에게 돈이란 현실적으로 나를 짓누르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경우와 다르게, 성인이 되면 집에서 독립하는 경우가 많고 친구랑 같이 살든 연인과 동거를 하든 어쨌든 나름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경제적 자율성을 갖추려는 유럽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경제적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그들은 등록금과 취업 문제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한국 젊은이들이게 돈 문제란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부모라는 방패가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20대 문제’란 나의 일이면서도, ‘지금’ 나의 일은 아닌 것이다. 적극성이 결여된 것은, 어쩌면 가정이라는 온실에 갇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재 20대 문제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대략 세 가지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노동권),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독립된 주거 공간을 찾을 수 없으며(주거권), 너무나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교육권). 그리고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독립할 때까지 데리고 사는 한’ 반복적으로 지속될 문제인지도 모른다. 만약 성인이 된 자식을 무조건 독립시키는 사회적 관습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등록금과 학교 주변 집값이 치솟을 수 있었을까? 분명 굉장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자식을 독립시켜야 할 부모 세대 또한 이에 호응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반발은 자연스레 젊은이들을 ‘연대’하게 했을 것이고, 이러한 ‘연대’의 경험은 단지 20대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닌, 큰 사회적 자산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0대 초중반의 한국 젊은이들에게 ‘독립’과 ‘경제적 자립’이란, 단지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나 등장하는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남성 소설가들의 비아냥거림에 맞서 그들과 달리 여성이 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1년에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오늘날 20대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20대가 소설을 쓰거나, 밴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려면, 혹은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에 천만 원 이상의 자기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이것은 거꾸로 이러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그러한 활동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20대의 ‘자립’은 정말 소설 속에나 나오는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일상 속에서 공상적으로, 또는 낭만적으로 많은 20대들이 집에서 독립하기를 꿈꾸지만, 많은 경우 경제적 문제나 가족 간의 유대 등을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진 현실적 조건에서 자립이 불가능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재기 넘치는 젊은이 마쓰모토 하지메가 쓴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0대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프리터족’들이 늘어만 가는 일본의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가난하게 살아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한 ‘가난뱅이 전략’을 펼칠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또 다른 ‘가난뱅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20대들이 마쓰모토 하지메의 주장처럼 ‘가난뱅이 전략’을 통해서 ‘독립’과 ‘저항’ 모두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쓰모토 하지메의 지침 중 하나는, ‘공동으로 생활할수록 소비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물론 (사립대를 기준으로) 한 달에 1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 전액을 당장 자가 부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적어도 공동생활을 통해 독립된 주거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이미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터넷을 통해 룸메이트/하우스 메이트를 구하는 일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20대 문제’, 더 나아가 ‘체제에 구멍 내기’를 고민하는 이들끼리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공동(가출)생활’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쓰모토의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것이다. 만약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공동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경제적으로 자율적인 독립생활에 한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제안한 ‘자기만의 방’을 상징적이고,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말로 20대들의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토대로서의 공간으로 마련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주체로, 물질적·정신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가출’이라는 생활양식의 전면화! 이때의 가출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부모의 집에서 뛰쳐나와야 한다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20대들을 쥐고 있는 ‘어른들’의 담론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20대들이 먼저 20대가 속해 있는 ‘부모〓어른’들의 영향권 밖에서 설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20대 운동’이라는 것이 정말로 20대 당사자들에게서 촉발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바로 그 생각에서부터 이 글을 쓰는 ‘우리들’,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기획은 책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홍보되었고, 2010년 4월 30일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 모여들었다. 이른바 ‘공동생활전선 준비 모임’이 시작된 것인데, 몇 번의 준비 모임을 거치면서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이 확정되었다. 각자 다른 욕망과 기대를 갖고 모인 이들이었으나 그들에게는 ‘공동생활’을 할 만한 공통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우선 공동생활전선의 문제의식과 목표,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진 대안 공동체들에 대한 사전 조사가 이루어졌다. 수유+너머, 빈집, 성공회대 꿈꾸는 슬리퍼, 예수살이, 지행네트워크, 연구 공간 공명 등이 그 대상이었다. 이러한 사전 조사를 통해 우리는 이 다른 대안 공동체들과 구별되는 ‘공동생활전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합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인 공동생활전선 준비 모임 구성원들은 그 다음으로 공동생활전선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에 착수했다. 이 논의는 크게 (1) 경제적 자립, (2) 이론적 학습, (3) 담론 투쟁이라는 쟁점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토론회의 특성상 ‘경제적 자립’부분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경제적 자립 : 20대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는가?
먼저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이 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인 ‘20대는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라는 모토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구성원 모두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공동의 생활공간 겸 학습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이 당장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로 인해 내부에서 ‘자립’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지금 당장 구성원 모두가 집을 나와 같이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학생 몇 명이 노동을 통해 단기간에 보증금 500~1,000에 월세 30~50을 감당하기란 힘든 일이었다(이 비용도 4인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또한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가장 크게 의존하는 것은 사실상 생활비라기보다 등록금인데, 이 등록금을 부모에게서 지원받지 않는 것은 매우 힘들다. 대학 등록금이 평균적으로 한 학기에 500만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노동을 통해 등록금을 벌 경우 우리는 한 학기 일하느라 휴학하고 그 돈으로 한 학기를 다니는 짓을 반복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20대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들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점진적으로’ 완전한 자립을 추구하되, 지금 당장은 ‘현실 가능한’ 자립을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구성원 모두의 돈으로 공동 공간을 마련하되, 당장 가출을 할 수 있거나 가출이 필요한 이들이 공동의 공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고(실제 공간에 거주하면서) 나머지 구성원들의 경우 새로운 공간이 마련될 때까지(자금이 모일 때까지) 완전한 자립을 연기하되 이들 역시 이 공간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으며, 세미나나 운영 회의 등의 공동 작업을 할 때도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반(半)가출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보증금처럼 유지되는 비용은 구성원이 모두 동일한 비율로 출자하고 실제 공동으로 거주하면서 사용되는 생활비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또한 정기적으로 비정기적으로 각자가 노동으로 얻은 수입을 모아서 공간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2) 이론적 학습 :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3) 담론 투쟁 : 무엇과 싸우고, 무엇에 개입해야 하는가
이러한 논의과정을 거쳐 ‘공동생활전선 준비모임’ 구성원들은 공동생활전선의 강령을 만들었다. 강령 중 ‘자립’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사회적 자립
“가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 주체가 되기 위해 노동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자립을 현실화한다. 이로써 우리 세대의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뿐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의 자립을 통해 각자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공동생활전선은 사회적 자립을 지향한다. 원래 자립의 의미가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다가 논의를 거쳐 사회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자립 시도가 단지 경제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가계로부터 자립함으로써 우리는 사회구조적 모순(주거권, 노동권, 교육권)을 드러내려 한다. 우리가 이 모순에 부딪쳐 고생하고 갈등할수록 우리는 더 ‘주체화’된다. 또한 이 경제적 자립은 부모의 물질적 조건에서 벗어난 20대의 자유로운 연대의 조건이다. 고로 이 자립은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자립을 지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사항을 지키고자 한다. 첫째, 사회적 자립이라는 이념적 지향을 우리의 삶 속에 구현할 수 있도록 힘쓴다. 둘째, 사회적 자립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가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 공동생활과 학습을 병행하는 자율적 공간을 마련한다.” 우리는 지금 마련한 공간을 넘어서 계속 공간의 확장을 도모할 것이다. 공동생활전선이 확장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가 바로 ‘우리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 마을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된 이래, 2010년 여름을 거쳐 우리는 공동생활전선의 문제의식과 지향점을 구체화했고, 2010년 9월 25일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평소 공동생활전선의 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초대해 공식적인 출범식을 가졌다. 이제‘준비모임’이 아닌 ‘공동생활전선’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즉 우리의 기획은 ‘실천’으로 향하게 되었다.
3.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중 세 명은 8월 말, 제기동 시장 주변의 작은 자취방에 둥지를 틀었고, 2011년 2월 한 명이 새로 이사를 왔다. 우리의 방은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5만 원짜리 방으로,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다. 네 명이 20만원씩 내서 월세와 공과금을 충당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 집에서 밥솥, 탁자, 물 주전자, 선풍기를 가져오거나 군대 가는 친구의 가구를 기부 받거나 중고로 냉장고를 구입하는 방식 등을 통해 살림에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하며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구성원들 모두 20여 년 넘게 가족과 같이 살다가 다른 사람과 사는 첫 생활 인지라, 공동생활은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 거주자 네 명 모두 자취 경험이 전무 했던 터라 살림에 대해서는 관심도 요령도 없었다. 또한 각자 학교생활과 교외활동에 바쁜 대학생이다 보니 어느새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청소를 못해 먼지가 쌓이고 빨래와 쓰레기가 방안을 메우는 일들이 즐비해졌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간단한 규칙을 정하고, 이 규칙을 이행하자는 결의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하고도 당연한 사실은 ‘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집에서 나와서 사는 이유는 20대들에게 대안적 모델을 보여주기 위해서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인 남자 대학생들의 자취 모습과 유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야한다는 측면에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거주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나은 상황일 것이다. 물론 각자에게는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밤새 공부해야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투쟁장이 있으며 꼭 끝내야 할 작업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밥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쓰레기 비우는 데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단 한 명이 집에 남아 있더라도 냉장고에서 알아서 반찬을 꺼내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준비는 늘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자유롭게 활동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살림의 문제는 최소화하고 자동화해야 했다.
우리들의 실험은 다른 방식으로도 확장될 여지가 보인다. 우리들의 주거 공간은 다양한 활동가들의 숙소가 되어주기도 했다. 빈집처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은 아니었지만, 투쟁 전선에서 인연이 닿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곤 했다. 이런 저런 네트워크를 통해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의 음악가들, 두리반 활동가, 진보정당 활동가, 학생운동가 등이 이 공간을 거쳐 갔다. 그들은 밤새 술을 기울이며 정세를 토론하다 잠을 잤고 밥을 먹었다.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 우리와 같은 실험을 하는 집단들이 여럿 생겨난다면 대안적 삶을 고민하는 20대 활동가들의 활동 반경을 크게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5개월가량 집을 나와 생활을 하면서 점차 안암동과 제기동을 학생의 눈 대신 거주자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일단 이곳은 서울에서 얼마 안 되는 미개발 지역이다. 바로 이 경제적 조건이 공동생활전선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보증금 500만원이라는 돈으로 서울에서 방 두 칸짜리 집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그 외의 조건도 좋았다. 집에서 3분 거리에 제기시장이 있다. 이곳에서 간단한 식료품과 반찬, 일상적으로 사용할 용품들을 구입할 수 있고 재활용 센터도 있어서 살림잡기들을 중고 가에 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걸어서 15분이면 경동시장과 청량리 청과물시장에 갈 수 있다. 집에서 통학하고 학교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술을 먹는 통학생의 입장이었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사실이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지역 운동과 연대할 계획이나 계기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의 대학생과 학교 주변 주민의 관계가 좋게 말해서 하숙인-하숙집 주인, 구매자-판매자에 불과했다면 이와 다른 학생-거주자로서 새로운 형식의 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처럼 공동생활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실제로 최근 이러한 연대의 가능성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세입자인 공동생활전선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재개발 반대운동을 전개해야 할지도 모른다.
4. 앞으로의 과제?
1차적인 자립의 문제를 해결한 공동생활전선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학습과 생활을 병행하는 공동공간과 생활양식의 확장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공동생활전선은 20대의 자립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공동생활을 통해 최소화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지속적으로 공동생활 공간을 확충해나가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경제적 부담을 덜면서 학습과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적절한 공간을 물색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생활과 학습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이전과 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공간의 확장과 더불어 이 생활양식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지금 공동생활전선이 진행되고 있는 고려대학교 근방인 서울 북부를 넘어서 공동생활전선의 생활양식이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 자금 마련
생활과 공간 확장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생활과 공간 확장을 위한 자금은 각자의 노동에 의해 마련된 자금의 ‘공동 관리’를 통해 확충된다. 하지만 동시에 함께 작업함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는 공동의 소득을 창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3) 20대 문제의 쟁점들의 첨예화
20대의 주거권, 노동권, 교육권 등과 관련한 다양한 부문 운동들과 연대하여 20대 문제의 직접적인 쟁점들을 더욱 첨예화해야 한다. 우리는 준비 모임 과정에서 수유+너머, 지행네트워크, 연구 공간 공명, 성공회대 꿈꾸는 슬리퍼, 빈집 등의 대안공동체들에 대한 인터뷰와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대안 공동체 말고도 다양한 사회․경제적 모순에 투쟁하는 운동들 역시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20대 노동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첨예화하는 과정에서는 청년 유니온과, 20대 교육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첨예화하는 과정에서는 김예슬 선언 카페와 연대할 수 있다. 담론 투쟁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블로그 및 언론매체 기고, 대자보, 대중시위, 출판 등의 활동을 계속하며 20대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공동생활전선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청년들의 빼앗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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