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발표 때문에 썼던 글인데 팩트 좀 볼 게 있어서 옮겨둔다. 별로 효용성은 없는 글이다. 지금의 나는 이 글의 내용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1. 서론
지난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약 34만명에 대한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당시 특별사면자 중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거액의 횡령과 배임, 분식회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재벌 총수 14명이 포함되어 있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주요 경제인들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의 주요 경제인사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은 죄에 비해 가벼운 형을 받기 일쑤이고, 선고받았다하더라도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권이 이러한 경제적 인사에 대한 관대한 법 적용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한 가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당 하냐 정당하지 않으냐를 떠나서, 재벌 총수들이 몇 명 잡혀간 것이 한국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몇 몇 재벌들에 의해 경제 전반이 좌지우지되는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러한 재벌들은 초창기 한국경제를 발전시킨 주역들이었다. 실제로 재벌들은 막대한 수출로 국가의 부를 증대하였으며 몇몇 재벌들이 국가의 지원 아래 한국경제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였으며 이는 한국의 첨단산업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이 된 지금, 고착화된 재벌 구조는 오히려 한국경제,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유발하고 있다.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 재벌들은 정경유착이라는 질 나쁜 관성을 버리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정치권과 재벌들 간의 부패 스캔들이 아직까지도 끈임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IMF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임은 이미 알려져 있다. 또한 선단식 경영과 중복투자,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한국경제는 몇몇 재벌들에 관한 의존도가 심각한 상황이며 이에 따라 몇 몇 재벌들이 경제적 위기를 겪을 경우 한국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게 된다.
이처럼 한국의 재벌구조가 많은 문제점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에 대한 개혁이 필수적이다. 비록 IMF 사태 이후 재벌 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영미식 모델을 도입하여 이를 개혁하려 했으나, 총수중심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재벌 구조가 존속하는 동시에 영미식 모델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영미식 모델의 장점이 살아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실정이다.
2. 본론
재벌구조를 개혁하는 방안을 논하기 전에 한국의 경제구조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재벌구조가 어떤 변수에 의해 발생하게 된 것이지, 종속변수와 독립변수의 관계를 통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분석을 위해 한국의 재벌구조를 종속변수로, 그리고 이에 영향을 미친 독립변수로 한국의 정치체제, 독재체제로 설정하기로 하겠다.
먼저 한국의 재벌에 대해 정의하자면, 한국의 재벌은 총수라고 하는 한 개인을 정점으로 그 가족이 많은 기업들에 대해 소유권을 장악한 후 이를 발판으로 경영권까지 행사하면서 이 기업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배타적 기업군을 의미한다. 즉, 한국의 재벌은 한 개인이 소유와 경영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수많은 개별기업들의 집합체라 볼 수 있다. 한국의 재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한국재벌은 매우 급속하게 성장하였으며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도가 매우 높다. 즉 재벌의 독과점이 매우 심한 것이다. 1990년 독점규제법에 의해 독과점으로 지정된 품목은 총 127개인데 이 중에서 재벌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업종이 105개로 전체의 82.7%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된 사업자 293개 품목 중 재벌기업이 193개 품목을 차지함으로써 전체의 65.9%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 국가권력과의 밀착이 매우 강하다. 세 번째 재벌총수 개인의 재벌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막대하다. 특히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 구성에서의 재벌총수 개인의 영향력이 매우 높은 편이다. 네 번째 경공업, 중화학공업에서 유통,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업종을 일관공정주의로 경영하는 콘체른형 재벌과 다 부문에 다각화된 문어발식 재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재벌구조를 변화치를 가진 값, 변수로 바꿀 수 있다. 위의 한국재벌이 가진 특징들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면 한국이 재벌구조라는 것은 곧 1) 재벌이 차지하고 있는 경제력 집중도가 높다, 2) 국가권력과의 밀착도가 높다, 3) 재벌총수 개인의 재벌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높다, 4) (문어발 기업의 특징상) 계열사 간 상호지분보유를 통한 내부 지분율이 높다, 이 네 가지 변수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벌구조(종속변수)는 무엇 때문에 만들어지고 고착화되었을까? 필자는 재벌구조가 고착화된 시점이 1960~70년대라는 점에 근거, 당시 한국의 정치체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독재체제라는 당시 한국정치체제로 인해 한국의 재벌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구조의 기원은 해방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정부는 귀속재산을 신흥자본가계층에게 무상으로 불하하였는데, 이로 인해 신흥자본가계층은 기업가로 변모할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 전후에 기업가들은 원조물자의 특혜 배정과 재정투융자의 중점지원을 통해 자본을 끈임 없이 축적해나갔으나, 1958년 이후 원조의 감소와 1956~1957년 흉작이 계기가 되어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도태되고 도산되고 이런 기업들을 몇몇 살아남은 기업들이 인수, 합병함에 따라 몇몇 기업들이 재벌화 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들이 재벌로 확실히 변모한 것은 60년대 들어서였다. 발전국가 모델의 경제성장을 추진한 박정희 정권은 한국경제의 산업구조를 다양화하고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펼쳤다. 산업구조를 다양화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은 새로운 산업에 대한 독과점권한을 대기업들에게 부여했으며, 대기업들의 수출을 이끌기 위한 저가 정책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고정시키고 정부 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는 국유기업들도 이 때 많이 육성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1966년 종합제철공장건설계획을 확정하고 1969년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된 포항제철이다. 60년대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차관을 통해 자본을 마련하고, 도산 위험에 닥치면 정부가 금융 지원을 쏟아 부어 구제해주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차관공여의 방식은 불가피하게 독점을 강화하였는데, 외자의 도입, 배분에 수반되는 강력한 인. 허가제는 기술 및 특허의 배타적 점유를 가능케 하였고 강력한 장벽을 형성함으로써 시장구조의 조기독점화를 초래하였다.
한국의 재벌구조가 완전히 고착화된 시기는 1970년대인데, 당시의 대표적 산업정책은 중화학공업에 투자재원을 결집시킨 중화학공업정책이었다. 이 정책으로 인해 80년대 자본조정과 기업합리화가 발생했다. 또한 이미 성장한 대기업들은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하고 수출 지향적 공업화를 통해 대량수출체제로 나아갔으며 중간재의 수입대체화정책을 통해 국내적 분업구조를 창출했다. 이 분업구조 속에서 탄생한 것이 대기업들이 새로운 기업들을 설립하거나 타 기업들을 인수함으로써 만들어진 수많은 계열사들이다. 대기업들은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벌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재벌의 형성과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벌의 탄생과 고착화에는 국가가 거의 주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주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60~70년대 한국의 정치체제가 독재체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위해 재벌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특혜들이 재벌들에게 주어졌고 또한 이를 위해 농민, 노동자 등의 희생이 필수적이었다.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주장이 표출되는 민주주의 사회였다면 이러한 정부 정책은 엄청난 사회적 반발을 가져오고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데 굉장한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정치적으로 철저히 국내 사회집단들이나 개개인을 통제하는 독재체제였기 때문에 이러한 반대를 누르고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정치체제에서 한국식 재벌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먼저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의 대기업들이 한국 재벌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총수 1인의 지배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주주자본주의가 경제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부채가 자본의 대부분으로 시작한 한국 대기업들과는 달리 미국의 대기업들은 주식회사 형식으로 자본을 축적했고, 그렇기 때문에 주식을 가진 주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자본 활동의 모든 것이 이루어져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처럼 총수 1인이나 총수 가문이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철저히 이루어져 전문경영인(CEO) 제도가 매우 발달했다.
미국이 주주자본주의로 총수 1인 지배체제의 재벌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에 의해 이러한 재벌들의 등장을 막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독일에서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정치에 반영되었고 이에 따라 복지제도가 확충되었는데, 이것이 기업에도 반영되었다. 실제로 노동자이익의 보장을 위한 노동자경영참가제도는 대기업들이 민주적 발언체제로 운영되도록 만들었으며 기업의 지배구조 내부에 직업훈련제도, 복지제도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기업을 총수를 위한 기업이 아닌 노동자 계급을 위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한국이 재벌의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일이 사회 다양한 계층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 말고도 한국 사회에서 독립변수(정치체제) 변이에 따른 종속변수(재벌구조)의 변이를 살펴보는 일치(congruence) 여부 확인 B형의 이론검증 방법을 통해서도 정치체제와 재벌구조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할 수 있다. 바로 한국사회의 민주화 정도가 높아졌을 때 재벌구조는 어떻게 변화 했는 가이다. 비록 계열사 간의 내부지분율과 총수1인의 기업 지배율은 매우 여전히 매우 높다. 그러나 과거 재벌구조와는 다소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가 재벌의 자본구조의 변화다. 1960,70년대 재벌들의 경우 자본의 대부분이 차입으로 인한 부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국가가 재벌들의 성장을 위해 돈을 마구 빌려주고, 재벌들은 이를 이용해 사업을 확장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자본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고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증가했다. 두 번째는 외부주주들의 감시와 통제가 다소 쉬워졌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재벌들은 계열사 출자에 의존하여 적은 소유로 많은 기업들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즉 외부주주들이 지배주주의 사익 취득을 감시, 통제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IMF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지배주주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도입되면서 외부주주의 감시와 통제가 쉬워졌다. 비록 총수의 1인 지배를 완전히 감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송과 이탈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총수의 재벌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어느 정도 감소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독재체제가 재벌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다른 독재국가들에는 한국식 재벌구조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것은 독재정권이 ‘경제성장을 할 동기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즉 독재체제라는 독립변수가 60~70년대 한국의 독특한 상황이라는 조건변수가 결합했을 때 재벌구조라는 종속변수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60~70년대 한국은 남북한대치상황이었다. 즉 체제경쟁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자본주의 체제가 공산주의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더 좋았던 당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북한보다 더 잘사는 것, 즉 경제발전이었다. 남북한대치상황에서의 체제경쟁이라는 조건변수의 작용이 독재정권으로 하여금 경제성장을 할 동기, 의지를 갖게 했고 이로 인한 경제발전 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재벌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또한 재벌들의 대규모 확장을 막기 위한(계열사 간 내부 지분율을 낮추기 위한) 출자총액제한제와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도가 더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금산분리 정책도 추진되었다.
3. 결론
비록 한국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로 바뀌었다고는 하나 이미 형성된 재벌의 구조는 완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비록 정치체제는 바뀌었으나 과거 독재체제에서 재벌을 육성하기 위해 펼쳤던 정책, 제도들은 바뀌지 않고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 독재체제 때의 재벌 육성 정책과는 반대로 이제 중소기업들을 육성하여 대기업-중소기업의 지배체제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방식으로 재벌들의 경제적 집중도를 낮춰가야 한다. 2) 국가권력과의 밀착도, 정경유착을 막기 위해 각종 비리사건에 강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 3) 총수 개인의 지배력을 낮추기 위해 전문경영인제도와 총수의 전횡과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주주자본주의의 도입이 시급하다. 4) 대기업의 지나친 확장을 막기 위한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산분리 정책이 유지되어야하며 동시에 대기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대기업의 언론 지배 역시 방지되어야한다.
한국은 급속한 성장과 급속한 민주화를 겪으며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비민주적 경제구조인 재벌구조가 공존하는 양상을 띠어왔다. 재벌구조의 개혁을 통해 재벌을 해체하는 작업은 한국사회의 경제적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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