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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핸드폰 관련 시들

핸드폰 중독 증상을 느낀다음 폰을 없애기로 하고 이를 공언하고자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 나름 패러디라고 한건데 ㅋㅋㅋㅋㅋㅋ

관계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저려오는 손목을 손전화 위에 늘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수많은 이들과 관계하였으니
어리석게도 그래서 문자할 일이 많았구나
가상현실을 맥없이 헤매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손에서 놓지 못했구나
나 해논 것이 능란한 손놀림 뿐이어서
밤마다 물끄러미 전화번호부를 바라보며
진정한 벗들을 진지하게 세어보았으나
그 누구도 내 문자에 답하지 않았으니
내 외침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관계를 찾아 헤메었으나
단 한번도 내 사람을 찾지 않았노라.

(원작: 기형도의「질투는 나의 힘」)

문자 기다리는 동안

너의 이름이 찍힌 그 전화번호에
나의 짧은 텍스트가 도달하는 동안
반복되는 모든 진동음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070 060 광고문자 마저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씹히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이 있을까
너의 답장이 올 법한 그 시각,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폰을 열어 확인하는 모든 문자가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폰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로 간다.
통화 버튼을 누를까 고민하는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려서야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답장할 기색이 없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젠 내가 가고 있다
온갖 문자들이 울려대는 폰이 아닌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내 사람"이라는 이름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원작 : 황지우,「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냥 아는 사람

내가 그의 번호를 저장하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첫 문자를 보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밥을 사주었다^^

내가 그에게 문자를 보내준 것처럼
나의 이 가식과 어색함에 걸맞은
누가 나의 "그냥 아는 사람"이 되어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는
그의 "사람"이 되고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아는 사람"이 아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원작 : 김춘수,「꽃」)