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단상

내가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게 된 계기

나는 왜 공동생활전선에 왜 참여하게 되었는가?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생활처럼 되어서 그것의 시작이 언제인지 망각할 때가 많지만, 내가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적 현실과 나를 ‘거리두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최초의 계기는 2002년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월드컵으로 흥분의 밤을 보내던 내가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은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었다. 사전을 찾아가며 꾸역꾸역 읽었던 그 책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월드컵으로 불타던 내 마음을 차갑게 식혀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갔고, 2004년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조우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가진 한국적 현실과의 거리두기가 나에게 미친 영향력은 2년이 지나서야 탄핵이라는 촉매제를 계기로 나에게 사후적으로 드러났다. 나는 처음으로 신문을 뒤지기 시작했고 인터넷으로 웃기는 동영상 대신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더욱이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학교에 처음으로 시사토론반을 만들어 회장을 맡아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나는 강준만-진중권-김규항 등의 논객들의 글들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 탄핵 이후 내신등급제 반대 등의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청소년단체인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과 청소년뉴스 바이러스에서 활동하면서 두발자유, 안티조선,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가담하여 ‘진보적 청소년’의 길을 걸어갔다. 학교에서 두발자유화 때문에 종이비행기 던지고 급식 문제 때문에 선생님들과 싸우면서 나는 어느새 한국사회 모순의 정점인 고3이라는 신분이 되었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야자보다 시위였고 수학 문제 푸는 것보다 사회과학 저서를 읽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에 가야했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대학에,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넘치면서 시위는 물론 이론적으로 지적으로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는 이들이 가득 찬, 그 대학에 가야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차라리 고3이 좋았다. 그 때는 대학만 가면, 이라는 희망이라도 남아 있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인문 과학서를 읽으면 시간 남아도는 놈 취급하고 사회과학서는 학교 과제 때문에만 읽어야하는, 하고 싶은 것 대신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며 죽은 채 살아가야했다. 특히 우리 과 학생들의 정치성향 조사를 하던 중 80%가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경악했다. 이처럼 대학생활에 실망하던 중에 나는 이른바 학내운동권이라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고3때 내가 했던 일들을 반복하면서 처음으로 마르크스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결핍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마침내 운동권들이 나같이 ‘진보적인’ 사람들도 설득하지 못하는, 내공 부족의 현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곳에서 나왔다. 지금 좌파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어도, 나는 뭘 공부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그 결핍을 전공 공부(정치학-국제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으로 채워나갔다. 그리고 신문 읽고 사회과학서, 인문학 입문서를 읽는 것으로 지적 결핍을 충족했다. 각종 대회에도 나가보고 스펙 쌓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는 나의 공부가 늘 “좌파 정권의 장기집권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있는 선거 전략을 내세워도 ‘현실적으로’ 좌파 정권의 집권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질문은 더 이상 사회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이것은 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을 수반해야한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촛불집회에도 참여했지만, 그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나는 도피하듯이 국가에 포섭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여름에 학과 선배인 김민호가 제안한 철학사 스터디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나의 결론은 늘 ‘정치적인 것’이었다. 나의 공부 방향은 정치철학과 좌파이론으로 뻗어나갔고, 마침내 마르크스를 다시 만났다. 나는 나의 좌파적 스탠스를 방어할 ‘이론적’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고민이 순환된다. 이론적 무장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나는, 더불어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이전처럼 시위하고 성명 내는 것이 실천일까? 그러나 나는 그들의 ‘공부하지 않음’에 실망하고 이 길에 들어섰다. 단순한 입장 전회가 아니라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고 싶었다. 그 고민 중에 우연히 같은 과 선배, 동기이자 철학사 공부를 같이 해 온 김민호, 하지은과 함께 접하게 된 것이 바로 공동생활전선이었다. 공동생활전선은, 단순히 ‘정치적 목소리’와 ‘정치적 요구’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데 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좌파가 될 수 있는 계급적. 물질적 조건들을 충족하려 하며, ‘철학의 빈곤’을 넘어서 ‘빈곤의 철학’을 사유하려 한다.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려는 이런 자립의 시도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실천적이다. 나는 이곳에서 공부만으로도, 또 정치적 활동만으로도 충족할 수 없는 실천적 삶에 대한 고민과 좌파 세력의 정권 탈환을 도모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